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은 페미니스트에 대해 ‘①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②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여성신문
국립국어원은 페미니스트에 대해 ‘①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②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여성신문

여자 양궁 국가대표팀 안산 선수가 2020 도쿄 올림픽 3관왕을 차지했다. ‘올림픽 양궁 사상 최초’라는 타이틀이 더욱 눈부신 건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과정이 순탄치 않아서다. 이번엔 선수의 고유한 특성을 ‘숏컷’ ‘여대’ ‘페미니스트’라는 필터로 검증하려는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가 경기장에 개입했다. ‘여성혐오 공격’에 호응하는 남성들의 저열한 논리를 말하진 않겠다. 대신 이들이 주장하는 성평등이 외려 성차별을 공고히 하는 모순을 되짚어보려 한다. 이는 남성과 페미니즘 간 관계의 문제다. 남성들은 왜 페미니즘을 싫어하나. 남성이 페미니즘과 조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남성 차별 심각하다’는 20대 남성들

최근 몇 년간 20대 남성은 페미니즘과 멀어지고 있다. 여성들이 겪은 성차별‧성폭력이 선명해지고 페미니즘 의제가 사회 변화를 추동할 때, 남성들은 이러한 흐름에 대항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5월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여성 차별이 심각한가’라는 질문에 동의한 비율은 남녀‧세대를 통틀어 20대 남성(38.0%)에서 가장 적었지만, ‘남성 차별이 심각한가’라는 질문에 동의한 비율은 20대 남성(78.9%)에서 가장 많았다. 이들은 여성 차별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는 인식에 더해 ‘남성 차별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20대 남성은 성차별의 원인으로 페미니즘을 지목한다. 강력한 반페미니즘 정서 위에서 남성들이 겪는 차별은 성평등의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최근 보수 정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20대 남성 표심을 공략하고자 여성 할당제를 비롯한 여성 정책 폐지를 연일 밀어붙이고 있다. 성평등을 위해 여성의 파이를 줄이고 남성의 파이를 늘려야 한다는 인식이 20대 남성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연령대별 반페미니즘 비율.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8년 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19~59세 남성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반페미니즘 정서가 20대에서 60~70%로 가장 높았다. 사진은 연령대별 반페미니즘 비율.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실재하는 차별 가리는 반페미니즘

반페미니즘 정서는 실재하는 차별을 가린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남성들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정확히는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을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이에 맞서 자신들의 차별을 주장하는 것에 가깝다. 그동안 여성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성폭력 피해 경험이 ‘미투 운동’과 함께 터져 나오는 사이, 일부 남성들은 ‘피해자다움’을 증명하라며 피해자에게 얼굴 공개를 요구하고 미투 운동 자체를 조롱하지 않았나. 여성의 증언만으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무고죄 강력 처벌을 주장하는 국민청원에 20만 명이 넘게 동의하지 않았나.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발생한 강간 범죄자 중 98.3%가 남성이고 피해자 중 97.4%가 여성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2020년 직장 관계에 의한 여성의 성폭력 피해가 성인 피해 사례의 1/3 이상을 차지했다. 무고죄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남성이 성폭력 피해의 현실을 자신들로부터 구분하는 사이, 여성들의 피해 경험이 실체를 감춘다는 점이다. 남성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피해자성을 특정 성별에 가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방적인 성평등 논의를 이끌 수 있지만, 남성들이 피해자의 위치를 점유해 여성들의 피해 호소를 지울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의를 후퇴시킬 여지가 있다. 이처럼 후자를 빼고 전자를 논하는 상황을 우리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성 공격)’라 부른다.

백래시의 언어 ‘남성 혐오’

“남성들이 피해자”라는 주장 위에서 만들어진 ‘젠더 갈등’이라는 용어는 차별을 일방적으로 가리는 것보다 교묘하다. 여성들이 겪는 차별의 무게가 남성의 그것과 동등하게 다뤄지도록 알리바이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는 저서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에서 젠더 갈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제의) 원인을 젠더 갈등에 놓는다는 것은 결국 남성을 이해해주는 분석이 되어버리곤 만다. ‘남자들이 그럴만하다’라는 서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을 현실과 무관한 잣대로 구분하는 것을 넘어, 차별의 기울기를 편의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힘을 우리는 ‘젠더 권력’이라 부른다. 20대 남성이 페미니즘에 날을 세우는 이유는 이들에게 젠더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관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성 혐오’ 역시 남성들의 불쾌함을 빌려 실재하는 성차별을 지우려는 백래시의 언어다. 남초 커뮤니티는 기업과 공공기관 홍보물에 등장하는 ‘집게손가락 모양’에서 자신들이 느낀 불쾌함을 ‘남성 혐오’와 연결해 이들의 사과를 받아냈다. 그러나 『백래시』의 저자 수전 팔루디가 지적하듯, 남성 혐오를 여성 혐오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해석할 경우 “다른 힘에 대한 반응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반격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젠더 갈등과 남성 혐오라는 ‘반격의 본질’은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남성이 여성의 차별 경험을 억누르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 반페미니즘 서사와 절연하자

이처럼 여성을 향한 폭력이 수많은 통계와 증언으로 뒷받침되는 현실에서, 나를 포함한 20대 남성 클러스터에게 필요한 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박정훈 기자는 같은 책에서 페미니즘을 “남성 중심 사회에서 약자였던 여성의 시각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평등을 추구하는 운동 및 이론”이라 정의했다. 이제는 20대 남성이 반페미니즘 서사와 절연할 때다. 여성을 향한 폭력이 이들에게 현실의 시급한 과제로 다가올 때, 우리는 비로소 성평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섣불리 반격하지 않고 충분히 경청하는 기다림의 공간에서 시선을 전환하는 시도를 더하기까지, 남성은 얼마든지 페미니즘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복건우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3학년
복건우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3학년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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