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매인 조직 긴장감'아줌마식 인맥'으로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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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기태>

팀워크 중시하는 '맘짱 상사'

아랫사람에겐 진실한 충고도

KT 조화준(46) 상무는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IR(투자가 관리)을 책임지는 유일한 여성관리자다.

“IR은 기업과 투자가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입니다. 주식에 대한 수요를 일으켜 주가가 떨어지지 않게 해요. 성과가 정확한 숫자로 드러나는 일이라서 늘 긴장하면서 살아요. 당장에 리스크가 있더라도 매번 목표를 업그레이드 시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죠.”

지난 12일 분당에 위치한 KT 본사에서 만난 조 상무는 당일 주가를 거론하며 속도감 있는 어조로 자신의 업무를 설명했다.

조 상무는 '박사출신 재무담당 여성팀장'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다. 경력만 보면 냉정할 것 같지만 후배들에게 '쿨하고 편한'상사로 통한다. 그의 비즈니스 전략은 의외로 '아줌마식 관계 맺기'. 동료에게는 남녀공학 동기로, 후배에겐 푸근한 아줌마로 자신의 이미지를 굳혀 나갔다.

“적어도 팀원들이 나한테 뭘 물어보는 게 불편하거나 어려워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데이터를 처리하고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팀원들이니까요. 일을 잘하려면 후배와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돼요.”

조 상무는 후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즉시 감정을 내비치지 않고 사람 없는 곳에서 진중하게 충고하는 편이란다. 일처리 역시 눈에 띄지 않으면서 확실하고 정확하게 해낸다.

“뭘 하든 주목받는 입장이어서 되도록 시끄럽게 나서서 일을 처리하진 않아요. 어렸을 때 엄마가 베풀면 속이 편하다고 주장하셨는데, 조직에서 그걸 많이 배웠어요. 조직에서 일할 땐 내 몫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생각이구요. 좋은 일만 하겠다는 고집도 없어요. 뭐든 제게 남겨지는 일을 하고 싶어요.”

조 상무는 지금까지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수재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진학할 때 대학 전체 수석으로 4년간 장학생이었고,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대 사회학과 석사, 위스콘신대 회계학 석사, 인디애나대 회계학 박사학위도 학비 걱정 없이 취득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1등주의를 버리게 된 것도 점차 조직에 적응하면서부터다.

자신을 조금만 숨기면 서로가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조 상무가 처음 KT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93년 박사출신 공채 때. 한국통신 경영연구소에 입사했다. 대학강단에 설 것을 꿈꾸며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캠퍼스 남녀차별의 큰 벽에 부딪혔다.

“교수채용 때문에 총장면접을 몇번 했는지 몰라요. 한번은 학생들 시위가 대단한데 막을 수 있냐는 질문을 받고 순간 '나를 떨어뜨리려고 작정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것도 답이 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있는데 나중에 제 딸은 이런 질문을 안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제 대답이 맹랑한 답변의 표본으로 돌더라구요.”

조 상무는 이런 일을 겪으면서 당시 여자가 객관적인 평가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곳으로 공기업인 한국통신을 택했다. 이후 마케팅본부와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하면서 한국통신 전반의 통신정책과 통신요금, 요금규제, 접속료 부분을 담당했고 2000년, 당시 차세대영상이동통신인 IMT-2000 사업추진본부에서 재무담당 팀장을 맡았다. 이때 사업허가를 성공적으로 따게 되면서 이듬해 그는 KT 아이컴 재무담당 상무로 승진하게 됐고, 현재 KT 본사에서 IR팀장을 맡고 있다.

감현주 기자soon@

조화준 상무가 말하는 여자라서 좋은 점

1. 기억하기 쉽다

조화준 상무는 남성의 업무로 인식돼온 재무분야에서 돋보이는 홍일점이다. 소수이기 때문에 굳이 자신을 알리고 싶지 않아도 사람들을 기억했고 이는 일하는 데 장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기업의 투자가 관리를 담당하는 업무에서 여성이라는 브랜드는 더욱 가치를 발한다.

2. 상대에게 신뢰를 준다

조화준 상무의 이름만 듣고 남성일 거라 착각한 투자가는 여성임을 알고 대부분 호의적으로 대한다. 여성이 IR 업무를 맡을 때와 남성이 맡을 때 투자가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아무리 악명 높은 회사라 해도 여성이 IR을 맡게 되면 거칠고 험한 비즈니스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3. 기업 이미지를 높인다

KT 같은 IT업계에서 여성임원은 기업의 첨단 이미지를 높인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미래지향성, 대안, 새로움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팀장의 존재는 기업이 여성인력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고 직원을 능력으로 평가한다는 인식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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