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 ‘정액 테러’ 판결문 32건
경찰 접수 사건 44건 살펴보니
공공장소서 초면인 여성 노려
가해자 40%는 성범죄 전과자
수도권·지하철·학교서 주로 발생
피해자 66%는 1020 여성
52% 집행유예로 풀려나…벌금액 평균 242만원 그쳐

마시던 커피에, 택배에, 머리카락에, 겉옷에, 가방에.... 저질스러운 ‘정액 테러’가 끊이질 않는다. 대부분 처음 보는 여성을 노린다. 대중교통 등 공공장소에서 주로 일어나지만, 안전해야 할 집, 독서실, 직장, 학교에서도 벌어지는 범죄다.

명백한 성범죄지만 처벌은 다른 문제다. 현행법상 형사처벌이 가능한 성범죄는 신체 접촉을 수반한 추행이나 강간, 불법촬영·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에 한정된 경우가 많다. 정액 테러범들은 이를 방패 삼아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법원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기도 한다. 정액 테러범 절반은 집행유예에 그쳤다. 벌금 평균액은 242만원이었다. 피해자들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충격을 받았고 합의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도 처벌은 가볍다. 전형적이지 않은 성범죄가 늘고 있는 만큼, 성범죄에 대한 폭넓은 법적 인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여성신문은 최근 3년간 ‘정액 테러’ 판결문 32건, 경찰이 접수한 ‘정액 테러’ 사건 44건을 살펴봤다.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서비스에서 검색한 2019년~2021년 6월까지의 1심 또는 최종심 판결문을 분석했다. 또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9년~2021년 7월까지의 경찰청 관련 사건 접수, 검찰 송치, 기소 현황을 분석했다.

정액 테러범, 대부분 공공장소서 초면인 여성 노려
가해자 40%는 성범죄 전과자...피해자 66%는 1020 여성

ⓒ여성신문/이은정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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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간 ‘정액 테러’ 사건 판결문 분석 결과, 공공장소에서 초면인 여성을 노린 범죄가 대부분이었다.

가해자의 84.3%(32명 중 27명)는 모르는 사람에게 정액 테러를 저질렀다. 직장 상사나 동료 4명(12.5%), 이웃 1명(3.1%)이 범행한 경우도 있다.

40%(13명)는 성범죄 전과자다. 전과 내용은 강제추행, 공연음란, 불법촬영, 성적목적공공장소침입 등 다양했다. 판결문에 성별이 기재되지 않은 피고인이 3명(9.3%) 있으나, ‘자신의 정액’ 등 판결문 내용으로 미뤄 볼 때 모두 남성으로 추정된다. 

수도권·지하철·학교서 주로 발생

ⓒ여성신문/이은정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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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액 테러 사건은 수도권에서 주로 발생했다. 3년간 경찰이 접수한 정액 테러 사건 약 64%가 수도권에서 발생했다. 서울, 경기도, 인천에서 각각 15건(34.09%), 12건(27.27%), 1건이 일어났다. 판결문 분석 결과도 서울(12건)과 경기도(11건)를 합쳐 수도권 발생 비율이 약 71%다. 이외에는 경북 5건, 울산 4건, 부산·경남 3건, 대구에서 1건 발생했다(경찰청).

정액 테러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지하철과 학교였다. △지하철(역사) 7건 △학교·대학 7건 △버스(정류장) 6건 △아파트·빌라·오피스텔 등 주거지 6건 △마트·식당·카페 5건 △길 3건 △사무실 등 건물 2건이었다.

피해자의 66%는 1020 여성이다. 36명 중 성별이 판결문에 명시되지 않은 5명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었다. 피해자의 평균 연령은 23세다. 20대 16명, 10대 8명, 30대 2명, 40대 1명 순이었다. 9명은 나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정액 테러범 52% 집행유예…평균 벌금액 242만원

ⓒ여성신문/이은정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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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액 테러범 절반은 집행유예에 그쳤다. 징역과 벌금형을 동시에 선고받은 사례 2건을 포함해 총 34건 중 집행유예가 18건(52.9%), 징역형 8건(23.5%), 벌금형 7건(20.5%), 무죄 1건(2.9%)이었다. 징역을 살게 된 경우도 평균 1년 4개월형에 그쳤다. 벌금 평균액은 242만원이었다.

다수가 강제추행 등 성범죄 혐의로 기소됐지만, 재물손괴죄, 절도죄만 적용된 사례도 적지 않다. 명백한 성적 의도를 갖고 피해자의 물건에 정액을 묻혀도, ‘직접적 신체접촉’이나 폭행·협박이 없었다는 이유로 성범죄 처벌을 피했다.

지난 3년간 경찰이 접수한 정액 테러 사건 44건 중 성범죄 대신 재물손괴 혐의가 적용된 사건이 17건(38.64%)이고, 이 중 13건(76.46%)만 기소됐다. 정액 테러 사건 판결 32건 중 5건은 성범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형량도 재판부마다 들쭉날쭉했다.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누구는 벌금형을, 누구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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