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W초대석

자리이타(自利利他)의 道 중시, 나눔·봉사 앞장
큰딸 결혼식축의금· 모친 장례식부의금 다 기부
서른에 건설회사 차렸다 태풍으로 빚만 잔뜩 져
에어컨 열교환기로 성공, 더시그넘하우스 운영
날 만든 건 세상 은혜, 나누고 보답하며 살아야

박세훈 회장
박세훈 (주)엘티에스(LTS) 회장

박세훈 ()엘티에스(LTS) 회장의 경영이념은 네 가지다. ‘지자본위(智者本位, 남녀노소·지위에 상관없이 지혜로운 사람을 대우함)의 인사, 안여반석(晏如盤石, 마음이 태산같이 끄떡없고 든든함)의 조치, 자리이타(自利利他, 남을 위하는 게 곧 내 이익)의 도(), 정직의 원칙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자리이타를 중시한다. 원불교대사전에 따르면 자리란 자기를 위해 수행하는 것이고, 이타란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원불교 신자인 박 회장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자리이타를 실천하면 고객 감동과 내 행복이 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포목점집 둘째, 대학 1년 때 한진 입사

박 회장은 대전에서 포목점집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 경서중학교에 입학, 먼저 올라와 있던 형과 자취했다. 38세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포목점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주, 성동구 왕십리에 건물을 구입해 여관과 중국집을 하면서 아들 넷을 키웠다.

박 회장은 중학교를 마치고 덕수상고에 입학했다. “담임선생님이 추천하셨어요. 그땐 대부분 동계 진학이었는데 경서엔 고등학교가 없었어요. 졸업 후 대학 진학에 실패했어요. 여름에 참외장사도 하고 친구들 따라 농촌봉사도 하다가 공군에 입대했지요. 3년 복무한 뒤 딱 19일 공부해 예비고사를 치르고 야간대학에 입학했지요.”

대학 1학년 때 한진그룹에 입사, 건설 부문에서 일했다. 종로 3가 피카디리극장 옆에 탁구장도 차렸다. 낮엔 일하고 저녁엔 학교에 다녔다. 주경야독(晝耕夜讀) 끝에 대학을 마치고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졸업 뒤엔 한진중공업 마닐라지부에서 2년 근무하며 해외 경험을 쌓았다.

1985년 건설회사를 차렸다. 만 서른살이었다. “미군 공병대를 위한 수원비행장 건설에 필요한 다리 공사를 맡았는데 그해 10월에 태풍 브렌다가 닥쳐 모든 걸 쓸어갔어요. 애써 해놓은 공사는 흔적조차 찾을 길 없더군요. 집 두 채를 팔아서 그때까지 공사에 들어간 돈을 갚고 새로 빚을 엊어 다리 건설을 마무리했어요.”

첫사업 태풍으로 빚만 져 전자로 전환

첫 사업에서 빚만 잔뜩 졌지만 그는 주저앉는 대신 업종을 바꿨다. 이듬해인 1986년 경기도 부천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 사무실을 얻어 삼훈전자라는 이름으로 전자산업을 시작했다. 에어컨 열교환기를 만드는 일이었다. 창업 후 6년동안 집에 생활비 한푼 못 가져갔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가 살림을 도맡았다.

공장에 야전침대를 놓고 밤 11시까지 물건을 만든 다음 트럭을 몰아 새벽 4시까지 납품했어요. 6년만인 91년 초 평택공장을 짓고 천안과 창원에도 공장을 마련했지요. 2002년 법인명을 ()엘티에스로 변경했어요. LTSLeader of Thermal System(열시스템 리더)의 약자에요. 직원들 대상으로 공모해 정했지요.”

2003년엔 ()엘티에스코리아를 설립하고, 2010년 사우디아라비아 법인, 2014년 중국 법인을 세웠다. 서울 강남구 자곡로에 있는 프리미엄요양원 더시그넘하우스2017년에 시작했다. “원불교 교당 터를 구입하기 위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갔는데 바로 옆에 있는 노인복지용 땅이 있는 거에요. 원불교 산하 세계봉공재단에서 샀으면 싶어 계약금을 빌려 줬는데 재단 사정 상 어렵다고 하는 바람에 떠맡았지요.”

박세훈 (주)엘티에스(LTS) 회장
박세훈 (주)엘티에스(LTS) 회장

프리미엄요양원 더시그넘하우스에 총력

우연히 뛰어 들게 됐지만 복지사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의지는 대단하다. 그는 더시그넘하우스가 이름 그대로 은생(恩生, 은혜의 삶)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어르신은 쾌적한 삶, 직원들은 고마운 삶을 영위하는 곳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시설 관리는 물론 직원(120) 교육에 정성을 쏟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그넘하우스에선 봉급을 안받고, 자동차기름도 거기 돈으론 안 넣어요. 제조업으로 웬만큼 버니 요양원 일은 공심(公心)으로 합니다.”

그의 자리이타는 이렇게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다. 201110월엔 맏딸(주비)의 결혼식 축의금 1억여원 전액을 경기도 용인시 은혜학교에 기부했다. 은혜학교는 소년원을 나온 뒤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안학교다. 어머니 장례식 부의금 또한 전액 기부했다. 모든 건 "돌아가신 어머니 가르침에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박 회장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중은 각별하다. 2013년 설립한 도진화 장학재단의 도진화는 돌아가신 어머니(이옥순)의 법명이다. “어머니는 1928년생인데 키가 164cm일 만큼 훤칠하셨어요. 외조부가 전주 갑부였는데도 딸이라고 교육을 안시켜 평생 한스러워 하셨지요.”

여관과 중국집을 운영했지만 글을 쓸 줄 몰라 혼자만 아는 기호로 장부를 만들었다. 홀몸으로 큰아들은 대학교수, 둘째와 넷째는 사업가, 셋째는 미국 회계사로 키워내고, 69세 때 필기시험 없는 미국 LA에서 운전면허를 따 80세까지 손수 운전했다. 평생 기 죽는 법 없는 여인이었지만 어쩌다 듣는 무식하다는 소리엔 가슴을 쳤다.

어머니 사랑 실천하려 장학재단 설립

그런 어머니가 2008년 담도암에 걸렸다. 위암과 뇌출혈도 이겨냈지만, 의사는 "길면 6개월"이라고 했다. “우리 형제들의 종교가 다 달랐어요. 어머니는 60대 중반에 제가 믿는 원불교에 귀의하셨어요. 편찮으신 어머니를 위로할 방법을 찾다가 원불교 법명으로 어려운 집 대학생들에게 장학금 3000만원을 기부했지요.”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꼭 쥐며 환하게 웃었다. 박 회장은 "어머니가 평생 그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2013년 도진화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장학재단의 기금은 ()LTS코리아와 더 시그넘하우스 지분 각 10%에서 나오는 배당으로 마련한다. 2억원으로 원불교 음악인과 참전용사 자녀(국방부 추천)에게 지급한다. 학생들에겐 첫학기엔 그냥 주지만 2학기엔 봉사활동 결과를 받고 내준다.

사업은 탄탄하다. 계열사는 LTS(자동차 에어컨), LTS코리아(가전), 레오TNT(에어컨 부품, 여행), 더 시그넘하우스 등 4.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법인, 인천공항에서 휴대폰 공유기를 빌려주던 사업 등은 코로나19 때문에 접었다. 어려운 상황 탓에 연매출이 1200억원에서 600억원으로 반토막 났지만 빚이 10원도 없는 만큼 적자 사업은 정리하고 내실 위주로 꾸린다.

서울 강남구 수서에 자리한 더 시그넘하우스는 안락한 시설과 세심한 관리로 대기자가 넘친다. “8월 중 인천 청라에 제2의 더 시그넘하우스(140세대)를 착공하고, 경기도 가평에 중증장애인을 위한 요양원도 마련할 작정이에요. 여행이 쉽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해 제주도에 전용펜션도 지을 거구요.”

우린 세상은혜로 산다, 보답해야

그는 세상에 은혜가 가득차 있다는 원불교의 사은(四恩, 천지은· 부모은· 동포은· 법률은) 사상을 믿는 만큼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여긴다. 자리이타와 함께 보은 역시 실천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나눔과 봉사에 앞장서는 이유다. 지금도 세계봉공재단 이사장과 서울교구 교도 대표를 맡아 헌신하고 있다. 그 결과 6년 전 원불교 공로자에게 주는 최고의 직함인 대호법위가 됐다. 남편의 나눔과 봉사에 동행해온 아내(정길자)도 오는 829일 대호법위가 된다.

그는 허영과 사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얘기한다. 큰딸이 결혼할 때도 예식비용 외엔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았다. 예물·예단은 생략하고, 살림집도 딸과 사위가 자기들 돈으로 얻도록 했다. 부부는 연립주택 전셋집(50·15)을 얻어 시작했다.

딸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자립과 나눔이다. 큰딸에겐 결혼식 축의금을 기부한 은혜학교에 정기후원을 하라고 했다. 재산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원불교성직자 교육기관에 희사할 계획이다. “큰딸은 공인회계사, 둘째는 가야금연주자로 각자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니 걱정 없어요. 재산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각서도 받았어요.”

지혜로운 사람이면 하는 일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배우고, 남을 위하는 게 곧 나를 위하는 일이니 열심히 돕고 나누고, 세상의 은혜로 사는 만큼 온힘을 다해 보답해야 한다고 믿는 박세훈 회장. 재산을 상속하지 않겠다는 그도 놀랍지만 상속 안해줘도 괜찮다고 했다는 딸들 역시 놀랍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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