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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이 상황이 끝날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고 기록할 것이다. 당장 이 몇 줄의 글이 권력자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겠지만, 그들만이 사는 세상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pixabay

미투는 가해 대상만을 향한 외침이 아니다. 가해자의 폭력이 가능하도록 묵인한 조직의 시스템과 주변 방조자들을 향한 고발이기도 하다. 가해자를 중심으로 한 공고한 권력체계는 미투 이후에도 여전히 작동했다. 방조자들은 반성보다 적극적인 2차 가해자가 되어 다양한 활동들을 했다. 짜깁기를 한 문자를 만들어 공유하고, 허위사실을 포함한 가짜뉴스를 유통하였으며, 일부 언론과의 일방적인 인터뷰를 통해 ‘피해자는 이상한 사람이다’라는 논리를 설파했다. 그것도 모자라 기사 댓글에 욕설을 달아 비난까지 하는 등 마치 가해자에게 충성 경쟁을 벌이는 듯한 행동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들에게 원했던 건 진정한 사과였다

가해자에 대한 재판이 끝난 후 가해자 주변의 2차 가해자들에 대한 판결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재판 중 용서를 바라는 장문의 반성문을 쓴 사람부터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다가 벌금형을 받는 사람들까지 유형은 다양했다. 그들에게 원했던 건 진정한 사과였다. 진심어린 사과를 통해 그들도, 나도 치유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가해자에 대한 충성심과 팬심으로 2차 가해를 저질렀다고 해도 가해자의 잘못이 인정된 상황에서 최소한의 반성과 사과가 이어지길 바랐다. 그러나 대부분의 2차 가해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이 벌인 2차 가해의 강도에 따라 충성심을 확인받고 새로운 서열을 부여받는 듯했다.

한 정부부처는 ‘피해자를 비난, 위축시키거나 행위자를 옹호, 두둔하는 행위가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준에 충실하게 부합한 행위를 한 사람들은 공정이 화두인 지금도 영전에 영전을 거듭하고 있다. 국회의원실의 입법보조원으로 근무를 하다 한 번에 다섯 단계 승진을 해서 비서관이 되고 최근 청와대 행정관으로까지 임명된 사례, 모욕과 명예훼손으로 형사 처벌을 받았지만 변함없이 자치단체의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사례, 재판정에서 명백한 거짓말을 했지만 대전시 산하 공기업 사장으로 임명된 사례들도 있다. 이외에도 침묵과 방조를 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공직에 진출했거나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2차 가해로 조직 내 새로운 서열을 부여받고,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밀어주며, 더 견고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말한 사람이 퇴출되는 현실

어쩌면 그들에게 중요한 건 진실과 반성보다 가해자 주변에서 누리던 그 권력을 유무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을지도 모른다. 가짜 고발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음모론을 만들고, 가해자를 그 음모론에 희생된 사람으로 치장하여 벌어둔 그 시간으로 자신들의 또 다른 권세를 이어 나간다. 가해자는 감옥에 갔지만, 범죄를 방조한 기관과 2차 가해를 일삼던 사람들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나라를 이끄는 중요한 자리에서 정책을 논하고, 인권을 말한다. 그 사이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하고 행동으로 인권을 지켰던 증인들은 대부분 공직에서 퇴출됐다.

부조리한 이 상황이 끝날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고 기록할 것이다. 당장 이 몇 줄의 글이 권력자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겠지만, 그들만이 사는 세상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지난하고, 힘겨운 날들이지만 온전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나는 기록한다.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희미하지만 간절한 소망을 품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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