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생존자입니다]
생계 위해 18세에 업소 유입
20년 만에 벗어나
반성매매 활동가·작가 된 ‘봄날’
탈성매매 여성 상담·자활 돕고
당사자운동 통해 새 삶 찾아
“폭력의 기억 사라지지 않아도
모두가 안전한 세상 위해
계속 말하고 행동할 것”

‘봄날’은 20년 만에 성매매 업소를 벗어나 반성매매 활동가이자 작가가 됐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반비)를 통해 성매매 경험을 용감하게 증언하고 성 산업의 여성 착취 구조를 폭로했다. 그는 더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와 세상을 쩌렁쩌렁 울리기를 바란다. ⓒShutterstock
‘봄날’은 20년 만에 성매매 업소를 벗어나 반성매매 활동가이자 작가가 됐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반비)를 통해 성매매 경험을 용감하게 증언하고 성 산업의 여성 착취 구조를 폭로했다. 그는 더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와 세상을 쩌렁쩌렁 울리기를 바란다. ⓒShutterstock

노래방 도우미만 골라 살해한 ‘강윤성 사건’, 조건만남 여성 살해에 실패하자 분풀이로 택시기사를 죽인 20대 남성, 불법체류 여성만 고용해 약점을 잡아 감금·구타한 성매매 업주... 지난 석 달간 알려진, 성매매 여성을 노린 강력범죄들이다.

성매매 여성의 삶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봄날’은 20여 년간 그 밑바닥을 경험했다. 반성매매 활동가이자 작가가 돼, 성매매 경험을 용감하게 증언하고 성 산업의 여성 착취 구조를 폭로해 주목받았다. 

그는 두 가지를 강조한다. 성매매란 그 자체로 누군가의 고통이고 착취다. ‘성매매는 필요악’, ‘여성의 자발적 선택’, ‘여성도 범죄자’라는 인식은 참담한 현실을 가릴 뿐이다.

이제는 성착취를 당하고 사라져간 여성들을 기억하는 일, 성매매의 토대인 여성차별과 억압적 문화를 고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성매매 추방주간(9월19~25일)을 맞아 반성매매 운동의 발자취를 따라 전북 군산·전주로 떠난 그와 14일 하루 동행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봄날 작가가 14일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시티가든 인권공간을 걷다 보도블록 앞에 서 있다. 60여 년간 성매매 집결지였던 이곳은 폐쇄 이후 성평등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성신문
봄날 작가가 14일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시티가든 인권공간을 걷다 보도블록 앞에 서 있다. 60여 년간 성매매 집결지였던 이곳은 폐쇄 이후 성평등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성신문

봄날은 18세에 성매매 업소에 유입됐다. 처음엔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위해서, 이후엔 성매매할수록 불어나는 빚을 갚으려고 전국 곳곳을 전전했다. 가라오케, 룸살롱부터 유리방, 티켓다방까지 다 겪어봤다. 업주의 빚 독촉에 괴로워하다가 성매매 피해상담소의 문을 두드렸다. 20년 만에 업소를 완전히 떠났다.

상담소, 쉼터, 자활지원센터를 거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013년 대학에 입학해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2015년 졸업 후 활동가가 됐다. 첫 직장은 부산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이었고, 수원여성인권돋음 상근활동가로 근무하다 현재는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의 성매매 경험 당사자 네트워크 ‘뭉치’에서 당사자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가 여기까지 온 동력은 팔 할이 분노다. 봄날은 다른 성매매 경험 여성들과 대화하고 공부하면서 삶을 돌아봤다. 가난한 집 첫째로 태어나 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다녀야 했다. 10대 때 아버지의 폭력, 삼촌의 성추행, 노동 착취와 직장 내 성폭력을 연이어 겪었다. 홀로 임신중지를 했다. 제대로 된 치료나 보호는 못 받았다. 도움을 청할 방법도 몰랐다. 가족들은 오히려 돈 벌어오라며 그를 밖으로 내몰았다. 

갈 곳 없고 돈은 필요한데, 배운 것도 적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여성에겐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봄날은 업소에서 부모가 이혼해 혼자 남겨진 여성, 가출한 10대, 폭력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를 먹여 살리는 여성들을 만났다. 성매매 업주와 알선업자들은 고소득과 숙식을 보장한다며 꼬드겼다. 봄날도 ‘몇 년만 눈 딱 감으면 집도 차도 산다’는 말에 넘어갔다. 업소에서 번 돈은 꼬박꼬박 가족에게 부쳤다.

한번 업소에 들어오면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취직하며 받는 선불금을 포함해 업소에서 강요하는 온갖 수수료와 꾸밈 비용, 벌금 등으로 빚은 늘어만 갔다. 여성들이 온갖 수모를 견디며 번 돈으로 호강하던 업주와 알선업자들, 돈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던 성구매자들, 업소를 떠난 여성들에게 ‘어차피 돌아올 거다’, ‘죽어도 선불금 갚고 죽어’ 협박하던 업주들, 여성을 보호하긴커녕 범죄자 취급하던 경찰, ‘빚만 갚으면 관둔다’며 일하다 하나둘 사라져간 언니들.... 봄날은 거대한 성 산업을 지탱하는 여성 착취의 사슬을 봤다.

“나는 피해자구나. 폭력을 겪는 줄도 몰랐구나. 업소를 떠나면 죽는 줄만 알았지, 업소 밖의 삶은 상상도 못 했구나... 그걸 깨닫고 많이 울었어요.”

낮은 자존감과 정체성 혼란 속에서 “성매매하며 배운 생존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하던” 자신의 모습도 직시했다. “상담원에게도, 자조 모임에서도 ‘난 업소 에이스였고 업주에게 사랑받고 돈 많이 벌었다’고 했어요. 내가 성착취 피해자임을 인정하니까 다른 여성의 고통이, 거대한 성 산업 구조가 보였어요.”

봄날 작가의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반비) ⓒ반비
봄날 작가의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반비) ⓒ반비

분노는 에너지가 됐다. 아는 활동가의 권유로 2013년부터 블로그에 자신의 생애사를 썼다. 426쪽짜리 에세이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반비, 2019)를 펴냈다. 성 산업이 여성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상세히 기록했다.

탈성매매 이후의 진솔한 경험담도 200쪽에 걸쳐 펼쳐진다. 재회한 가족과의 갈등, 동생에게 지난날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함께 울던 날, 가정폭력 피해지원 시설 인턴을 거쳐 성매매 피해 상담원으로 일하며 겪은 일들,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 때마다 업소로 돌아갈까 고민했던 날들, 삶을 돌아보려 과거 일했던 업소들을 찾아간 일, 직접 만든 요리와 콘서트 관람, 반려식물에서 행복을 얻는 소소한 일상까지.

마지막 페이지에 그는 썼다. “성매매 경험을 했던 20여 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성찰한다고 해도 나에게 휘둘러진 폭력의 잔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내가, 내 친구가, 내 가족이 안전한 세상을 원한다. 그러기 위해 계속해서 ‘나답게’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것이다.”

살림에서 그와 동고동락했던 변정희 살림 상임대표는 “봄날은 굉장히 유쾌하고 명랑한 이야기꾼 같다. 자기 경험을 재해석하면서, 웃으며 세상에 화를 내는 능력을 가진 친구”라고 소개했다. 독자들도 이 용감하고 치열한 여성의 생애에 경의를 표했다. 출간 직후부터 2040 세대, 여성들의 관심이 뜨겁다. 최근 4쇄(8000부)를 찍었고 해외 출간도 검토 중이다.

봄날의 곁엔 든든한 동행이 있었다. 지금도 자신의 탈성매매를 돕던 상담원의 말 한마디를 기억한다. “업소 사람들은 ‘누가 좋아서 일해, 먹고 살려고 하지’라고만 했어요. 그런데 이 상담원은 ‘일이 저와 너무 잘 맞고 일하면서 많이 배운다’고 해요. 이런 사람도 있구나.” 봄날에게 새로운 삶의 관점을 보여준 사람이 정박은자 전 대구여성인권센터 상담소 ‘힘내’ 부소장이다. 봄날의 평생 조력자 중 하나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 모임 ‘뭉치’도 그의 든든한 뒷배다. “늘 나이, 외모, 빚 등을 평가받았는데 뭉치는 절 있는 그대로 봐주고 존중해줘요. 우리는 가족에게도 말 못한 경험을 편안하게 나누고 서로 공감해요. 열심히 공부하고 시위, 토론회, 국제포럼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요.”

8월27일 봄날 작가가 ‘2021 전국연대 국제웹포럼 – 성매매경험당사자가 말한다. “왜 노르딕 모델인가”’에서 발언하고 있다. ⓒ줌 화면 캡처
8월27일 봄날 작가가 ‘2021 전국연대 국제웹포럼 – 성매매경험당사자가 말한다. “왜 노르딕 모델인가”’에서 발언하고 있다. ⓒ줌 화면 캡처

 

목돈 보장한다며 여성 꾀어내
빚 지우고 폭언·협박해 착취
성 산업 폭력 구조 변치않아
“‘성매매=성폭력’ 인식 아직 부족
남성의 성욕은 본능?
왜 늘 남성 먼저인지 따져봐야
당해도 되는 여성은 없다”

활동가가 돼 보니 가장 큰 적은 성매매에 대한 낙인과 편견이었다. 여성운동 안에서도 성매매 여성의 자리는 비좁았다고 했다. 2018년 ‘미투(#MeToo)’ 운동을 지켜보며 가슴이 뛰었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그때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은 입을 다물었어요. 우리들의 ‘미투’는 오래 전 시작됐지만, 정작 우리가 나서면 운동의 초점이 흐려질까 봐요. 우리 앞엔 항상 돈이 붙잖아요. ‘성매매=성폭력’ 인식도 아직 부족해요.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일부 여성들도 (성폭력 가해자를 향해) ‘술집에 가지 왜 직장에서 저러냐’고 하더군요. 성매매 여성은 당해도 된다는 건가요? 그래도 되는 여성은 없어요.”

봄날이 지켜본 성매매 현장은 여성이 온갖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곳이다. 유영철, 강호순, 강윤성 등 연쇄살인범들이 성매매 여성을 노렸음을 가리키며 “근본적인 해결이 없다면 여성들은 계속 착취당하고 죽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런 현실에서 ‘성노동’은 어불성설이라고 봤다.

성매매는 돈이 되는 ‘산업’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잘 보여준다. 코로나 시국에도 성매매는 성황이고, 리얼돌 국내 수입·유통은 늘고 있다. 차분하던 봄날도 “추악하고 추잡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다? 성범죄를 막으려면 결혼시켜라? 왜 늘 남성의 본능이 먼저인지부터 따져 봐야죠.”

그는 이름 없이 죽어간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군산 개복동 화재 참사터, 성매매 집결지였던 전주 선미촌을 둘러보며 그가 말했다. “언니들 덕에 만들어진 이 법(성매매특별법)이 날 살렸어요. (...) 언니들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날도 오네’ 했겠지요. 한 번쯤은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탈성매매 여성의 자립·자활에 대해서도 그는 할 말이 많다. 2004년 제정된 성매매특별법에 따라 국가는 성매매를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고 자립·자활을 도울 의무가 있다. 각 지자체도 성매매피해자의 자활지원 조례를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현장에선 지원 기간이 짧고 지원금이 부족해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봄날은 “탈성매매 여성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도록 사회가 이해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폭력과 업주들의 이간질에 길든 언니들은 오히려 업소가 안전하고 활동가들은 해로운 존재라고 믿게 돼요. 활동가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죠. 오랜 업소 생활과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새로 시작해야 해요. 나이 들고 아픈 몸은 자신감을 떨어뜨려요. 바느질, 글씨 쓰기 하나라도 해내며 성취감을 얻을 필요가 있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잘하고 있다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하고요. 성매매 경험을 받아들이고 치유할 시간도 필요해요. 국가나 지자체가 이를 더 고려해서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어요.”

활동가들의 처우 개선과 소진 예방도 절실하다. “일은 많고 급여는 적으니 이직률이 높죠. 사명감, 전문성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인데도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확대가 필요해요.”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게
“나는 ​기댈 곳 없는 혼자?
사랑받을 자격 충분해...자신을 믿어요”

봄날은 초면인데도 옆집 언니처럼 유쾌하고 격의 없는 말투로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는 함께 눈물을 흘리다가도 깔깔 웃으며 인터뷰를 했다. 

봄날은 더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와 ‘완전무결한 젠더폭력 피해자 신화’에 금이 가기를, 당사자의 말하기가 이 세상을 쩌렁쩌렁 울리기를 바란다.

성매매 피해를 겪었지만 아직 도움을 청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다. “​지금 불안하다고 당신의 인생 모두가 불행했던 건 아니에요. 힘들죠? 그 순간을 기회로 삼아요. 이 세상에 기댈 곳 없는 혼자라고 생각하겠지만 환대받고, 사랑받고, 응원받을 자격은 충분합니다. 자신을 믿으세요.”

가까운 미래에 그의 책을 만날 해외 독자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했다. “봄날이라는 사람은 대한민국에만 있지 않아요. 지구 어디에나 있는 한 여성의 삶으로 읽어주길 바랍니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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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은 <내 이름은 생존자입니다> 기획 보도를 통해, 조명받지 못한 젠더폭력 ‘생존자’의 목소리를 보도함으로써 인권 증진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 [친족성폭력 생존자] 아빠·오빠의 죗값 묻지 않는 사회, 우리가 바꾼다 www.womennews.co.kr/news/212189

▶ 성폭력·인권침해 견뎌야 하는 학교, 지금 아니면 언제 바꿔? www.womennews.co.kr/news/213463

▶ 학대받던 딸, 아빠의 ‘보호자’가 됐다 www.womennews.co.kr/news/21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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