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 사진제공=생각을보여주는엔터테인먼트
김호중, 사진제공=생각을보여주는엔터테인먼트

'내년엔 좀 어렵겠지. 6월에 제대하니 시간 상 촉박할 거야. 그래도 알 수 없어. 김호중이니까.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여권도 갱신하고, 보라색 옷과 가발도 장만해야지. 날짜만 나오면 비행기표와 숙소도 잽싸게 예약해야 해. 어쩌면 전세비행기가 뜰 지도 몰라. 호텔은 팬카페에서 단체예약하려나. 아마 그건 개인이 해야겠지.

문제는 카네기홀 예약이야. 2804석이라니까 하루 2회 공연이라도 최대 5608석, 이틀이라도 1만1216석밖에 안돼. 팬카페 회원이 현재 11만4300명. 내년이면 15만명 아니 20만명도 너끈할 테니 경쟁이 얼마나 치열하겠어. 작년 첫 팬미팅 때처럼 예매 시작 30초 안에 동날 거야. 애들 친구를 몽땅 동원해야지. 꼭 성공해야 할 텐데. 영어 공부에도 힘을 내야지.'

온갖 궁리를 다한다.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릴 거라는 ‘김호중 음악회’에 가볼 참이다. 구체적인 날짜가 정해진 건 아니다. 근거는 카네기홀쪽에서 연주회 요청을 받았다는 보도 뿐이다. 김호중 팬들은 그러나 철석같이 믿는다. 아홉달 남은 군 복무만 마치면 김호중은 분명 카네기홀에 설 거라고. 그러니 틈만 나면 뉴욕으로 날아갈 자신을 상상하며 설렌다.

뒤늦게 덕질에 빠진 5070 여성들 

김호중 팬덤(아리스), 특히 5070 여성팬들에게 김호중은 꿈이자 희망이다. 치유의 아이콘이고 삶의 목표다. 아리스의 몸 속엔 적혈구 백혈구 외에 호중구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들의 얘기는 한결같다. “난생 처음 해본다”. 대부분은 덕질도 처음이요, 팬카페(트바로티) 가입, 멜론· 지니같은 음원 사이트 가입, 굿즈 구입과 스트리밍. 모두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다.

김호중을 음원 강자로 만들기 위해 휴대폰과 PC, 심지어 공폰까지 켜서 온종일 그의 노래를 스트리밍한다. 자신이 아닌 김호중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팬카페에 위문편지를 올린다. 김호중을 팬앤스타 등 각종 아티스트 인기 차트 상위에 올리기 위해 손가락이 부러져라 투표를 하고, 더  많은 투표권을 얻자고 눈이 시리도록 광고도 본다.

오보로 이미지에 상처를 입은 김호중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언론사와 청와대에 청원을 하고 심지어 거리에서 1인 시위, 트럭 시위도 한다. 뿐이랴. 누구는 업소용 냉장고 2대가 꽉 차도록 김치를 담그고, 누구는 목에 좋다는 건 다 찾아 보낸다.

목표는 단 하나. 김호중이 환한 얼굴로 노래를 불러주기를, 보는 사람까지 따라 웃게 만드는 특유의 함박웃음을 잃지 않기를, 국방의 의무를 마치는 대로 국내 가요와 클래식계 모두 섭렵하고 해외로 진출, 세계 무대에서도 번쩍 빛나며 우뚝 서기를 바라는 거다.

“김호중 응원하며 나도 성장했다”

왜? 무엇 때문에? 이들은 말한다. “김호중 덕분에 삶이 달라졌으니까.” “그의 노래를 듣고 응원하는 것만으로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니까.” “외롭고 쓸쓸하던 인생이 밝고 활기차게 변했으니까.” “그의 선한 영향력을 이어가면서 내가 좀더 나은 사람이 되는 듯하니까.”

이들의 얘기는 한 마디로 덕질을 통해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김호중 팬덤의 주를 이루는 5070여성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편과 함께 집안을 일으키고, 더러는 직접 온갖 일을 해 가계를 번듯하게 만들고,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느라 밤낮을 안가리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그런 그들에게 남은 것은? 남편은 원래 남의 편이요, 공이란 공은 다 들인 자식들이지만 다 큰 자식이 어미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건 꿈같은 일이다. 결국 5070, 6080 여성을 휘감는 건 여기저기 아픈 몸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길 없는 공허함 뿐이기 일쑤다.

김호중 덕질은 이런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와 언젠가부터 잃어버렸던 바쁜 일상을 되찾게 해준 셈이다. 덕질은 어렵다. 음원 사이트를 비롯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고 로그인을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5070 여성들에게 디지털 세상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김호중, 사진제공=생각을보여주는엔터테인먼트
김호중, 사진제공=생각을보여주는엔터테인먼트

1년 전인 지난해 9월 5일 김호중의 정규앨범 ‘우리가’의 인터넷 공동구매가 시작됐을 때 팬카페 곳곳에서는 곡 소리가 났다. 인터넷 결제가 간단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결국 젊은층에서 도우미를 자처, 인터넷이 서툰 이들의 개인정보를 받아 대신 처리했다. 정규앨범 53만장, 클래식앨범 50만장 등 밀리언셀러는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 김호중 팬덤은 인터넷 도사(?)들이 다 됐다. 온라인 구매는 척척이요,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는 김호중 관련 기사에 ‘좋아요’와 ‘구독’을 누르는 건 너무 쉽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도 프로급이다. 사진 캡처쯤은 기본이요, 사진에 글을 올리거나 사진을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도 식은 죽먹기다. 짤(재미있는 짧은 동영상)도 잘 만든다. 이런 솜씨로 인스타그램에 다양한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 김호중을 홍보한다.

1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는 모두 ‘공부한’ 덕이다. 김호중을 응원하는 5070여성들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냥 살지 않았다. 이들은 지역별로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모르는 건 배우고 아는 건 나누면서 인터넷 실력을 키웠다. 터무니 없는 악플에 시달리던 김호중을 지키고 보호하고 응원하자면 ‘배워서 행동해야’ 한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실천했다.

이들은 또 팬카페를 통해 김호중에게 편지를 쓰면서 ‘글쓰기’라는 치유의 수단도 발견해냈다. 맞춤법이라는 장벽을 헤쳐가면서 5070 김호중 팬덤은 전문가도 놀랄 만한 시와 산문을 양산한다. 이러다 보니 김호중을 응원하는 5070 여성들은 한가하거나 무료할 틈이 없다.

자기계발과 적당히 바쁜 일상은 삶의 활력소다. 아리스라는 이름의 5070여성들은 덕질을 통해 가수 김호중을 응원하는 동시에 바로 자기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한다.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일상의 회복을 통해 그들은 삶의 의욕을 되찾고, 작은 일에도 웃고 설렌다.

김호중은 입대 전 불과 두세 달 동안 자전에세이집과 신곡을 내고, 정규음반을 발매하고, 클래식음반을 준비했다. ‘배태랑’, ‘김호중의 파트너’ 등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 군 복무기간 내내 팬들이 그를 되새길 수 있는 콘텐츠를 남겼다. 악플에 무너지는 대신 웃으며 자신의 일을 해냈다.

뒤늦게 덕질에 빠진 5070 아리스들은 이처럼 성실하고 듬직한 김호중의 모습에서 삶의 기쁨과 긍정에너지를 전수받는다. 이렇듯 대한민국 5070여성들의 저력은 무한해 보인다. 이들의 지혜와 끈기, 열정이 또 다른 형태로 발현되는 날 우리 사회에 몰아칠 변화의 파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