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문화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수신지 작가 2018년 청강문화상 수상

수신지 작가의 캐리커처. ⓒ여성신문/수신지 작가 제공
수신지 작가의 캐리커처. ⓒ여성신문/수신지 작가 제공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며느리의 기본적인 도리가 있어. 할 일은 해야 나중에 할 말도 있는 거지.” “1년에 한 번 있는 명절인데, 오늘 같은 날은 그냥 들어주면 안 돼? 꼭 그렇게 싫은 티를 내야겠어?” - 웹툰 ‘며느라기’ 중

시대가 바뀌고 사회적 성불평등이 해소되고 있다지만, 기혼 여성들이 겪는 가정 내 구조적인 불평등 개선은 더디기만 하다. 결혼과 함께 여성에게 주어지는 ‘며느리’라는 이름 안에는 무언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강요가 포함돼 있다.

‘고부갈등’라는 단어로 축약되는, 기혼 여성의 가족 내 억압은 오랫동안 영화나 드라마 속 등장하는 아주 흔하고 자극적인 소재로 사용돼 왔다. 무자비한 시어머니의 악행과 일방적으로 당하는 며느리의 구도는, “욕하면서 본다”는 안방극장의 시청률을 견인하는 단골 카드다. 이렇다 보니 주 시청자층인 중장년층조차도 기혼 여성을 둘러싼 가부장제의 억압 구조에 관심을 갖기 어려웠다.

2017년 SNS에서 연재를 시작해 이듬해 책으로 출간됐고, 2019년에는 웹드라마로도 제작된 ‘며느라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명확한 차별점을 가진다. 웹툰 속 주인공의 ‘시월드’는 평범하고 오히려 화목한 축에 속한다. 시부모는 교양있고 친절하며, 남편도 더없이 다정하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구시대적 차별은 변함없이 엄존한다. 일주일간 출장을 간다는 주인공에게 시어머니는 “네가 꼭 가야 하는 거 아니면 못 간다고 하고 다음에 가면 안 될까?”라며, “새신랑이 밥도 못 얻어먹으면 어떡하니”라며 자신의 아들부터 생각한다. 남편은 “내가 무뚝뚝해서 잘 못 하니까 네가 엄마랑 백화점이나 찜질방을 다녀 달라”고 대리 효도를 요구하고, 그 자신도 다른 집 며느리인 시누이도 “결혼하고 첫 생신은 원래 며느리가 상 차리는 거다”라며 거든다. ‘며느라기’ 속 에피소드는 과장 하나 없는 담백한 이야기뿐이지만, 평범한 일상 속 교묘히 스며 있는 가부장적 차별은 그래서 더 서늘하다.

수신지 작가는 “여자들이 결혼하고 나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는데, 그 복잡한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면서, “그걸 ‘며느라기’라는 하나의 단어에 압축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며느라기’는 웹툰으로도 60만 팔로워를 거느릴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박하선, 권율 주연의 카카오 TV 오리지널 웹드라마의 인기는 더 대단했다. 매회 조회수 100만뷰를 넘기다가, 종영 당시 누적 조회수 1700만뷰를 기록했다. 시즌2 제작도 일찌감치 예약됐다. 흥행에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상도 많이 탔다. 2017년 만화의 날 시상식에서 오늘의 우리만화로 선정됐고 한국만화가협회장상을 받았으며, 2018년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문화체육부장관상과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청강문화상’을 받아 작품에 대한 의미를 더했다.

- ‘며느라기’로 스타 작가가 됐는데, 처음부터 이 정도의 인기를 예상했나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연재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빨리 왔어요. 연재한 지 얼마 안 돼서 팔로워 숫자가 1만명 정도 됐을 때는 ‘와,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더 빠르게 늘어났어요. 또 댓글도 많이 달렸는데, 친구를 태그하면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서로 묻는 댓글도 많았죠. 독자들이 홍보해주신 셈이에요.”

- 사람들이 왜 그렇게 ‘며느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며느라기’는 뻔한 소재이고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덜 자극적으로 다뤄서 공감을 얻은 것 같아요. 가족 간에 일어난 일들을 다룰 때, 여성들 간의 질투나 미움 쪽이 많았잖아요.”

- 웹툰이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사랑받는 건, 창작자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콘텐츠 창작자가 무엇보다 원하는 건, 자신의 콘텐츠가 많이 퍼지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보는 것만큼 좋은 건 없죠. SNS에 연재하고, 책을 만드는 건 혼자 했기 때문에 제 손이 닿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사람들에게 다가갔지요. 그 뒤에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더 많은 분들이 보게 됐어요. 또 연재를 한 곳이 SNS라, SNS를 잘 사용하지 않거나 영상을 주로 보시는 분들은 모르셨을 거예요. 그분들께도 제 콘텐츠가 전달된 거죠. 개인적인 작업에서 조금 더 공동체적인 작업이 된 거 같아요.”

- 만화만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 것 같나요?

“영상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속도로 지나가지만, 만화는 내가 멈추고 싶은 부분에서 멈출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지요.”

-‘K시월드’ 이야기는 우리나라나 동양권 정도만 공감할 줄 알았는데, 대만에 이어서 유럽까지 진출 논의가 오간다고 해서 놀랐어요.

“아직 출판된 것이 아니라 반응을 알기는 어려워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크게 다를까 싶기는 해요. 프랑스 앙굴렘 만화 축제에서 ‘며느라기’로 부스를 만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프랑스 출판 담당과 미팅을 했는데 만화 내용을 설명하면 대부분은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시더라고요.”

- 작가로서뿐 아니라 출판사도 운영하고 있어요. 출판사 일이 번거롭지는 않나요?

“‘며느라기’ 할 때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을 많이 받기는 했는데, 제가 혼자 연재를 한 만큼 끝까지 혼자 해보고 싶었어요. 어떤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진행해서, 그때 ‘귤프레스 출판사’를 만들었죠. 출판사가 이어지려면 신간이 나와야 하는데, 신간을 만들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까 계속 내게 된 것 같아요(웃음).

제가 먼저 ‘3그램’으로 독립 출판을 했거든요. 200권밖에 안 찍긴 했지만, 제가 출판해서 서점에 입고하고 전시도 했어요. 그때를 떠올리며 ‘그 정도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며느라기’는 훨씬 일이 많았어요. 잘 몰라서 시작했는데, 내용을 자세히 알았으면 다시 생각해 봤을 것 같아요. 그래도 한 번 해보니까 거래처도 생겼고, 세팅이 되어 있으니까 조금 귀찮은 정도지 못 할 일은 아니더라고요. ‘며느라기’ 때는 디자인만 외부로 진행했고, 다음 작업할 때는 외부 편집자님도 섭외해서 편집자님과 디자이너와 함께했어요. 편집자의 역할이 되게 많더라고요. 스케줄 관리도 해주시고, 제가 믿고 의지하면서 상의할 대상이 필요하니까요.”

수신지는 ‘며느라기’ 이후에도, 낙태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곤’(2019)이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의뢰를 받아 그린 성매매 방지 웹툰 ‘순간이 삶이 되지 않도록’ 등을 통해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 오고 있다. 모두 거론하기 불편하고 자극적이게 비칠 수 있는 소재나 주제지만 수신지만의 화법, 즉 고구마 같은 현실을 최대한 담백하게 그려내고 그 안에서 문제점을 찾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방식은 부드럽되, 그 안의 메시지는 날카로운 식이다.

- 언제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며느라기’ 작업을 하면서요. ‘며느라기’는 ‘뭔가 불합리하고 이상하다’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지만, 어떤 생각을 가지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건 아니었어요. 만화를 연재하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느끼면서,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책임감을 느끼게 됐죠. 이 만화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로 회자되고 페미니즘 도서 코너에 꽂혀 있는 걸 보면서, ‘이게 그런 거였나?’ 하는 생각에 늦었지만 페미니즘 공부도 하게 됐어요.”

- ‘며느라기’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아주 처음에는 게시판에 올라온 이야기, 특히 주부나 새댁들이 올리는 글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이걸 만화로 그리면서 잘 그릴 수 있겠다’, ‘소재가 많으니까 오랫동안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당시에는 소재에 대한 관심만 있었지 메시지 같은 건 없었어요. 그런 상태에서는 만화를 그릴 수는 없어요. 한참 시간이 흐르고 결혼 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문득 그때 글들이 생각이 나면서 제 상황과 겹치더라고요. 정말 내 이야기더라고요. ‘결혼한 여성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된다고 스스로 생각할까?’하는 의문으로 이어지면서, 그제야 그걸 만화로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주옥같은 대사들과 에피소드들에 대한 힌트는 어떻게 얻는지 궁금해요.

“게시판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 중에 겹치는 이야기가 되게 많아요. 그러니까 누구만 겪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 겪는 이야기인 거죠. 대사는 특별히 신선한 대사가 아니지만, 전형적인 대사가 아니라서 공감했던 것 같아요. 들어봄 직한 이야기요. 기발하게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뻔한 이야기를 그냥 모아 놓은 거예요.”

- 예전에 “‘며느라기’가 옛날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여전히 옛날이야기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 만화를 보는 사람들은 “아직도 이러네?”라는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이 정도면 약과”라는 반응이 있어요. ‘세상이 달라져도 가정 이야기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정마다 자기 집의 상황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돼서 그런 것 같아요.”

- 지지만큼이나 악플도 많을 것 같은데, 인상적인 반응이 있었나요?

“저에 대한 악플보다는 만화의 상황에 대해 화가 나서 욕을 하는 일이 많고요. 심하게는 죽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제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기분이 별로 안 좋더라고요. 의외로 미혼인 20대 여성 독자분들이 많아요. 플랫폼이 SNS여서 그럴 수 있는데, 엄마를 생각하면서 몰입하는 분들도 꽤 많아요. 기혼 여성들은 그냥 무작정 욕을 하기에는 약간 복잡한 심경이고, 또 나이 들어가면서 상대방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되는 것도 있는데, 미혼 여성의 경우, 전혀 그럴 관계가 없는 미혼 여성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욕을 하는 것 같아요. 여자 대학생분들이 제일 반응이 많았고, 연재 중에 강연도 많이 했었는데, 대학교 강연 반응이 정말 좋고 젊은 여성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셨어요.”

수신지 작가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 후,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주로 그림책 삽화를 그렸다. 한참 일하던 20대 후반에 난소암에 걸려서 일을 쉬게 됐는데, 이때 그린 투병기 ‘3그램’(2012)이 데뷔작이다. 이때 본인의 이름을 조합해서 필명은 수신지를 만들었다. ‘3그램’은 특이하게도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됐다.

-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나요? 작가님의 유년기가 궁금해요.

“그림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해서 쭉 그렸어요. 제 그림이 늘 교실 뒤 게시판에 붙어있었던 것 같아요. 미화부장도 해봤고요. 어릴 때부터 그림이 너무 좋아서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죠. 재능이 있고 잘해서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닌,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 이걸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업도 그림 그리는 것과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졸업할 때쯤 돼서 현실적인 생각을 했어요. 화가가 돈을 버는 루트가 굉장히 불투명하고 막연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생각하던 참에 일러스트 일을 맡게 됐어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그림을 그릴 때도 그 안에 이야기나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니 완전히 다르지 않지만요.”

- 작가님께 가장 영향을 미친 인물은 누구인가요?

“그림만 그리다가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팠을 때였어요. 그게 제게 큰 변화가 있었던 같아요. 투병기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 글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강사는 ‘구름빵’ 백희나 작가님이셨어요. 그림책 일러스트 일을 하면서, 그분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였거든요. 사실 무슨 수업인지도 모르고, 강사가 그분이라는 것만 알고 수강했어요. 그때 처음 글을 써봤어요. ‘글을 쓴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경험을 하면서, 한번 쓰다 보니 글 쓰는 게 낯설지 않게 되더라고요. 매주 글쓰기 숙제를 하고, 수업에서 함께 읽어 보면서, 글 쓰는 일에 익숙해졌죠.”

- 투병 생활 중 그린 ‘3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인생의 고비가 없었다면 어떤 삶을 살고 계실까요?

“투병생활이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강력한 동기가 됐어요. 하나의 이야기책을 다 완성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의지가 필요했어요. 병이 다 나았다는 기분에 투병한 과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그 정도 일이 아니었으면 할 수 있었을까? 그때 만화라는 것을 처음 그려봤는데, 그 일이 아니었으면 만화로 그릴 만한 소재가 내게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일을 계기로 만화도 그려봤고 글과 그림을 하나의 작업으로 하고 나니까 또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 웹툰, 일러스트 같은 예술이 요즘 시대에 가장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작가님께 ‘그림’은 어떤 매개체인지 궁금해요.

“만화가 좋은 게, 글도 있고 그림도 있는 게 장점입니다. 두 가지를 적절하게 쓰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그림으로 강조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내레이션으로 강조할 수 있거든요. 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대학 시절에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한 장의 그림으로 그린다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림 한 장으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굳이 그림을 그린 다음에 설명해야 하는 것은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어요. 그림책이나 만화를 하면서 그 부분이 굉장히 많이 해소가 됐어요. 그림에 대한 설명을 캡션이 아닌 그림 안에 넣을 수 있다는 게 시원했어요. 시간이 또 흘러서 이런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까, 구체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짚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그냥 감상만 전달받는 대화도 그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어요.”

- 웹툰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면서 배우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아직 작업을 한 번도 안 해본 분이라면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해서 끝내고,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줘서 어떤 반응을 살펴봐야 해요.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발전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창피하면 가명으로 하면 됩니다. 저도 웹툰을 만들면서 가명을 만들었는데, 그림책 작업과 구분하고 싶었거든요.”

- 웹툰 작가로서, 성평등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완전히 평등해지지는 않았잖아요. 세상이 바뀌었을 때 미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 제 역할이 아닐까 해요. 조금 더 빠르게 미래를 경험해 보게 하는 거죠. ‘지금도 많이 좋아졌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평등한 세상으로 바뀌었을 때 ‘이게 완벽히 좋은 건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 2018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청강문화상’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해요.

“시상식에 참가해 함께 상 받는 분들을 실제로 만난 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어요. 동료 의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같은 목표를 가진 분들을 매체나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뵈니, 되게 든든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 현재 계획하고 있는 일이나 목표가 말씀해주세요.

“다음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은 아이디어 정도 단계라서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떤 이야기를 입혀야 메시지를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여러 번 작업을 해도 새로 작업을 시작할 때는 늘 막막해요. 머릿속에 있는 막연한 이야기를 활자화하거나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는 상황이지만, 아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게 목표에요. 만화가 아니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결과물로 나올지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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