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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더 많이 정치에 참여하도록 그리고 정치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자금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들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이 성별을 고려한 공적자금(GTPF: Gender-Targeted Pubic Funding)’ 제도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그림 1> 참조).

공적 정치자금에도 성별 고려가 필요하다

정치에서 성별을 고려한 공적자금(GTPF)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정당이 특정 비율 이상의 여성후보를 공천할 경우, 정당에 재정적 보상(financial reward)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후보 비율을 맞추지 못한 경우, 정부 보조금을 감축하는 재정적 제약(financial sanction)을 실시하는 것이다. 마지막 유형은 정부 보조금 중 일부를 여성후보를 지원하는 활동, 여성후보 발굴과 여성정치인 육성을 위한 교육, 성평등 정책 개발 등 정당 내 성평등 확산과 실현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림 1> 전 세계 성별을 고려한 공적자금(GTPF)’ 확산 추이

전 세계 ‘성별을 고려한 공적자금(GTPF)’ 확산 추이  ⓒ* 출처: Ohman(2018)
* 출처: Ohman(2018)

한국은 세 가지 유형 중 두 가지 유형의 법제도를 갖고 있다(<1> 참조). 하나는 재정적 보상 제도로 정당이 국회·광역의회·기초의회 선거 지역구 공천에서 전국 지역구 총수30% 이상을 공천할 경우에 여성추천보조금을 정당에 지급하는 것이다(정치자금법 제26). 다른 하나는 정부가 특정 조건을 갖춘 정당에 분기별로 지급하는 경상 보조금 중 10% ‘이상을 여성정치 발전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여성정치발전비이다(정치자금법 제28).

후보 공천 할당제 법제화 운동 당시 한국 여성운동은 할당제를 법제화하는 것만으로는 할당제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지역구 후보 공천 할당제가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정당들이 이를 자발적으로 이행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여성운동은 정당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이라고 생각했고, 투쟁을 통해 할당제와 함께 여성추천보조금과 여성정치발전비를 법제화했다.

밖에서 보는 거랑 안에서 보는 거랑 약간의 차이일 수 있는데. 안에서는 선거 때 현금이 제일 중요해요. 출마하고 싶어도, 나중에 물론 보전 받으면 받지만, 목돈 없어서 생각도 못하는,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여성들이 약자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남성들처럼 치고나가는 것을 못해요. 실제로 선거에 들어갔을 때 굉장히 절박하게 현금이 없을 때 감히 엄두도 못내는 것을 당에서 지원해준다 그러면 자신 있게 밀어부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박선영 외 2020에서 발췌)

 

<1> 성별을 고려한 공적자금 제도 규정

* 출처: 국회법률정보시스템 홈페이지

재정적 보상과 재정적 제약,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일까?

재정적 보상과 재정적 제약 중 어느 것이 여성후보 공천에 효과적인지를 살펴본 연구에 따르면, 재정적 보상보다는 재정적 제약이 상대적으로 조금 더 효과적이다(Ohman 2018; Mazur et al. 2020). 아일랜드는 2012년에 여성과 남성 각각 최소 30% 이상 공천하도록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 정부 보조금의 50%를 삭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그 이후에 치러진 첫 번째 선거에서 여성의원 비율이 이전보다 7%p 상승했다(Ohman 2018). 프랑스는 2000년에 후보의 남녀동수 출마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동시에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 정부 보조금을 삭감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초기에는 여러 정당들이 정부 보조금을 삭감당하더라도 남성을 후보로 공천하는 선택을 했으나 국고 보조금 삭감 비율을 증가시킨 법 개정 이후에 치러진 첫 선거에서 여성의원 비율은 이전보다 약 8%p 증가했다(IPU 2021).

반면, 재정적 보상을 실시한 국가들의 경우, 여성후보 공천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이 대표적 사례이다. 여성추천보조금이 도입된 지 15년이 지나는 동안 정치자금법에 규정된 여성후보 30% 공천을 이행한 경우는 단 두 번이다. 한 번은 20187회 지방선거 때 더불어민주당이 기초의회 선거에서 지역구 총수(1,035)38.4%397명을 여성 후보로 공천해 약 21억 원의 여성추천보조금을 받은 경우였고, 다른 한 번은 202021대 총선에서 국가혁명배당금당이 지역구 총수(253)30.4%77명을 공천해서 약 84000만 원의 여성추천보조금을 받은 경우이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20).

여성후보 공천 유인 효과 적은 여성추천보조금

한국의 여성추천보조금은 거대정당이든 소수정당이든, 원내정당이든 원외정당이든, 어느 정당에게도 유인책이 되지 못하는 방향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무엇보다 여성추천보조금 지급대상이 되는 첫 번째 기준인 전국 지역구 총수30%를 여성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기준이 소수정당과 원외정당에게는 달성하기 어려운 기준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77명 이상을, (2018년 기준으로) 광역의회 선거에서는 222명 이상을, 기초의회 선거에서는 311명 이상을 공천해야 하는데 소수정당과 원외정당은 지역구 총수의 30%에 해당하는 후보자를 공천하는 것도 쉽지 않다. 국가혁명배당금당과 같이 예외도 존재하지만 말 그대로 예외이다.

저는 당에서 주는 여성추천보조금을 받아 본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 다른 정당들이 여성후보 5% 공천을 못 넘어서 저희 당에서 받았고, 여성후보들에게 300만원씩 나눠줬어요. 그런데 여성추천보조금 배분 기준이 전체 지역구 총수(선거구수)를 기준으로 여성후보 비율을 5%, 15%, 30% 맞추는 정당에 여성추천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지방의회 선거는 선거구수가 많기 때문에 소수정당은 배분 기준을 맞추기가 어려워요.” (박선영 외 2020에서 발췌)

반면, 거대정당은 전국 지역구 총수의 30%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조건을 충족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2020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공천한 여성후보는 253명 중 32(12.6%)이며, 미래통합당은 236명 중 26(11.0%)뿐이다(<2> 참조). 21대 총선에서 국가혁명배당금당이 처음으로 여성추천보조금 30% 기준을 충족한 정당이 되고, 여성추천보조금이 희화화된 것은 거대정당들이 여성후보 30% 이상을 공천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도가 유의미한 효과와 성과를 갖지 못하게 된 책임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게 있다.

<2> 정당별 지역구 여성후보 수와 비율: 21대 총선

정당별 지역구 여성후보 수와 비율: 21대 총선* 출처: 권수현(2020)
* 출처: 권수현(2020)

둘째, 여성추천보조금 계상단가가 법제도화 초기부터 지금까지 유권자 1인당 100원으로 고정되어 있는 사실도 여성후보 공천에 여성추천보조금이 유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참고로 장애인추천보조금 계상단가는 20원이다.) 경상 보조금과 선거 보조금 계상단가는 전년도 전국소비자물가변동률을 고려해 산정하도록 되어 있고, 매년 증가해 현재 2021년 계상단가는 1052원이다. 여성추천보조금 계상단가보다 10배 이상 높다. 이는 정당들로 하여금 여성추천보조금보다 경상 보조금을 더 선호하게 하며, 남성이 여성보다 지역구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남성) 정치인들 다수의 잘못된 관념과 합쳐져 여성추천보조금이 여성후보를 공천하는 유인이 되지 못하게 한다.

셋째, 여성추천보조금 배분 기준 또한 거대정당에게 유리하게 제도화되어 있어 여성추천보조금 또한 정당의 부익부 빈익빈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선거가 있는 해에 계상된 여성추천보조금의 40%는 정당의 국회 의석수에 따라, 또 다른 40%는 직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이 얻은 득표율(비례대표 선거와 지역구 선거에서의 득표율 평균)에 따라 배분·지급된다. 나머지 20%만이 각 정당이 추천한 지역구 여성후보자수의 합에 대한 정당별 지역구 여성후보자수의 비율에 따라 배분·지급된다(<3> 참조). 동일한 비율로 여성후보를 공천했어도 거대정당이 더 많은 여성추천보조금을 가져가게 되는 구조이다. 여성후보를 공천하고자 하는 정당들의 노력이 오히려 제도에 의해 외면되고 있다.

여성추천보조금은 거대양당에 필요 없는 돈일지도 모르는데 소수정당에는 되게 중요해요. 소수정당은 여성추천보조금이 있어서 당내 여성정치세력화나 여성후보 공천 30%를 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박선영 외 2020에서 발췌)

<3> 여성추천보조금 배분·지급 기준

* 출처: 국회법률정보시스템 홈페이지
* 출처: 국회법률정보시스템 홈페이지

여성후보 공천하지 않는 정당에 국고보조금 삭감을

여성추천보조금이 여성후보 공천 비율을 증가시키는 데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이를 개혁하자는 요구 또한 오래 전부터 계속 되어 왔다. 여성추천보조금에 한정해 21대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양금희 의원은 여성추천보조금 계상단가를 경상 보조금과 동일한 방식으로 산정하고, 배분·지급 기준에서 정당 의석수와 득표율에 따른 비율을 40%에서 30%로 줄이고, 지역구 여성후보자수 합에 대한 정당별 여성후보자수 비율에 따른 비율을 20%에서 40%로 증가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여성후보자 추천 대상에 자치구··군 장 선거(광역·기초 단체장)를 포함하고, 여성추천보조금 계상단가를 100원에서 3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제출해놓은 상태이다.

그런데 정당에 지급되는 (경상·선거) 보조금이 과도할 뿐만 아니라 거대정당에 유리하며, 재정적 지원 방식이 여성후보 공천에 유효하지 않았던 상황을 고려하면, 국회·광역·기초 지역구 선거 할당제에는 재정적 보상이 아닌, 재정적 제약을 하는 방식, 즉 선거 보조금이나 경상 보조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광역·기초 단체장 공천에는 할당제 자체가 적용되고 있지 않은 만큼, 현재의 여성추천보조금을 광역·기초 단체장 여성후보 공천과 연계해 지급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 정당들이 여성후보 공천에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여성추천보조금과 할당제 전반에 대한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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