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총여학생회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19년 1월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총여학생회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총여학생회(이하 총여)가 사라졌다. 조직 활동에 대한 무관심, 대학 사회 내 페미니즘 백래시(사회적 약자가 정당한 권리를 요구할 때 기득권이 이에 반발하는 현상) 강풍이 불어닥친 탓이다. 설 자리를 잃은 대학 내 페미니스들은 성평등위원회나 인권위원회 등 학내 대안기구와 범대학 단체에서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권 대학 총여는 5곳뿐… 경희대 총여 해산 논의

최근 경희대학교는 총여 해산을 논의하고 있다. 총학생회 회칙 상 존재하는 기구지만 실질적인 활동이 이뤄지지 못해서다. 경희대는 10일 오후 확대운영위원회의를 열어 해산 투표 방식을 결정하고 8월 중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만약 총여 해산이 가결되면 올해 안으로 대안 조직을 설립하고, 부결되면 총여를 존치하겠다는 입장이다.

1987년 출범한 경희대 총여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4년째 회장 궐위 상태였다. 남우석 경희대 총학생회장은 10일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총여학생회 해산을 논의하는 것이라 아직 총여가 해산됐다고 볼 수 없다”며 “총여가 해온 역할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남 총학회장은 “투표 결과에 따라 인권위원회 혹은 성평등위원회의 신설이 논의될 수 있다”며 “해당 기구를 총학 산하의 기구로 신설할 것인지, 자치권을 가진 독자 기구로 설립할 것인지 또한 논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 내 인권센터는 지난 3월 개정된 고등교육법에 따라 내년 3월까지 설치할 것으로 보인다.

경희대 총여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서울 소재 대학 중 총여가 남아 있는 곳은 한양대, 총신대, 감리신학대, 한신대 등 네 곳뿐이다. 그러나 이들 대학조차 수년째 집행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울 지역 대학에 사실상 총여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총여 폐지의 원인에 대해 대학사회의 조직 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가 저조한 것과 페미니즘 백래시 공격이 함께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전반적으로 총학, 총여 등 조직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관심도가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며 “또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학내 커뮤니티 앱인 에브리타임에서 (백래시) 공격이 많았다. 총여가 페미니즘 활동을 할 환경이 전혀 조성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총여는 1984년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최초로 탄생했다. 2009년 당시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추월하면서 일각에서는 학내 성차별이 사라졌다며 총여의 폐지를 주장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년 대학 성희롱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3년간 접수된 사건은 점차 증가했다. 2016년에는 245건, 2017년에는 368건, 2018년에는 551건으로 늘었다. 대학 내 성희롱은 학생 간 성희롱이 가장 많고 언어적 성희롱이 주를 이뤘다. 온라인 성희롱은 SNS 단톡방을 통해 이뤄졌다. 

성평등위 등 학내 대안기구, 유니브페미 등 범대학단체 등장 

총여가 사라진 대학에는 대안기구가 만들어지고 있다. 독립기구로 운영되는 곳도 있지만 상당수는 총여를 총학생회 소속기구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연세대는 2019년 총여가 폐지되자 ‘연대 여성주의자 재학생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중앙대학교 총여학생회도 2015년도 총학생회 소속기구인 성평등위원회(성평위)로 전환했다.

성공회대에서는 2005년 총여를 폐지하고 2016년 인권위원회(인권위)를 만들었다. 인권위는 학생 대표가 간선을 통해 구성했다. 인권침해나 차별행위를 조사하고 중재 및 시정을 권고할 수 있는 독립기구다. 

김동률 성공회대 인권위원회 부위원장은 “인권위로 운영되고 있기에 ‘총여’라는 이름보다는 백래시가 적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며 대학 내 백래시가 아직 존재한다고 답했다.

김 부위원장은 “학내 커뮤니티 앱인 에브리타임에 익명으로 (위원회 활동을 향한) 비난, 비방 등이 올라와 불안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며 “백래시와 일부 학생들의 반발이 있어 인권위 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현재 교내에 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하면 학교와의 협상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며 “(학교에) 꼭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름에 ‘여성’ 빠지고 대안기구 생겨도 페미니즘 백래시 여전”  

성균관대 학내 모임인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범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를 만들었다. 윤김진서 유니브페미 대표는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총여가 사라진 이후 2018년과 2019년 총여 조직에 참여했던 이들의 연대체 욕망이 높았다”며 “총여가 사라진 뒤 유니브페미와 함께 활동을 하거나 학내 동아리 형태로 운영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윤김 대표는 총여 대안조직이 이어지고 있으나 백래시는 여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도 총학이 몇 년 동안 궐위 상태였는데 이를 폐지하고 대안기구를 만들자고 하지 않는다”며 “궐위 상태가 폐지 근거로 되는 것과 페미니즘이 학내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총여를 폐지하고 인권평등위원회가 생긴다고 공격을 받지 않을까? 똑같을 것”이라며 “이름에 ‘여성’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아도 백래시는 여전하다”라고 말했다. 

백래시를 멈추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인권 감수성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교육뿐 아니라 인권헌정을 제정해 혐오와 차별에 대응하는 인권센터 급의 기구를 제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총여를 총학 하부 조직으로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선 총학 자체도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좋아요' 순대로 마치 서비스센터처럼 활동하고 있다”며 “그래서 규범적인 이념을 향해 운동하는 것은 불가하다”라고 짚었다. 이어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고 백래시가 아예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인권센터 내부나 학생인권위원회로 들어가서 활동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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