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문화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지양 66100 대표
2019년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자, 플러스 사이즈 여성의류 쇼핑몰 ‘66100’을 운영하는 김지양 대표. ⓒ김지양 대표 제공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자, 플러스 사이즈 여성의류 쇼핑몰 ‘66100’을 운영하는 김지양 대표. ⓒ김지양 대표 제공

플러스 사이즈 여성의류 쇼핑몰 ‘66100’을 운영하는 김지양 대표는 국내에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존재를 알린 인물이다. 빼빼 마른 몸매만이 모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 과체중 모델이 존재하고, 그들이 일반 모델처럼 런웨이에 선다는 사실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보편화 돼 있다. 인구의 30% 이상이 비만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패션 브랜드에 플러스 사이즈가 존재하며, 그 제품을 홍보할 모델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플러스 사이즈만의 패션위크도 존재한다. 그중 최대는 ‘풀 피겨드 패션위크 로스앤젤레스’(Full Figured Fashion Week LA). 김지양은 2010년 이 무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데뷔했다. 또 2011년 베네통코리아가 주최한 사진 콘테스트에서 톱20에 이름을 올렸고, 같은 해 ‘아메리칸 어패럴 플러스 사이즈 모델 콘테스트’(American Apparel Next Big Thing) 온라인투표 부문에서 전 세계 991명 중 8위를 차지했다.

그가 처음부터 플러스 모델을 꿈꾼 건 아니었다.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권고사직을 당한 뒤, 진로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모델 서바이벌 프로그램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시즌1 광고를 보고 무작정 모델에 도전했다. 비록 도전만으로 끝낸 대회였지만, 그 시간이 계기가 되어 세계 각국 모델 에이전시에 자기소개서를 보냈고 풀 피겨드 패션 위크를 통해 데뷔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관심은 반짝,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설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스스로를 고용하자”는 마음으로 2014년 플러스 사이즈를 다룬 패션 컬처 매거진 『66100』을 창간하고, 여성 의류 쇼핑몰을 열어 운영해오고 있다. 현재 매거진은 발행을 중단한 상태다.

김지양은 잡지 발간과 더불어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사람들 몸의 다양성에 주목하고,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를 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2019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을 받았다. 홍대 앞에 위치한 66100 쇼룸에서 김지양 대표를 만났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자, 플러스 사이즈 여성의류 쇼핑몰 ‘66100’을 운영하는 김지양 대표. ⓒ김지양 대표 제공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자, 플러스 사이즈 여성의류 쇼핑몰 ‘66100’을 운영하는 김지양 대표. ⓒ김지양 대표 제공

- 코로나19로 옷이나 화장품 매출이 많이 줄었다고 하더라고요. 66100은 어떤가요?

오프라인 매출이 많이 줄었어요. 확실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람들이 옷을 잘 안 사요. 온라인으로 새로운 고객이 유입되긴 하지만, 저희 쇼핑몰은 워낙 기존 고객층이 두터운 편이에요. 20살 때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해 7년째 단골인 손님도 있어요. 그분은 지금 대학 졸업하고 임용고시 준비하고 계시죠.

- 66100은 한번 고객이 되면 단골이 되는 편인가요?

다양해요. 단골이 되는 분들도 계시고, (몇 번 구입한 뒤) 거쳐 가는 분들도 계시죠. 처음 저희 쇼핑몰이나 매장에 오신 분들은 옷을 고르고 입는 방법이나 자기에게 잘 맞는 옷을 찾아가거든요. 그 과정에서 보면 (자기 스타일을 찾고 다른 쇼핑몰을 찾아가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 있지요. 계속 저희 옷만 입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66100은 ‘1대1 스타일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체 치수를 정확히 재고,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살펴보고, 이에 맞춰 어울리는 옷을 제안한다.

- 어떤 식으로 옷을 골라주나요?

체형을 기준으로 해요. 스타일도 중요하지만, 사람마다 다 체형이 다르니까요. 사이즈를 잰 뒤 밑위가 긴지, 엉덩이가 큰지, 아니면 골반이 넓은지, 배가 나왔는지, 어깨가 좁은지 굽었는지 등 전체적인 체형을 보고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요. 저희는 ‘체형 커버’라는 말을 안 써요. 자신의 체형에 맞는 옷이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어깨가 좀 많이 굽은 분이라면 라그랑 소매(어깨선이 없는 스타일)를 권해요. 굽어진 어깨가 티 나지 않게 하는 거죠. 또 허리는 가는데 허벅지나 엉덩이, 골반이 넓은 분이라면 핀턱이 잡혀 있는 바지가 있어요. 여기에서도 핀턱이 한 개냐 두 개냐, 소재가 스트레치냐 아니면 그냥 일반 스트레이트냐에 따라 달라져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본인에게 어울리는 바지를 찾을 수 있어요. 그렇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서 입는다면 태가 나는 건 물론이고, 편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사이즈도 정확하게 모르고, 뭐가 어울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죠.

-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어떤 분이었나요?

너무 많은데… 뚱뚱해져서 이혼을 당하신 분이 가게에 오신 적이 있어요. 그분이 남편과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회사 동료가 결혼하는 거예요.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텐데, “용기를 내서 한번 가보고 싶다”며 “옷을 골라 달라”고 오셨어요. 저도 바짝 힘을 주고 골라드린 기억이 있어요. 그 후로 연락이 왔는데 “정말 잘 다녀왔다. 가기를 잘했다”는 후기를 받았어요. 이분처럼 ‘도저히 바깥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을 때 이 옷이 밖으로 이끌어 줬다’는 사례는 많지요.

- 옷이 진짜 날개네요.

옷이 날개인 것 같아요. 어디로든 나를 데려가 줄 수 있는 날개. 사람들은 예쁜 옷을 입고 나오면, 왠지 약속을 잡아야 할 거 같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런 옷들을 일상적으로 입어요. 그러면 매일 매일 되게 특별한 날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런 걸 언제 입지?’하는 옷들이 있었는데, 입기 시작했더니 동네에서 처음 마주치시는 분들 빼고는 크게 놀라는 사람들이 없더라고요.

- 다른 인터뷰에서 ‘엄마와 함께 오는 손님들이 가장 어렵다’고 했어요.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엄마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여성이 많아요. “그 몸매로 어딜 나가냐?”, “넌 이런 건 안 어울린다.”, “살 안 빼니? 내가 멀쩡하게 낳아줬는데.” 그런 말들을 듣고 사니까, 더 위축되고 움츠러들어요. 어떤 옷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가능성을 삭제당하는 경험이 계속되는 거죠. 그 고리를 끊어내지 않으면 아무 옷이든 언제든 입고 싶을 때 입을 수 없어요. 자신감이나 자존감을 얻거나 기르려면 내 자존감을 깎는 사람들과 계속 멀어져야 해요. 그 대상이 남자친구가 될 수 있고, 친구가 될 수 있고, 엄마나 가족이 될 수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의 말이 어떤 의미고 그 말을 들음으로써 내가 얼마나 자존감이 깎이는지.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해요. 정식으로 항의하는 거죠.

그분들의 생각은 ‘어떤 옷은 입을 수 있는 몸이 정해져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 몸은 누가 정해놓나요? 미디어에서 정한 거예요. S라인 몸매, 44사이즈, 누구(대개 여자 연예인) 몸매…. 그런 식으로요. 미디어에서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서 사람들이 남의 신체를 재단하고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는 거죠.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자, 플러스 사이즈 여성의류 쇼핑몰 ‘66100’을 운영하는 김지양 대표. ⓒ김지양 대표 인스타그램 캡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자, 플러스 사이즈 여성의류 쇼핑몰 ‘66100’을 운영하는 김지양 대표. ⓒ김지양 대표 인스타그램 캡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자, 플러스 사이즈 여성의류 쇼핑몰 ‘66100’을 운영하는 김지양 대표.  ⓒ김지양 대표 제공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자, 플러스 사이즈 여성의류 쇼핑몰 ‘66100’을 운영하는 김지양 대표. ⓒ김지양 대표 제공

 - 미국 풀 피겨드 패션위크 로스앤젤레스에서 데뷔한 지 벌써 11년이 됐네요. 아무래도 한국 최초라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죠.

남 좋은 일을 많이 시킨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기회가 왔을 때 저를 찾기보다 새로운 얼굴을 찾아요. 처음에는 어떤 기회든 많이 잡고 알려야 했기 때문에 어떤 요청이든 하려고 했지만, 돈을 주는 데는 열 군데 중 한두 군데였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거기에 매달려서 매몰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계속했죠. 다행히 저는 운이 좋아서 화장품 광고도 했고, 자동차 광고도 했어요. 이제 휴대전화 광고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 모델이 나의 천직이라고 느낄 때가 있었나요?

카메라 앞에 있을 때 가장 나다운 것 같아요. 어떤 촬영이든 좋아해요.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이라는 걸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11년쯤 되니까 되더라고요. 이제는 점점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데 편해지는 것 같아요. 사진 속의 제가 편해졌다고 해야 하나요. 예전에는 날이 서 있고 긴장하고 잘 나와야 하는 강박이 있었다면 지금은 ‘어떻게든 나오겠지’ 생각하고, 강박은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이렇게 나오든 저렇게 나오든 나라는 걸 인지하게 됐지요. 한 번은 5년 전 인터뷰 사진을 다시 봤어요. 그때는 진짜 이상하게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까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지금이 최선이다’ 생각하고 나면 편해지는 것 같아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고 해도 마냥 편한 건 아니다. 김지양에게도 일정한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러던 중 2016년 여성환경연대에서 ‘살찔 권리, 시선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기’란 주제로 강연을 준비하면서 달라졌다. 나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재단한 경험을 돌이켜 생각하며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다.

 

- ‘살찔 권리’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었을까요?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까 10kg이 불었더라고요. 제가 외모 다양성 운동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수치스러웠어요. ‘뭐 하다가 10킬로나 쪘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다 그 순간에 확 되게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그렇고, 살이 쪘다는 것도 그렇고, 누군가에게서 “김지양 관리 안 하네?”하는 소리를 들을까 그렇고. 살이 찌면 게으르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때 가장 열심히 살고 있었어요. 새벽 4시까지 일하고 다음 날 오전 11시에 일어나서 일을 시작했죠. 계속 앉아서 일하면서 그 루틴으로 1년을 살았어요. 촬영이 있는 날은 24시간 깨어 있으니 몸이 붓고 찌고를 반복하잖아요. 그럼 살이 찌는 게 당연하죠. 내가 나에게 너무 혹독하고 세상의 시선 때문에, 욕먹을 것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 너무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살찔 권리란 그런 거예요. 내가 살이 찌든 빠지든 내 몸에 대해서 결정할 권리, 내 몸을 긍정할 권리. 내 몸 상태와 상관없이.

강연하면서 그런 말을 했어요. “여러분, 놀았어요? 게을렀어요?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만큼 살았나요? 아닐 거예요.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애를 많이 썼을 거라고. 그러면 스스로 칭찬해줘야지 스스로 비난하고 있냐고.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필요가 있다”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 앞으로의 계획은?

섭식장애 여성 청소년 여성지원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데,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어서 어떻게 진행할 수 있을지, 수익 사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계속 마음에 짊처럼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어서 코로나가 끝나기 전에는 실행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또 비만여성 자조모임을 만들고 싶어요. 스스로 비만으로 느끼는 여성이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한 자조모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외모에 대한 고민들, 외모나 체형에 대해서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모임이요.

중요한 건 제도적인 변화라고 봐요. 남녀 교복을 통일한다든지, 학교마다 상담 교사들이 섭식장애를 전수조사한다든지요. 외국에선 옷을 일정 사이즈 이상으로 만들지 않으면 판매를 못 하게 해요. 파리에선 BMI 18 이하의 모델들은 무대에 오를 수 없어요. 정신질환 사망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이 섭식장애에요. 한 번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어요. 전문 병원도 많이 없어요. 그런데도 인지를 하지 못해요. 파악도 안 되고요. 그런 위험성을 알리고 싶어요. 몰라서 겪는 문제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40대에는 정치를 하는 것이 꿈이에요. 이런 문제들을 제도적으로 바꾸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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