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현실을 그린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영화 ‘칸다하르’ 중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 유럽 전역에 부는 반 부르카 정서는 9·11테러 이후 부르카를 쓴 여성에 의한 자살폭탄 사건 등 이슬람 세력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많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현실을 그린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영화 ‘칸다하르’ 중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  

벌써 20년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국제사회의 빈곤과 난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열정 하나로 미국 어느 국제관계 대학원의 신입생이 되었다. 신입생 생활을 즐기고 있던 초가을 어느 날, 학교가 술렁였다. “우리 학교에 탈레반이 온대!” 당시 나는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이나 탈레반에 대해 잘 몰랐고, 그저 친구들을 따라 탈레반을 “구경”하기 위해 학교 강당으로 갔다. 아프간 전통의상에 긴 수염을 기르고 동그란 모자를 쓴 남성들의 무리가 연단에 올라 무어라 연설을 했다. 탈레반이 얼마나 아프간을 잘 통치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던 것 같다. 그런데 연설 중간에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여학생 몇 명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당신들이 내 친구들을 죽였어! 더 이상 공부할 수 없게 되자 나의 수많은 여자 친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라며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는 갑자기 전개된 이 광경에 어리둥절했다. 아프간 여성의 자살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 ⓒAP/뉴시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 ⓒAP/뉴시스

탈레반 장악한 지역의 여성인권 처참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아프간 여성들은 남성들과 평등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탈레반이 영토 대부분을 장악하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변했다. 여아들의 등교가 금지되었고, 여자대학은 문을 닫았다. 여성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이동 시에는 남성을 대동해야 했으며 반드시 부르카를 써야 했다. 부르카를 쓰지 않은 여성들은 공개적으로 매질을 당했다. 강간, 납치, 강제혼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하게 되었다. “미덕확산 및 악덕방지부(Ministry for the Propagation of Virtue and Prevention of Vice)” 소속 탈레반 군인들은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이슬람 법의 규율을 어긴 자들을 공개적으로 매질하고 처형했다. 도둑질하다가 발각되면 손을 잘랐고, 강간한 사람들은 돌로 쳐서 죽였다. 성소수자들을 벽 앞에 세워 놓고 불도저를 돌진하게 하여 압사시켰다. 한 활동가는 “음악과 TV가 금지된 탈레반 치하에서 도시는 조용했고, 내전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과부들만이 흙먼지 날리는 도로에서 구걸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여아중등교육 등록률 30% 늘었는데…

2001년 10월 미군 주둔 이후, 다시 한번 상황은 변했다. 여성들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악기를 연주하고, 운동도 하고, 병원에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여성 국회의원도 다수 선출되었다. 월드뱅크에 의하면 2001년 여아 중등교육 등록률은 3%에 불과하였으나, 2016년 36%로 상승했다. 여아 문해율의 경우 2005년에는 20%에 불과했으나 2017년에는 39%로 개선되었다. 모성사망률 또한 2002년 10만 명당 1300명에서 2017년 638명으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한국 정부 지원으로 젠더학 석사과정도 마련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정부도 원조를 통해 아프간의 곳곳에 성평등의 씨앗을 뿌려 왔다. 바그람의 한국 병원을 통해 아프간 여성들에게 보건의료 혜택을 제공했고, 아프간 여성 경찰의 역량강화도 실시했다. 매년 아프가니스탄 공무원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성평등 정책과 여성 리더십에 관한 연수도 꾸준히 실시해 왔다. 무엇보다 2015년도에는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유엔개발계획(UNDP)을 통해 카불 대학에 2년제 젠더학 석사과정을 설립하였고, 젠더연구센터(Gender Resource Center)도 개소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이 학위 과정을 통해 총 83명의 졸업생(여성 56명, 남성 27명)을 배출했고, 이 중 70%는 젠더 전문가로써 정부, 시민단체, 학계, 국제기구, 사기업 등 아프간 사회 곳곳으로 진출하여 일하고 있다.

‘샤리아’ 틀 안안에만 여성 존중?

안타깝게도 최근에 상황이 또다시 급변했다. 미군이 철수하자 탈레반이 도시들을 하나씩 장악했다는 뉴스가 들려 온다. 카불을 탈출하려는 인파 속에서 여성과 아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길거리에서도 여성들이 사라지고 있다. 부르카 가격이 오르고, 소녀들은 학교에 가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권력을 다시 잡은 탈레반은 “여성들의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을 보장하고, 평화롭고 보호받는 환경에서 국가에 기여하도록 만들겠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의 끝에는 항상 “이슬람 법(샤리아)의 테두리 안에서”라는 조건을 매번 달고 있다. 현재 아프간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여성의 인권이 탄압받게 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미 탈레반에 저항하는 아프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국제사회, 아프간 여성인권에 관심가져야

씨앗에는 동토를 뚫고 올라오는 힘이 있다. 그동안 한국이 뿌린 성평등이라는 씨앗의 힘이 탈레반이라는 딱딱한 땅을 뚫고 올라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의 여성 운동과 여성학은 독일의 장기간 지원을 바탕으로 발전해 한국 사회에 수많은 성평등한 변화를 이루어 냈다. 독일이 뿌린 씨앗이 한국 사회에서 열매 맺은 것처럼, 한국이 뿌린 씨앗이 이제는 아프간에서 열매 맺기를 소망해 본다. 다만, 현재의 위기 상황 앞에서 아프간 여성들과 어떻게 연대하고 무엇을 지원할 수 있을지는 국제사회와 함께 신속하게 고민하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장은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장
장은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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