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곳조차 없는』
린지 밀러 글‧사진, 송은혜 옮김
인간희극 펴냄, 1만6000원

린지 밀러 작가가 촬영한 북한 여성들. ⓒ인간희극
린지 밀러 작가가 평양에서 만난 여군들. ⓒ인간희극

기자 시절, 평양 다녀올 기회가 두 번 있었다. 영상으로만 접했던 주체사상탑이며 김일성 광장, ‘평양의 맨해튼’이라는 만수대 지구를 보고 싶었다. 텅 빈 거리 한가운데서 자동인형처럼 양 팔을 움직이며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씩씩하게 등교하는 청소년들도 보고 싶었다. 첫 번째 기회는 추첨에서 떨어졌고, 두 번째는 가슴쓰리지만 후배에게 양보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평양의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

평양 주재 영국 외교관 배우자로 2년 간 평양에 살았던 린지 밀러의 『비슷한 곳조차 없는』은 그가 찍은 사진과 글을 묶은 책이다. 북한 사정을 담은 영화와 책들이 적잖지만, 이 책은 자신이 “매일매일 마주쳤던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독자들이) 함께 경험하길” 바란다. 뮤지컬 감독이자 작곡가인 저자가 “절망적으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는 혼돈”을 겪은 이유를 공감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북한 체험기는, 적어도 내가 읽은 책들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외세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가난하지만 꿋꿋이 살아가는 지상낙원이라는 관점이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많은 북한방문기가 그랬다. 반대로, 거짓말로 점철된 ‘극장 국가’라는 관점도 있다. 둘 다 일정부분 사실들을 담고 있지만, 그 극단적인 해석은 독자를 피곤하게 만들고 설득력을 잃곤 한다. 『비슷한 곳조차 없는』은 ‘지상낙원’ 관점을 철저히 배제하는 한편 ‘극장 국가’를 연민어린 눈으로 살펴본다.

『비슷한 곳조차 없는』 린지 밀러 글‧사진, 송은혜 옮김, 인간희극 펴냄
『비슷한 곳조차 없는』 린지 밀러 글‧사진, 송은혜 옮김, 인간희극 펴냄

“현실은 단순하지 않았다. 평양의 겨울은 고난의 나날이었지만, 이곳에서도 삶은 계속됐다. 북한 주민들은 혹독한 날씨와 환경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저자는, 셰익스피어 무대를 만들었던 연극인의 관점에서 선전의 뒷면에 있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하지만 바로 다음 줄 그가 그려낸 ‘평양 소묘’는 적잖은 당혹감을 안겨준다. “거의 선택의 여지없이 참가하는 듯 했지만, 평양의 주부들은 추운 겨울이 되어도 여전히 아침마다 거리에 나와 출근하는 이들을 향해 응원가를 부르며 춤을 췄다.” 대입 수능시험 날 학교 후배들의 교문 응원은 봤어도, 출근하는 이들을 향한 거리의 치어리더라니! 가부장적 북한 사회가 빚어내는 여성 동원의 한 장면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내 사진의 목적은 표면 아래의 복잡한 실상을 포착하고 이해하는 데 있다”는 그는 2017년 평양에 도착하면서부터 2019년 떠나올 때까지 1만2000점의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는 여성의 외모에 점수를 매기는 군인들, 삐걱거리는 수동 리프트를 이용해 고층 아파트 페인트 칠을 하는 노동자들, 손으로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소녀들, 성균관 뜰에서 ‘웨딩’ 사진을 찍는 신혼부부들, 거리 곳곳에서 매스게임(집단체조)을 연습하는 주민들…. 그의 사진은 체제 선전의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체제 고발의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 

『비슷한 곳조차 없는』에 실린 평양의 모습. ⓒ인간희극
『비슷한 곳조차 없는』에 실린 평양의 모습. ⓒ인간희극
『비슷한 곳조차 없는』에 실린 평양의 모습. ⓒ인간희극
『비슷한 곳조차 없는』에 실린 평양의 모습. ⓒ인간희극

 

나는 책에 담긴 사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저자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어 한 북한 주민들의 삶을 생각했다. 특히 그가 종종 주목한 여성들을. 영화배우처럼 예쁜 한 여성의 옆모습을 담은 한 사진에 그는 이렇게 썼다. “북한의 식당이나 가게, 그리고 사격장 직원들이 거의 모두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 하다. 술 취한 남성이 젊고 예쁜 여성들에게 막무가내로 입 맞추려 하는 모습을 셀 수없이 많이 봤다. (중략) 북한 헌법에는 여성을 존중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내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그러한 법은 잘 준수되고 있지 않았다.”

책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자전거 앞뒤로 짐을 꽉꽉 채워 실은 젊은 여성, 추운 겨울 맨 손으로 장 본 비닐 봉투를 들고 가는 주부들, 식당과 사격장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들… 저자는 “북한을 떠나오며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도… 우리 사이의 벽을 허물지 못했다“고 아파했다. 너무 오래지 않는 미래에 저자가 다시 북한 주민들을, 여성들을, 친구들을 사진에 담을 시간이 오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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