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 한달 경과
위장 수사로 ‘박사방’ 조주빈 검거
성인 아닌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만 적용
현재 가상 주민등록증 발급은 불가

ⓒ홍수형 기자
ⓒ홍수형 기자

아동·청소년을 노린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경찰의 위장 수사가 가능해졌다. 텔레그램을 통한 성착취 범죄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올 초 국회 문턱을 넘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 덕분이다. 다만 여전히 위장 수사 시 가상 주민등록증 발급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위장 수사로 ‘박사방’ 조주빈 검거

텔레그램 ‘박사방’ 위장수사 잠입과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 성과와 과제’ 세미나 자료 발췌.<br>
텔레그램 ‘박사방’ 위장수사 잠입과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 성과와 과제’ 세미나 자료 발췌.<br>

2019년 11월,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박사방’ 수사팀은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공유·판매하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대화명 박사)을 잡기 위해 돈을 주고 단체대화방에 들어가기로 했다. 처음 수사팀이 가상화폐로 10만원을 주고 대화방에 잠입하자, 조주빈은 아동 성 착취 영상을 다른 대화방에도 유포하라고 지시했다. ‘프락치나 형사, 기자’를 골라내야 한다는 취지였다. 조주빈은 영상을 유포하지 않은 대화방 참가자들을 강제퇴장 시켰다. 박사를 잡아야 했지만 경찰이 불법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 결국 해당 대화방은 사라지면서 수사를 중단해야 했다. 

3개월 뒤인 지난해 1월, 경찰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았다. 조주빈은 여러 곳에 글을 올려 “70만원을 주면 ‘위커방’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홍보했다. 신분 인증도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수사팀은 다시 70만원의 가상화폐를 송금했다. 그러나 조주빈은 수사관에게 신분 확인을 요구했다. 더는 수사를 지체할 수 없었던 경찰은 지인의 신분증을 보냈으나 조주빈은 ‘새끼손가락을 들고 얼굴 인증 사진’을 다시 요구했다. 수사관은 지인을 설득해 사진을 전송했으나 조주빈은 끝내 입장을 불허했다. 이후 수사팀은 두 달간 추가로 수사를 계속한 끝에 조주빈을 검거했다. 조주빈은 지난 14일 징역 42년을 선고받았다.

성인 아닌 아동·청소년 대상 ‘온라인 그루밍’ 범죄에만 적용

이처럼 과거에는 경찰이 위장 수사를 할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이 불가능했지만 현재는 구매자 혹은 아동·청소년인 척 성착취물 판매자에게 접근해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위장 수사는 텔레그램 박사방·n번방 등에서 일어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계기로 도입됐다. 그러나 현재는 성인이 아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그루밍 범죄에만 적용이 가능하다.

경찰은 지난 9월 24일부터 온라인상에서 아동청소년에게 성착취 목적의 대화나 성적 행위를 유인·권유하는 ‘온라인 그루밍’을 위장 수사 중이다. 위장 수사 시 경찰은 신분을 밝히지 않고 범죄자에게 접근해 범죄와 관련된 증거 및 자료 등을 수집할 수 있다. 범죄 혐의점이 충분히 있는 경우 중 수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득이한 때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신분을 위장해 수사를 한다.

위장 수사에도 가상 주민등록증 발급은 불가

그러나 현재는 경찰에게 신분 조회가 되는 가상 주민등록증 발급은 불가능하다. 조주빈은 범행 당시 사회복무요원에게 돈을 주고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했다. 만약 조주빈 같은 디지털 성범죄자가 경찰에게 주민등록증 인증을 요구하면 수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번에 개정된 ‘신분 위장 수사’ 특례 조항을 보면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문서, 전자기록 등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법률에 구체적인 절차가 명시되지 않았다. 18일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신분 조회가 가능한 신분증 발급은 안 된다”며 “정식 발급은 아니더라도 온라인 그루밍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장 수사는 범인을 잡겠다는 것보다 범죄 예방과 피해자 구출을 우선순위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등록법상 제약 때문에 가상 인물의 주민등록증은 만들 수 없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위장수사 현황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현재 진행 중인 건들이 있다”며 “오는 27일 1개월간의 진행 상황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적극적 위장 수사는 유관 기관과의 충분한 논의 통해 발전시켜야”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위장 수사는 형법이 만들어지고 이번에 처음 허용됐다”며 “경찰도 드라마틱한 언더커버(비밀리에 하는 첩보 활동을 의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수사 과정에서 불법성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최선보다는 덜 위험한 차선을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가 공권력이 과하게 접근하면 가해자의 인권 침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승 연구위원은 “조주빈 대법 판결을 봤을 때 법원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는 엄중한 범죄’라는 인식을 가진 것은 확인됐다”며 “아동 성착취와 관련해서 미국의 적극적인 수사기법을 도입할 땐 사법정책연구원이나 형사정책연구원 등과의 충분한 검토와 합의를 통해 발전시켜야 할 듯”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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