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 김이듬 시인

1일 서울 금천구 랩바모스 스튜디오에서 여성문화네트워크가 개최한 '2021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에서 김이듬 시인이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1일 서울 금천구 랩바모스 스튜디오에서 여성문화네트워크가 개최한 '2021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에서 김이듬 시인이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김이듬 시인이 1일 서울 금천구 랩바모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1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문화체육부장관상)을 받았다. 올해 시상식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지속됨에 따라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됐다.

(사)여성·문화네트워크(대표 임인옥)가 주최하고 (주)여성신문사(사장 김효선)가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은 문화를 매개로 양성평등 인식을 확산하는 데 기여한 문화인과 단체를 선정하고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상이다. 김 시인에게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및 상금 500만원이 수여됐다. 

김이듬 시인은 “양성평등문화인상은 저에게 스스로 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며 “현재 작업에 대한 뜻밖의 용기가 됐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김 시인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주어진 격려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 영광은 저의 것이 아니다. 지금도 끔찍할 정도로 외롭고 치열하게 작업하고 있는 한국 근현대 여성 후배 작가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문학을 통하여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삶을 깊이 있게 표현함으로써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 신장과 성평등문화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2001년 등단 이후 여성·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처한 현실을 주제로 성평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의 시집 『히스테리아』가 2020년 미국문화번역가협회 전미번역상을 수상하면서, 해외 문학계에서도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다음은 수상소감 전문이다.

시 쓰는 김이듬이다. 수상 소식을 듣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부끄럽고 이 상을 주관하고 해온 분들에게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저는 양성평등문화상을 알지 못했다. ‘무슨 상이라고요?’ ‘제가 상을 받는다고요?’라고 거듭 질문을 드렸다. 세상에는 수많은 상이 있지만 저는 트로피를 거머쥐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상이라는 것은 생리적으로 권력구도와 연관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연연하지 않았다. 양성평등문화상은 특별한 의미와 영광으로 다가온다. 양성가치 확산에 기여한 문화인에게 주는 상이라고 하셨기에 스스로 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작업에 대한 뜻밖의 용기가 됐다. 평소에 제가 친구들에게 ‘벌새 봤어?’ 꼭 보자고 보라고 얘기했던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정세랑 소설가도 10여년 만에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그 외 13개 분야에서 열심히 치열하게 작업하신 분들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된 것 만으로도 저는 충분한 영광이다. 저는 지금까지 12권의 문학서적 발간했지만 ‘난해하다’ ‘추잡하다’ ‘음란하다’ 좋게 말하면 ‘실험적이다’ ‘여성의 신경질적인 담화다’ ‘불편하다’ 기억에 남는 것만 적었는데 긍정적인 말은 아니다. 몇몇 비평가들은 마녀형 시인으로 저를 분류했다. 심지어 저의 면전에서 ‘이따위가 시냐고 썼냐’며 신랄한 욕설을 받은 경험도 있다. 어제까지도 수상에 대한 현실감이 없었다. 그리고 많이 흥분을 했다. 몸부림치며 치를 떨며 글을 쓴 적 있었고 많은 분들이 매도당하기도 했고 비애감, 비참함, 패배의식에 잠시 젖은 적도 있을 것이다. 저의 글쓰기가 언어와 세계에 대한 격렬한 운동이며 수많은 억울한 이의 발언이기를 꿈꿨다. 양성평등문화인상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주어진 격려라고 생각한다. 이 영광은 저의 것이 아니다. 지금도 끔찍할 정도로 외롭고 치열하게 작업하고 있는 한국 근현대 여성 후배 작가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각자 말 못할 경험을, 일상적 차별을, 수많은 죽음에 대한 증언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대의 폭력으로 희생된 수많은 영혼들과 수상의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이 상의 주관처, 후원처, 심사위원분들께 감사하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제가 속만 썩였다. 병석의 어머니, 친구들, 제가 운영하고 있는 작은 동네 책방이 있는데 와주시는 손님 여러분, 그 외 저를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저를 미워해주는 분들께도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고정희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소감을 마친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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