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의 보통날] 이름 붙일 수 없는 마음
[김지은의 보통날] 이름 붙일 수 없는 마음
  • 김지은 작가
  • 승인 2021.07.30 10:07
  • 수정 2021-07-30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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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화분을 구해 키우기 시작했다. 위로가 되어주는 식물이지만 따로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가꾸어 주고 위해 줄 뿐, 이름이 오히려 이 친구를 어렵게 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작은 화분을 구해 키우기 시작했다. 위로가 되어주는 식물이지만 따로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가꾸어 주고 위해 줄 뿐, 이름이 오히려 이 친구를 어렵게 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나의 이름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고, 때로는 위험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음소거 한 TV처럼 살았다

3년 전 미투 이후 한동안 보호시설에 몸을 숨기며 살았다. 신변에 위협을 가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내 이름이 들어간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유명인들도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고, 이름과 함께 사라지고 싶었다. 성폭력 범죄를 고발한 나는 피해자에서 순식간에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진료 받는 나를 보려고 우르르 떼를 지어 구경 온 의료진들도 있었다. 나를 보는 사람들 모두가 가짜 뉴스에 존재하는 ‘나’로 생각하는 것만 같아 괴롭고 두려웠다. 이름을 부르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온몸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그저 이름을 작게 쓰고, 낮은 소리로 말하며, 최대한 쓸 일이 없도록 행동했다. 음소거를 켠 텔레비전처럼 조용히 생활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아내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일들이 일어났다.

행정상 나의 주거지로 알려져 있던 곳 주변에 신원 미상의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기자라 말하며 주민들에게 나에 대해 묻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 민사 고소를 시작한 이후 어느 날 머물고 있던 집의 열쇠 잠금장치가 망가져 있었다. 경찰도 고의로 파손된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에 들어갔지만 CCTV도 마침 고장이 나서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주거지를 옮겨야만 했다. 2차 가해 등의 형사 고발 중에도 신변보호를 위해 가명 사용과 송달지 변경 등을 신청했지만 때때로 누락돼 이름이나 주소가 노출되기도 했다. 기관에서는 현재로써 다른 방법이 없으니 노출됐을 경우 다시 신청하라는 답변만을 해주었다. 이사를 하고, 개인 정보의 노출을 최소화해도 행정이 가진 빈틈 속에서 범죄 피해자는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에 요청하는 것보다 스스로 조심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불안과 공포는 계속됐다. 이름을 숨기고, 나의 존재를 없앤 채 살아가야하는 어려움을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있다.

이름조차 숨겨야만 하는 사람들

어떤 이들은 이름을 널리 알리고자 하루하루를 산다. 인지도를 올리는 일이 일상의 목표가 되고, 곳곳에 플래카드를 붙여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린다. 누군가에게는 이름이 자랑스럽고, 알리고 싶은 고유 명사이지만 범죄 피해를 받아 위협 속에 살아가는 피해자들에게는 꼭꼭 숨겨야만 하는 대상이다. 이름이 나온 가짜 뉴스를 검색하고, 삭제 요청하며, 개인 정보를 지워 달라 부탁하는 삶을 반복해서 산다. 그 과정에 내 인생마저 지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지우개 자국은 지저분하게 남는데 존재는 점점 더 희미해진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범죄, 스토킹, 디지털 폭력 등 다양한 범죄의 피해자들이 비슷하게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피해자들은 이런 현실을 바꿔달라 지속적으로 말해왔지만 바뀐 것은 많지 않다. 최근 기사에서 성폭력 범죄 피해자들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대선 후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회적인 쇼가 아니길 간절히 빈다. 범죄 피해자들이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활의 변화를 기다린다.

언젠가 나도 나를 지우지 않는 온전한 삶을 살고 싶다. 작은 화분에도 이름을 선물하고 싶다.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주며 존재에 의미를 더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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