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이 일듯 울림이 넓은 글 쓰고 싶다”

방대한 사진 속으로 걸어들어간 기억여행

10년전부터 어머니 소재로 장편소설 구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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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수 없는 곳에 누군가를 두고 왔다면 혼자 보게 되는 아름다움 앞에서는 늘 무릎이 푹푹 꺾일 것이다.'

한 줄 글에 인간에 대한 성찰과 감성을 담는 이. 소설가 신경숙(40)이 오랜만에 에세이집 한 권을 들고 나왔다. <자거라, 네 슬픔아>(현대문학). 지난 여름 한 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구본창의 사진과 함께 엮은 책이다. 방대한 분량의 사진들 가운데 신씨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사진을 선별한 후 글을 보탰다.

“내 소설 속에서 끌어안지 않은 이질스럽고 낯선 것들이 나올 줄 알았어요. 어떤 점에선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인간관계나 풍경, 이야기들을 쓰게 될 것 같았는데….” 책을 들어 보이며 그가 말문을 연다. “막상 책이 나오니 그렇지 않았다”면서 “전보다 수다스러워진 것 같다”고 말한다.

신비감이 풍기는 연꽃 사진에서 작가는 고운 수의를 펼쳐 보이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낡은 여행 가방은 그에게 중학생 시절 오가던 시골의 새벽 버스 정류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창문 틈으로 보이는 고양이의 뒷모습, 베개와 시트가 구겨진 채 밀려나 있는 잠자리, 푸른 물결이 일렁거리는 보리밭 등 넘기는 페이지마다 구본창의 탐미적인 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간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물씬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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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씨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소설이 늙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한다. <사진·민원기 기자>

그러나 이야기 중에도 무언가에 골몰히 심취해 있는 듯한 그의 표정이 현재 작업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아니나 다를까. 1년쯤 끌고 있지만, 10년 전부터 마음에 있던 소재로 6부작 분량의 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고 조심스레 운을 뗀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예요. 정작 소설 속에 어머니는 나오지 않고 연극 무대처럼 한 사람이 나와 어머니에 대해 말을 하는 거죠. 딸, 아들, 남편, 친구 등 관점에 따라 다른 어머니가 나오는 내용으로 굿을 하듯 이야기를 끝내면 완성이 되는 소설입니다.”

에세이집 중간 중간에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언급된다. 다른 글에서 줄곧 등장해 온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는 “어머니란 존재가 어디 한 곳에 맞춰질 수 없기 때문인지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어머니한테도 욕망이 있다는 것, 사실 사람들은 어머니의 젊은 날, 황금시절이랄지 뽀송한 그런 날이 있었다는 걸 잘 알려고 하지 않잖아요. 처음부터 어머니는 어머니처럼 있었던 것 같고. 내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내 어머니도 그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를 그리워할텐데, 마지막 어머니는 과연 어떤 모습인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걸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가 어머니에 관심 갖는 이유는 “결국 여성적인 것, 어머니다운 것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성적인 것'. 사실 90년대 신경숙의 소설은 페미니즘 문인, 평론가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80년대 문학이 차지했던 이성적이고 건조한 문체를 탈피했던 그의 글은 여성 개인의 경험과 내면 세계를 토대로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를 선보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보다 개인의 영역으로 들여 와 지나치게 감성 일변도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된 바 있다.

“내 소설 속의 여성 화자들은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그 초점이 자기 마음에 맞춰져 있어요.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반추하며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는 “작중의 화자들은 타자를 난처하게 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갈등을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라며 “언뜻 독자들이 느끼기에 싸우는 것을 싫어하고 무언가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것 같지만 , 무엇이든 경사가 심한 만큼 그 경사 안에 일그러지는 것이 또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조금 느리고 생각이 많은 것이 보통 사람, 보통 여자들이지 않느냐”며 “내 소설을 둘러싼 페미니즘 계열의 평가가 서운했다”는 말도 전한다.

신씨는 “갈수록 문학하기가 고단해진다”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소설이 늙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론 “10년쯤 쓰고 싶은 글을 맘껏 쓰고 나니 점점 책 내기가 조심스러워진다”면서 “이야기가 풍성하고 시간이 걸려 오래 읽는 소설, 내가 묘사하는 것들이 겹을 이뤄 마치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듯 울림이 넓은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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