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12일 현재 19일째 넷플릭스 세계 1위
‘갯마을 차차차’ 국내 1위, 베트남 등에선 ‘오겜’ 제쳐
‘갯차’, 빈부·세대 차 고발 대신 ‘협력·이해·배려’ 강조
출생비밀·불륜·폭력·선정성 없고 주·조연 구분 흐릿해

‘갯마을 차차차’ 포스터. ⓒtvN
‘갯마을 차차차’ 포스터. ⓒtvN

‘갯마을 차차차’(tvN 토일 오후9시, 연출 유제원, 극본 신하은)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국내는 물론 해외 분위기도 뜨겁다. 10일 방송된 14회는 11.6%(닐슨코리아)라는 높은 시청율(동시간대 최고)을 기록했고, 넷플릭스에선 ‘오징어 게임’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11일(미국시간) ‘넷플릭스 오늘의 세계 톱10 TV프로그램(쇼)’ 부문에서 19일째 정상을 고수했다(플릭스 패트롤,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서 순위를 집계하는 83개국 중 8개국을 제외한 75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8개국 중 덴마크를 제외한 한국과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는 ‘갯마을 차차차’가 1위였다. 위키피디아 한국콘텐츠 9월 공식랭킹에서도 ‘오징어게임’ ‘방탄소년단’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갯마을 차차차’는 ‘오징어 게임’과 결이 완전히 다르다. 작은 바닷가마을을 배경으로 30대 중반 남녀의 티격태격하는 사랑과 대문 없이 사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다. 이 드라마엔 ‘오징어 게임’을 관통하는 폭력과 자극이 없다. 세상을 향한 끔찍한 분노와 고발도 안 보인다. 국내 드라마에 흔한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도, 여자와 여자 사이 갈등도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식의 생존게임 역시 전무하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지배하는 자와 지배 당하는 자의 적대감도 찾기 어렵다. 누가 누구를 무시하거나 얏보는 일도 없다. 주연과 조연의 구분도 흐릿하다. 출연자 대부분이 각기 뚜렷한 색깔을 지닌 공동주연에 가깝다.

대신 ‘오징어 게임’에 없는 것들이 있다. 번호와 기호 투성이인 오징어게임과 달리 출연자 전원이 제 이름을 지닌 채 나오고, 극 전체에 협력과 화해· 공존, 이해와 배려가 깔린다. ‘저렇게 예쁠 수가’ 싶은 바다의 일출과 일몰, 오징어배 불빛과 무수한 별빛, 바람에 흔들려 눕되 부러지지 않는 풀잎이 있다.

무엇보다 “질척거리지 않는 다정함이 좋아”, “주파수가 안맞아서 가끔 지지직거려도 아버지 마음은 온통 너를 향해 있어”, “사랑엔 매뉴얼이 없어” “털어놔 봐. 말이란 것도 똥 같아서 주기적으로 싸질러야 독이 안되는 거야”같은 찰진 대사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오징어 게임’과 ‘갯마을 차차차’는 현실을 적시한다. 둘 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오징어 게임’은 발버둥칠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스러지는 사람들을, ‘갯마을 차차차’는 이런저런 허들에 걸려 넘어지지만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걸어가려 애쓰는 이들을 그린다.

‘오징어 게임’의 리얼리즘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무서운 흡인력으로 끝까지 연속 시청하게 만드는 구성과 연출력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주제는 무겁고 표현은 잔혹하다. 아이들이 보도록 내버려 두는 건 ‘어린이 학대’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어른도 시청하는 내내 뭔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피하기 어렵다. 

‘갯마을 차차차’   ⓒtvN
‘갯마을 차차차’ ⓒtvN

‘갯마을 차차차’엔 이런 불편함이 없다. 배경은 강원도의 바닷가 마을 공진. 서울에서 내려온 치과의사 윤혜진(신민아)과 역시 서울에서 온 뒤 온동네 궂은 일을 떠맡는 반 백수 홍반장(김선호)의 밀고 당기는 사랑은 풋풋하고, 팔순의 나이에도 오징어를 손질하는 김감리(김영옥) 할머니의 한 마디는 세상 오래 산 이의 지혜로 가슴을 파고 든다.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키우는 여화정(이봉련)의 씩씩함 뒤에 감춰진 아픔, 실패한 가수로 혼자 중2 딸을 키우느라 어쩔 줄 모르는 카페 주인 오춘재(조한철)의 안쓰러움 또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배가 불러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빨리 출산하면 좀 나아질 텐데”라는 남편을 향해 “아기가 태어나는데 어떻게 나아져. 기저귀는 누가 갈고 목욕은 누가 시켜”라고 되받는 아내의 외침은 독박 육아에 시달리는 이땅 엄마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현실을 다루는데 기막힌 일이 없으랴. ‘갯마을 차차차’에도 비리와 범죄가 나온다. 돈 없는 환자에게 비싼 임플란트 대신 싼 치료법을 내밀었다는 이유로 의사를 다그치는 병원 원장, 치료 받는 도중 간호사를 성추행하고도 증거 있냐며 큰소리치는 파렴치범, 한밤중 술 취한 여성을 납치하려 들거나 혼자 사는 여성 집에 침입한 성폭행범의 등장이 그것이다. 

‘갯마을 차차차’ ⓒtvN
‘갯마을 차차차’ ⓒtvN

‘갯마을 차차차’는 그래도 장애물에 걸려 쓰러져 무너지는 사람들이 아닌,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혜진은 원장에게 대들었다는 이유로 다른 병원에도 취직을 못하게 되자 시골마을 공진에 내려와 개업하고, 홍 반장 두식은 서울살이에 실패한 뒤 고향에서 최저임금만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즐겁다.

배꼽티에 레깅스를 입고 조깅하는 혜진을 두고 “망칙하다”며 뒷담화를 하던 어르신들도 그녀가 속은 따뜻하다는 걸 알고 감싸안고, 혼자 사는 두식을 위해 생일과 할아버지 기일에 마을사람 모두 음식을 싸들고 온다. 마을 CCTV를 자처하는 등 주책과 말썽을 부리는 조남숙(차청화)에 대해서도 “딸을 잃고 정신줄을 놨다 살아났다”는 이유로 너그럽다.

누구는 이렇게 얘기할 지도 모른다. “‘오징어 게임’은 보기 버겁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고, ‘갯마을 차차차’는 현실의 아픔을 적당히 외면하고 희망사항 내지 이상향을 그려낸 로맨스코미디다.” 그럴 지도 모른다. 실제 ‘갯마을 차차차’엔 등장인물들이 경제적 이유로 고민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갯마을 차차차’는 일종의 판타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는 건 ‘오징어 게임’ 속 서울대생이 드러내는 ‘너를 죽여서라도 내가 살겠다’가 아니라 ‘갯마을 차차차’ 속 서울대생 두식이 보여주는 ‘적게 벌어도 함께 살겠다’가 아닐까.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열풍이 언제까지 갈지, ‘갯마을 차차차’가 ‘오징어 게임’ 선풍을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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