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 유형별 정치후원금 모금액 분포
<그림 1> 18대 총선 후보자 유형별 정치후원금 모금액 분포<br>* 출처: 엄기홍(2012, 236)
<표 1> 21대 총선 A와 B 지역구 출마 후보자들의 정치자금 수입액<br>* 자료: 21대 총선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 자료(정보공개청구)를 바탕으로 직접 정리
Funding For Women Candidates

정치적 평등 vs 의사표현의 자유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시민의 대표자(representative)가 되기 위해서는 선거에 출마해 당선이 되어야 한다. 당선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로부터 표를 얻어야 하고, 표를 얻기 위해서는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데 선거운동을 하려면, 돈(money), 정치자금(political funding)이 필요하다.

그런데 무제한적인 정치자금 허용은 11표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적 불평등이 11표라는 정치적 평등을 훼손시키는 것을 정당화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즉 경제적으로 상층 계급의 이해만이 정치에 반영되어 사실상은 소수의 지배(oligarchy or aristocracy)를 가져오게 된다. 반면, 무조건적인 정치자금 금지는 유권자 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금전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많은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들이 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돈으로 표현하는 기부를 허용하면서도 정치, 특히 선거가 돈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제한할 수 있도록 선거비용이나 후원금 액수를 제한하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치자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자금제도도 이미 가진 자에게 더 유리하고, 못 가진 자에게는 더 불리한 방식으로 제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선출직 후보, 여성에게는 위험한도전

정치자금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치자금이 여성의 정치참여, 특히 여성이 선출직에 도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장벽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성별화된 노동분업의 구조 속에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자산이 적을 뿐만 아니라 정치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인적 자원과 네트워크도 부족하다(Barber, Butler and Preece 2016; Falguera, Jones and Ohman 2014; Kitchens and Swers 2016). 21대 총선에서 당내 경선에 참여했다 탈락한 한 여성정치인은 여성과 남성이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바탕이 다르기 때문에 여성이 (거대)정당 내에서 후보가 되는 것은 대단한도전이 아니라 위험한도전이라고 밝혔다.

 

도전이라고 하는 게 참 좋은 말이긴 한데 정치 안에서의 도전은 돈이라는 거와 관계되고 돈은 여성들한테는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세 번 떨어져도 네 번째에 붙기도 하고 그런데 왜 여자들은 한 번 하고서는 어쩌냐? 그걸 버틸 수 있는 바탕이 남자들하고는 다른 거잖아요. ○○고등학교 나온 경우는 ○○고등학교 남자들 인맥이 쫙 다 해가지고 뭐 천만 원씩 모으면 그걸로 버텨. 4년 버티고 또 선거 치를 때 돈 없으면 친구한테 돈 가져다 쓰고 그런다는 거에요. 나는 ●●여고, ◇◇대학 나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학벌 좋다고 하지만 거기서 들어온 돈이 얼마나 돼. 그래서 후보까지 올라간 여성들한테 그걸 대단한 도전이라고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도전인 거죠.” (이진옥 외. 2020. <성평등한 정치 대표성 확보 방안 연구>에서 발췌)

 

현직 의원과 거대 양당에 유리한 정치자금제도

정치자금제도가 지금의 구조와 내용을 갖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2002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대기업으로부터 약 800억 원에 이르는 불법정치자금을 박스가 담긴 트럭채로 받았다는 사실(일명 차떼기 사건’)이 검찰 수사로 2003년 말에 밝혀지면서 정치자금 법제도 개혁이 이뤄졌다. 이때 법인과 단체의 기부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했고, 중앙당 후원회를 폐지했으며(2017년에 다시 부활), 개인 후원인의 기부금 상한액도 12천만 원에서 2천만 원으로 대폭 낮추었고, 국회의원이 1년에 모금할 수 있는 후원액도 이전의 절반 수준인 15천만 원으로 낮추었다(윤종빈 2004).

2000년 이전부터 정치를 해왔던 정치인들에게는 과거보다 제약이 심해졌기 때문에 개혁일 수 있으나 정치를 시작하고자 하는 여성과 청년,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등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높은 문턱이고 장벽이다.

선거에서 당선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현직’(incumbent)이다. 현직 의원이 수행하는 모든 활동이 사실상 선거운동이기 때문에 현직 의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프리미엄(premium)을 갖는다. 여기에 현직 국회의원은 매년 15천만 원까지 모금할 수 있고, 선거가 있는 해에는 기존 모금액의 두 배인 3억 원까지 모금이 가능하다. 정치자금법 제13(연간 모금·기부한도액에 관한 특례)는 국회의원 선거 때뿐만 아니라 대통령 선거와 동시지방선거가 있는 해에도 3억 원까지 모금할 수 있도록 현직 국회의원에게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도전자(challenger)인 후보자는 예비후보로 등록해야만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는데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자는 선거일 120일 전부터 등록이 가능하다. 후원금 금액뿐만 아니라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는 시간에서도 도전자인 후보자는 현직 국회의원보다 불리하다.

 

정치자금법 제13(연간 모금·기부한도액에 관한 특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후원회는 공직선거가 있는 연도에는 연간 모금·기부한도액의 2배를 모금·기부할 수 있다. 같은 연도에 2 이상의 공직선거가 있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개정 2008.2.29., 2012.2.29., 2017.6.30.>

1. 대통령선거

후보자를 선출한 정당의 중앙당후원회 및 지역구국회의원후원회

2.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의 중앙당후원회 및 지역구에 후보자로 등록한 국회의원후원회

3. 임기만료에 의한 동시지방선거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의 중앙당후원회 및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의 지역구국회의원후원회

 

18대 총선에서 현직의원이 출마한 지역구를 대상으로 현직의원 후보와 도전자 후보의 정치후원금 간 불평등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분석대상에 포함된 지역구의 2/3 이상에서 현직의원인 후보가 모금한 정치후원금 액수는 도전자 후보가 모금한 정치후원금 액수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1> 참조, 엄기홍 2012). 

후보자 유형별 정치후원금 모금액 분포  ⓒ엄기홍(2012, 236)
<그림 1> 18대 총선 후보자 유형별 정치후원금 모금액 분포
* 출처: 엄기홍(2012, 236)

더욱이 거대양당(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후보들은 현직과 도전자 모두 선거가 끝난 이후에 자신이 사용한 선거비용의 상당 부분을 보전받는다. 낙선해도 득표율 15%를 넘길 수 있고, 15%를 넘긴 이들에게는 국가가 선거비용을 보전하라고 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공직선거법 제122조의2). 21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청년 여성정치인이 말했듯 현재의 정치자금제도는 돈 없는 사람들은 (돈을) 내고,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돌려주면서 후보자들의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키”(이진옥 외 2020)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여성×청년 정치인, 낙선 이후에도 정치인으로의 삶이 지속 가능할까?

19대 국회의원의 2014년 후원금 모금액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전용주·구본상 2015), 여성의원의 후원금 모금액 평균은 약 127,517,419, 남성의원의 평균은 약 176,070,860원이었고, 이 금액은 99.9% 신뢰수준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의원이어도 남성의원이 여성의원보다 후원금을 더 많이 모은다고 할 수 있다. 20대 총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후원금 모금액 결정요인을 살핀 연구에서도 후원금은 평균액수에 있어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이 모금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전용주 2019). , 다른 요인들을 통제했을 때는 성별의 영향력이 사라졌다.

선거에 출마하는 모든 여성이 정치자금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거대정당 소속이거나 여당이거나 자신이 속한 정당의 지지기반이 튼튼한 지역구에 출마하거나 현직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여성도 남성만큼 또는 그 이상 후원금을 모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여성들이 많지 않고, 거대정당 내 남성정치에 의해 여성들이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페미니스트 청년 여성정치인에게 거대양당은 선택지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은 소수정당이나 무소속으로 출마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수정당과 무소속에 불리한 정치자금제도로 인해 절대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선거를 치러야 한다.

21대 총선에서 페미니스트 정치를 외친 청년 여성정치인이 출마한 지역구 두 곳을 선정해 후보자들의 정치자금 수입액을 살펴봤다(<1> 참조). A지역에서 당선된 여당 현직의원 후보()는 후원금으로 약 2억 천만 원을 모금했고, (1야당) 후보는 약 1억 원을 모금했다. 반면, 페미니스트 청년 여성정치인은 약 33백만원을 모금했다. B지역에서 당선된 여당 현직의원 후보()는 약 18천만 원을 모금했으며, 1야당 후보는 약 6천만 원, 페미니스트 청년 여성정치인은 약 6천만 원을 모금했다.

21대 총선 A와 B 지역구 출마 후보자들의 정치자금 수입액 * 자료: 21대 총선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 자료(정보공개청구)를 바탕으로 직접 정리
<표 1> 21대 총선 A와 B 지역구 출마 후보자들의 정치자금 수입액
* 자료: 21대 총선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 자료(정보공개청구)를 바탕으로 직접 정리

후원회 모금액에서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선거에 투입한 자산에서도 차이가 난다. A지역과 B지역에서 여당 현직의원 후보는 자산을 각각 23만원과 3천원 사용했다. 반면, 두 지역에 출마한 페미니스트 청년 여성정치인은 각각 약 1,200만 원과 2,100만 원을 사용했다. 두 지역의 여당 후보는 후원금이 전체 선거수입액인 반면, 1야당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은 자산과 후원금, 정당보조금과 정당보조금 외 수입들을 합해도 여당 후보 후원금을 따라 잡지 못한다. 

더욱이 AB 지역에 출마한 여당과 제1야당 후보는 억 단위의 정치자금을 선거에 지출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비용 중 선거비용에 해당하는 비용을 선거 이후에 거의 돌려받는다. 반면, 다른 후보들을 포함한 페미니스트 청년 여성후보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AB 지역에 출마한 청년 여성정치인들이 선거기간에 지출한 비용을 선거 이후에 갚아야 할 상황이라면, 이들은 이후에 다시 선거에 나가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지속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치자금제도 개혁, 페미니스트 정치(인)의 중요 임무

국회뿐만 아니라 광역·기초 의회와 단체장과 같이 선출직 의석의 절대 다수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의 정치자금제도로부터 상당한 수혜를 누리고 있다. 즉 거대양당체제 유지와 정치자금제도 간에는 상당히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는 거대양당체제와는 다른 정치를 지향하는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이 정치 진입을 막을 뿐만 아니라 한국정치가 다양성에 기초한 페미니스트 정치와 성평등 정치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다. 

거대양당체제는 오히려 다수의 시민 집단을 정치에서 배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이 정치를 지배하면서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를 가속화한 미국정치의 현재가 한국정치의 미래일 수 있다. 이러한 미래에서 벗어나고, 현재 지구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대양당체제의 해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거대양당에 유리한 정치자금제도 개혁은 거대양당체제를 해체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대표의 다양성 확보, 성평등 정치 실현,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자금제도를 비롯한 성별화된 정치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며, 이것 또한 페미니스트 정치()의 중요한 임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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