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월경 이상 반응” 호소 늘어
정부는 “인과성 없다”지만
신속한 조사나 대응지침 없어
백신 불안·음모론 키우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진상규명 필요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월경 이상 반응을 겪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백신과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여성들의 불안을 달래기엔 부족하다. 우리 정부도 신속하고 적극적인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Shutterstock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월경 이상 반응을 겪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백신과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여성들의 불안을 달래기엔 부족하다. 우리 정부도 신속하고 적극적인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Shutterstock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부정출혈 등 월경 이상 반응을 호소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이런 반응과 백신 간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고, 접종을 피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명확한 연구 결과도, 대응 지침도 없다. 그 사이 여성들의 불안은 과장·허위 정보가 돼 퍼지고, 백신 음모론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여성들의 잇따른 증언에 따라 정부 기관과 산부인과학회 차원의 조사가 시작됐다. 우리 정부도 원인을 적극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18~49세 백신 접종 후
월경 이상 반응 호소 사례 늘어
접종속도 빠른 미·영에선 이미 수만 건 돌파

경기도 일산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강모(34)씨는 화이자 백신 접종 이틀 뒤부터 1주일 간 하혈을 했다. 강씨는 “놀라서 가게를 며칠 닫고 쉬었다. 병원에 가도 명확한 원인을 못 찾았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백신 영향일 수 있다는 글을 봤다”고 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장모(25)씨는 3일 모더나 백신 접종 후 부정출혈을 겪었다. “양이 많진 않았지만 깜짝 놀랐다. 친구들이 ‘백신 관련 증상일 수 있다’길래 찾아보니 온라인에 나 같은 여자들이 많더라”고 했다.

이처럼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엔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월경 이상 반응을 겪었다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 과다월경, 부정출혈을 겪었다는 여성, 극심한 생리통을 호소하는 여성들도 있다. 심지어 폐경한 여성이 부정출혈을 경험했다는 글도 나왔다. ‘부정출혈을 백신 부작용으로 신고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진행 중이다. 청원인은 “많은 여성들이 부정출혈을 겪었다고 증언하는데도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받지 못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8월 31일 시작된 이 청원엔 17일 기준 3만8700명 이상이 동참했다.

접종 속도가 우리보다 빠른 외국에선 이 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떠올랐다. 미국에선 최소 15만 명이 백신 접종 후 월경 이상 반응을 신고했다. 영국 의약품·의료제품규제청(MHRA)은 8월 18일까지 관련 신고 3만2455건을 접수했다. 국내 관련 사례는 2일 기준 총 18건이다. 우리나라 18~49세 백신 접종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니, 이러한 사례가 앞으로 더 늘 가능성이 크다.

‘부정출혈을 백신 부작용으로 신고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진행 중이다. 8월 31일 시작된 이 청원엔 17일 기준 3만7800명 이상이 동참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캡처
‘부정출혈을 백신 부작용으로 신고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진행 중이다. 8월 31일 시작된 이 청원엔 17일 기준 3만8700명 이상이 동참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캡처

정부 “백신-월경이상 반응
현재까지 인과성 발견 못해
면밀히 조사할 것...
출혈 길어지면 병원 가야”

코로나19 백신과 월경 이상 반응은 정말 관계가 있을까? 분명하게 답할 수 없다. 데이터가 없어서다. 코로나19 백신 안전성 검사 단계에서도 월경 이상 반응 사례를 확인하지 못했다. 워낙 급히 개발하느라 혈전증, 심근염같이 치명적인 부작용 중심으로만 점검했다. 산부인과 전문의, 면역학 전문가, 과학기술학자, 인류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문의했으나 모두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정부는 관련 국외 문헌을 철저히 검토하고, 국내 이상 반응 사례를 면밀히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조은희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안전접종관리반장은 2일 브리핑에서 “(월경 이상 반응은) 스트레스, 피로, 갑상선질환, 자궁근종, 약물 반응 등 유발 원인이 다양하다”며 “만약 백신 접종 뒤 예기치 않은 질 출혈이 생기거나 그 양이 많고 장기간 지속된다면 의료진을 방문해 진료를 받아달라”고 말했다.

조은희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안전접종관리반장이 2일 코로나19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KTV 영상 캡처
조은희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안전접종관리반장이 2일 코로나19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KTV 영상 캡처

국내 공식 신고 절차 미비
신고 기준·대처법 안내 없어
‘백신 부작용 신고하게 해달라’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월경 이상 반응 신고 방법이 불편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질병관리청의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 후 건강상태 확인하기’ 페이지(https://nip.kdca.go.kr/irgd/covid.do?MnLv1=3)에 접속해 온라인으로 신고하면 되는데, 월경 이상 반응을 신고할 수 있는 ‘기타’란이 빠져서 문제가 됐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지난 2일 정례 브리핑에서 문제를 인정하고 “빨리 보수하겠다”고 했다. 13일 재접속해 보니 열흘이 지나도록 그대로였다. 15일에 접속해보니 그제야 ‘기타’란이 생겼다. 

질병관리청의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 후 건강상태 확인하기’ 페이지. 백신 접종 후 월경 이상 반응을 신고하려면 ‘기타’란에 입력하면 된다. ⓒ질병관리청 웹페이지 캡처
질병관리청의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 후 건강상태 확인하기’ 페이지. 백신 접종 후 월경 이상 반응을 신고하려면 ‘기타’란에 입력하면 된다. ⓒ질병관리청 웹페이지 캡처

월경 이상 반응을 ‘기타’ 항목으로 신고하도록 한 것 자체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애초에 ‘월경 이상 반응’의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심해야 신고 대상인지, 대처 방법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발열 증상자의 경우, 체온별 보건소 신고 필요 여부, 해열제의 적정 복용량과 간격, 이틀 이상 지속되면 보건소를 찾으라는 대처 방법까지 신고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통·관절통·근육통을 겪을 경우 ‘진통제를 24시간 이상 반복적으로 먹어야만 하는 경우’ 신고하라고 안내한다.

신속한 조사나 대응지침 없어
백신 불안·음모론 키우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진상규명 필요

여성들은 정부가 백신이 여성의 몸에 미치는 영향을 신속하게 규명하고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미 온라인에선 과장되거나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가 퍼지고 있다. ‘백신 맞는 여자들은 생리대를 들고 다녀야 한다’, ‘백신을 맞으면 불임 확률이 높아진다’ 등이다. 백신 기피론, 백신 음모론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크다. 

8월 백신 접종 후 과다월경을 겪었다는 트위터리안 ‘참치(@moonformee)’는 정부의 발표가 다소 섣부르다고 봤다. 그는 여성신문에 “사례를 적극 수집해 증상 정도, 평소 질환과 연관성 등을 연구한 이후 발표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정부에 ▲백신을 맞은 여성이 부정출혈을 겪으면 어떻게 의료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 안내하고 (철분약, 음식, 휴식 등) ▲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는 경우 유급 휴가나 결석 시 출석 인정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미·영에선 논의 활발해
양국 산부인과학회도 “조사하겠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조용

우리나라보다 백신 접종 속도가 빠른 외국에선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선 여성 학자들이 물꼬를 텄다. 케이트 클랜시 미 일리노이대 의료인류학과 교수, 여성 호르몬 연구를 하는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소속 생물인류학자 캐서린 리가 온라인으로 여성들의 사례 14만 건을 모아 주목받았다.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미 국립보건원(NIH)도 이달 초 조사를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산부인과학회들도 나섰다. 미 산부인과학회(ACOG)는 2020년 12월 ‘백신 접종 후 월경 이상(Menstrual Disturbances)’ 사례가 여럿 보고됐다며 “이 문제를 조사하고 가능한 인과관계를 판정하려 노력하겠다”, “개인이 월경 주기를 고려해서 백신 접종 일정을 변경할 필요는 없다”고 안내했다.

영국왕립산부인과학회(RCOG)도 5월 “백신 접종 후 월경 주기 변화 사례를 파악하고 있고, 원인 규명을 위해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는 데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여성이 때때로 겪는 월경 관련 일시적 변화와 백신 접종이 우연히 겹칠 수 있다”면서도 “변화가 계속되고 폐경 후 질 내 출혈이 발생한다면 의사와 상의하라”고 덧붙였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산부인과학회들도 나섰다.  ⓒ웹페이지 캡처
미 산부인과학회(ACOG)는 2020년 12월 ‘백신 접종 후 월경 이상(Menstrual Disturbances)’ 사례가 여럿 보고됐다며 “이 문제를 조사하고 가능한 인과관계를 판정하려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ACOG 웹페이지 캡처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산부인과학회들도 나섰다.  ⓒ웹페이지 캡처
영국왕립산부인과학회(RCOG)도 5월 “백신 접종 후 월경 주기가 변했다는 사례들을 파악하고 있고,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는 데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RCOG 웹페이지 캡처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아직 아무 발표를 하지 않았다. 여성신문은 7일과 15일 전화와 이메일로 거듭 학회의 계획이나 입장을 문의했으나 “질병관리청과 논의 중”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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