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 국립정동극장 뮤지컬 ‘판’을 보고

배우들이 뮤지컬 <판>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정동극장

오랜만에 찾은 정동극장이었다. 뮤지컬 <판>의 객석은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절반쯤 비었지만, 나머지는 젊은 관객들이 꽉 채웠다. 신나는 한 판이 관객들을 쏙 빨아들였다. 기대 이상이었다. 코로나 블루가 잠시 훅 증발했다.

조선 후기 19세기 말. 유교 지배이념에 반하는 불온한 내용을 담은 소설이 크게 유행했다. 엄격한 신분제, 남녀유별 사회에서 소설은 신분과 성별을 넘나들며 전복과 로맨스를 한가득 담아냈다. 그럴듯한 허구 이야기인 소설 속에서 백성들은 되고 싶은 모습이 되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갖고 싶은 대로 가질 수 있는 경험을 한다. 짜릿한 성과 사랑을 즐기고 탐관오리의 재산을 몰수하고 처벌하여 정의를 세울 수도 있다. 또 구박받는 여성 천민이 최초의 여성 광대로 성공기도 가능하다.

정부는 이 소설을 금지하고, 모두 거둬서 불태우고 소설 읽는 자의 관직을 박탈하고 구속하는 강압적인 문화정책을 펼친다. 실제 역사에서 소설은 지배규범을 가르치는 권선징악의 윤리서가 많았지만 <판>에서는 전복적 특색이 강조됐다.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소설책은 매설방에서 필사되고 낭독되며 걷잡을 수 없이 계속 퍼져나갔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신 책을 읽어주는 사람인 전기수가 등장한다. 전기수는 단순히 책을 낭독하는 게 아니라 소설책을 거의 다 외워서 실감 나는 연기까지 더하는 이야기꾼으로 당대 인기 최고의 스타였다. 스타급 전기수에게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쯤 되겠다.

뮤지컬 <판> 커튼콜 장면. ⓒ국립정동극장

뮤지컬 <판>은 양반가 자제가 전기수를 만나 낭독의 비법을 전수받고 최고의 전기수가 되는 줄거리다. 전통 연희와 뮤지컬이 결합해 독특한 신명을 만들어냈다. 관람 후기에는 “신나게 잘 봤다. ”, “잠시 코로나를 잊었다”, “사이다! 속이 시원하다” ... 라는 식으로 만족도 높은 반응이 많았다.

창작뮤지컬 발굴 프로젝트 ‘창작 ing’ 선정작품으로 3년 전에 이미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크게 흥행했을 작품인데 안타깝다. 대본, 연출, 음악, 연기력 모든 게 완성도 높게 구성되었으니 관객은 푹 빠져서 실컷 즐기다 오면 된다. 페미니즘 콘텐츠는 기본 탑재. 늘씬한 여배우 캐스팅 없이 실력 빵빵한 여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것도 즐겁다. 오히려 남자주인공들이 더 미모다.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조선 시대 여성민초에게 무한 변신과 가능성을 주는 이야기도 반갑다.

언론의 책임과 자유에 대해 많은 얘기가 자주 오가는 요즘이다. 민초들의 언로가 차단돼 있던 암흑기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판>을 보고 나니 새삼 말하기의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신나게 잘 만든 뮤지컬 <판>. 강추!!

9월5일까지. 국립정동극장. 김지철 류제윤 원종환 최유하 김아영 등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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