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약 한 달 전이었다. 한 가지 일에 정진하면서 몇십 년 동안 깊이, 그리고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걷거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무척 비웃을 이야기겠지만, 당시 나는 몸과 마음이 지친데다가 별 능력도 없다는 자괴감에 엄청 시달렸다. 심지어 마흔 살이라는 물리적 나이의 무게까지 겹쳐 괴로웠다.

또래의 마흔 살 여자들이 함직한, 됐음직한 것들에서 나는 참 멀리도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고약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숭숭하던 작년 여름 즈음에 난 희한한 결심을 하나 했다.

앞으로는 돈이나 많이 벌겠다거나, 성공하겠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겁날 것은 없었다. 같잖은 '아님 말구'의 정신이 도진 탓이다.

그래서 비디오 저널리스트 공부를 시작했다. 3개월 코스의 짧은 공부였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작품도 준비했다.

선생님과 수강생 모두 합쳐 최고령자가 나였다. 하여튼 모 연예인의 뒤를 밟으며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그 와중에서 내가 처한 상태가 좀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 나이에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작하고 그러면서 바닥부터 새로 박박 긴다는 게 어려운 일인데 대단하다고 치하(?)했지만 생각해 보면 잡지사 편집장이라는 명함이 조금은 힘이 되긴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바닥은 예사 바닥이 아닌지라 진짜 초자 바닥 취급을 받았다. '저 사람은 누구냐? 어디 방송에서 나온 거냐?'고 물을 때마다 내 다큐의 주인공이 '저 사람은 학생이다, 연습생이다'라고 대답을 하는 데 묘하게 주눅이 들었다.

거대 방송사에서 촬영을 오면 나는 좋은 자리를 슬며시 양보하거나 뺏기고 뒤에서 얼쩡거렸다. 이상하게 자신이 없었다. 간신히 작품을 완성하고 일을 그만둔 후로는 열심히 바닥부터 기어올라가자 다짐하고는 다른 작품을 만들어 모 영화제에 보내놓고는 당선소식만을 기다렸다. 어이없게도 첫 작품에 당선을 의심치 않을 만큼 내 속은 오만하고 방자했던가 보다.

말로만 겸손을 떨었을 뿐, 막상 엊그제 본선에 오르지 못한 것을 확인하고 나니 바닥부터 기겠다는, 성실하겠다는 다짐을 언제 했던가싶게 맥이 쭉 빠져 손을 놓고 있다. 경쟁률이 무지하게 높다는 것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반성하건대, 나는 사실은 바닥부터 박박 길 생각이 없었던가 보다. 그것은 정말 대단한 결심을 하거나, 진정 겸손해야 할 일인 듯싶다. 뒤숭숭하다.

권혁란/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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