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법이 될 때』 정혜진 지음, 동녘 펴냄
구하라·김관홍·김용균·임세원
민식이·사랑이·태완이까지
우리 사회가 보호 못한
피해자 7인의 이름 되새기다

『이름이 법이 될 때』 정혜진 지음, 동녘 펴냄
『이름이 법이 될 때』 정혜진 지음, 동녘 펴냄

 

이 책은 읽기가 힘들었다.

목차부터 명치 부분을 한 대 맞은 것처럼 아팠다.

읽다가 덮고 다른 부분을 읽거나 한 참을 멍하니 있기도 했다.

김용균, 태완이, 구하라, 민식이, 임세원, 사랑이, 김관홍. 이 책에 담긴 일곱 명의 이름 중 아프지 않은 이름이 없다. 법이 된 이름들이다.

사람 이름을 딴 법률은 대략 3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먼저, 발의한 사람의 이름을 딴 법이다. 흔히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공직자 부패방지법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발의자의 명예로 남을 수도 있다. 다음으로, 범죄자 이름을 붙인 법이다. 조두순법이 대표적이다. 희대의 범죄자들이 법의 이름으로 남는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이름을 붙인 법이 있다. 우리들 가슴에서 씻을 수 없는 아픔으로 남은 이름들, 우리 사회가 법으로 보호하지 못했던 사람들,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했던 이름들… 이 책은 바로, 이처럼, 피해자의 이름이 붙은 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이야기한다.

2015년 7월 21일, 살인죄 공소시효기간(25년) 폐지 등을 담은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태완이법)을 당시 대표 발의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15년 7월 21일, 살인죄 공소시효기간(25년) 폐지 등을 담은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태완이법)을 당시 대표 발의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태완이 없는 태완이법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 시효를 없애는 법에 태완이 이름이 붙었다. 1999년 여름, 학원에 가던 다섯 살 태완이 얼굴에 누군가 황산을 끼얹었다. 아이는 온몸의 45%에 3도 화상을 입고 시력을 잃고 식도가 타버린 가운데 49일을 버텼다. “어떤 아저씨가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뜨거운 물을 부었다”고 생명이 꺼져가는 가운데 증언을 남겼지만 경찰은 증언을 배척했다. 그리고 14년이 흘렀다. 살인죄를 적용할 경우 공소시효는 15년. 공소시효 만료를 7개월 앞두고 부모는 검찰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만료일을 단 3일 앞두고 부모는 최후의 방법을 썼다. 가해자로 의심되는 A씨를 살인 혐의로 고소하고 검사가 이를 불기소처분한 뒤 부모가 이에 불복해 재정신청을 함으로서 A씨에 대해서만 공소시효가 잠시 정지되도록 한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사형선고에 해당하는 살인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법안은 국회서 3년 넘게 계류되고 있다가 태완이 사연이 여론을 흔들면서 비로소 통과되었다. 그러나 2016년 제정된 이 법은 태완이 사건은 적용되지 않는, “태완이 없는 태완이법”이었다. 이 법안 제정 과정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입법기관의 게으름이다.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에는 이미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도록 법제화를 했던 것이다.

시민들이 바로 ‘공동입법자’

스물네살 푸른 나이에 어둠 속에서 숨진 김용균. 2018년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한지 석 달 만에 그는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채 발견되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그는 석탄가루가 날리는 어두운 현장에서 사고를 당했다. 사회초년생이었고 하청노동자였다. 2016년 구의역에서 달려오는 열차에 목숨을 잃은 열아홉살 김군 사망 사건의 판박이였다. 위험의 외주화. 안전 규칙 무시. 김용균이 사고를 당한 2018년 한 해 동안 고용노동부에 보고된 산업현장 사고사만 971명을 기록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처참한 사고로 잃은 김미숙씨는 김용균재단을 만들고 다시는 아들 같은 산재사고 피해자가 없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2020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단식투쟁까지 했다.

저자는 동아일보 경제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다 변호사로 변신했다. 사건과 법률에 묻힐 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글들은 마치 그 현장에 취재수첩을 들고 서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피해자 이름을 딴 법마다 해당 사건 발생부터 법 제정, 시행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보여주고, 해당 법이 우리 사회에서 지닌 의미를 짚어낸다. 그는 우리 시민들을 ‘공동입법자’라고 부른다. 입법기관이 게으르거나 탐욕스러울 때, 우리는 ‘공동입법자’로서 “법이 된 이름들”을 기억하고, 법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재촉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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