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집에서 조용히 쉬고 싶다고? 당신이 아무리 원해도 그건 불가능하다. 당신의 집에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는 한 집은 당신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모님, 저 무슨무슨 개발의 아무개 과장인데요. 이번에 행정수도 이전 예정지에 좋은 땅이 나와서 알려 드립니다. 요즘 은행이자도….”

부동산 투자를 권하는 전화는 이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렇게 확실한 돈벌이라면 자기들끼리 해 먹을 것이지 왜 이렇게 아무나 끌어들이려는 거야? 이런 전화만은 나도 칼같이 끊을 수 있다.

“관심없어요.”

“사모님이세요? 날씨도 추운데 청소하시기 힘드시죠? 저희가 청소를 무료로 해드리거든요. 어느 시간이 좋을까요?”

아니, 내가 청소 안하고 사는지 이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냈지? 싶어서 순간적으로 혹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내 에이, 번거롭기보다는 더러운 게 참을만 하지 뭐, 하곤 쿨하게 끊는다.

“필요없습니다.”

“아, 사모님이시구나, 사모님댁 번호가 뽑히셨어요.”

“네? 뭐에 뽑혀요?”(아차, 걸려들었다.)

“이번에 무슨무슨 연구소하고 저희 개발원에서 무슨무슨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어쩌구저쩌구….”

“그러니까 도대체 요점이 뭡니까?”

“공동으로 획기적인 교재를…”

이런, 둔치. 책 사라는 말을 그제사 겨우 알아 듣곤 부아가 난다.

“그럼 처음부터 책이라고 말해야지, 왜 그렇게 둘러서 말해요?”

“저흰 단순히 책을 팔려는 게 아닙니다. 무슨무슨 연구소는 우리나라에서…”

“아무튼, 책 사라는 거 아니에요? 관심없습니다.”

텔레마케팅 전화로 쉴 수가 없어

전화기를 내려 놓는데 상냥했던 청년의 표변한 목소리가 귀에 잡힌다.

“에이, 씨∼.”

안 들었으면 좋았을 걸. 공연히 대꾸했다가 구정물을 뒤집어 썼다. 불쾌하다. 그러니 이런 종류의 전화는 매몰차게 끊는 게 상수다. 어차피 팔아줄 게 아니라면 그게 상대방에게도 시간을 벌어 주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여자들일 때다. 여자들 목소리를 들으면 이 원칙이 흔들린다.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벌어먹고 살겠다고 이렇게 애쓰는데 말도 들어보지 않고 끊으면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싶어서 목소리의 날이 스르르 무뎌진다.

후배인 척하는 그녀

어제도 그랬다. 판촉 전화는 대개 대낮에 오는 법인데, 저녁 무렵이었다.

“선배님이시죠? 저 어디어디(언제나 상대가 잘 알아듣지 못하게 빨리 말한다.)에서 일하는 선아예요.”

사모님이 아닌 선배님이라는 뜻밖의 호칭, 그리고 이름에서 성을 뺀 참신한 자기 소개, 게다가 상큼한 젊은 여자의 목소리는 나를 일거에 무장해제시켰다.

유명한 사진잡지 이름을 대면서 들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 왔고 자신은 그 회사의 신입사원으로서 일종의 현장실습을 하는 거니 자신의 성적을 위해서 시간을 조금만 내달라고 예의바르게 부탁해 왔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관한 이야기까지 대화가 진전될 정도로 나는 매우 호의적으로 응했다. 그녀는 중간중간 지금 자신이 잘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 정도의 친화력과 화술이라면 충분한 자질을 구비했으니 앞으로 성공할 거라고 격려했다.

그리고 시간이 된 것 같으니 이만 끊겠다고 했다.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정기구독 판촉이었다. 난 그녀의 마음을 상할까 염려하면서 분명하게 내 의사를 밝혔다. 그녀는 막무가내로 매달렸다. 나는 결국 짜증을 내며 끊어 버렸다.

밤이 깊도록 난 전화선 저 편의 그녀를 떠올리며 잠을 못 이루었다. 바보 같은 나 때문에 헛된 희망을 품었다가 배신감을 느꼈을 그녀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녀의 앞날이 걱정됐다. 아이고, 미안할 것도 많고 걱정할 것도 많아 머리만 복잡한 이 내 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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