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박물관 만든다

@a4-1.jpg

김홍남 관장이 인사동 국립민속박물관 전시관 앞에서 박물관 운영에 자신감을 표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민원기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민속박물관장

김홍남 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술사학자로서의 명성뿐 아니라 북촌문화포럼, 마을풍습과

전통가옥의 보존, 내셔날 트러스트운동 등 굳건한 문화지킴이로

문화계와 여성계의 기대를 크게 받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몇 달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임명장을 받은 지 석 달은 준비기간이었다는 말로 겸손해하는 김 관장. 어느 누구보다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새로운 스타트 라인에

서있는 그를 지난 6일 만나보았다.

'박제 민속' 생기 투입 등

이미지 개선 교육 강화 젊은층 문화 욕구 흡수

- 최근 노무현 대통령께서 장차관 인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개혁의 속도를 2배로 높이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여정부의 문화정책 개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주 근본적이지만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문화개혁의 중심에 이창동 문광부장관이 있다고 하겠는데, 장관은 우리 문화계의 모든 이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과 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번 기관장회의 때 고도보존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전통가옥 지키기 등 문화유산 지키기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 법의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법안에는 역사경관보존법이 있는데, 그 법이 진작에 발효되었으면 경주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을 겁니다.

참여정부 문화개혁 공감대

내가 그 법을 주관한 문화재청의 활동에 지지발언을 하자 이 장관 역시 동의를 표하면서 하시는 말씀에 저는 몹시 놀랐습니다. 고도보존법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입법되었는지, 현재 법체계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그리고 그 부분을 보완하기위해 이러저러한 것을 하고 있다에 이르기까지 파악하고 일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깊은 통찰력을 가진 장관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고무적입니다. 문화부분은 하루아침에 확 바뀌지 않습니다. 지난해 동안 충분히 준비해왔습니다. 올해는 성과가 하나씩 드러나는 해가 될 것입니다.

- 지난해 10월 6일 여성최초의 민속박물관장으로 임명받으셨습니다. 신년을 맞는 각오가 남다르실텐데, 어떤 구상을 가지고 계십니까?

“취임 이후 지금까지는 터를 닦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의 체제를 파악하고 특히 직원들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떤 일이던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인력들과 함께하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특히 장기적인 성과는 이뤄낼 수가 없지 않습니까? 현재 팀워크가 아주 좋은 상태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출발이라 하겠습니다.

취임 석달 팀워크 준비기

신년은 물론 앞으로 제 임기 동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박물관의 이미지 개선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많이 서구화되어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민속이라고 하면 뭔가 옛날 것, 뒤처진 것이란 인식이 있습니다. 박제화된 상태의 민속은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같은 민속 중에서 한의학은 지금까지 번성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한의학이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접목되었고 산업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민속들도 이렇게 경제적으로 회생시켜 현재의 생활과 맺어져 있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박물관 예산중에 연 10억 이상을 섭외교육과에 배정해서 '찾아가는 박물관' 등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 지향하고 계시는 박물관의 이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산업화할 수 있는 유형의 문화상품들은 결국 무형의 자산에서 나옵니다. 한의학이 동양의 기철학에서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박물관은 문화자생력을 위한 지원센터가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교육에 큰 투자를 해야합니다. 현재 민속박물관의 관람 연령대 중에 초중등학생들이 많습니다. 특히 12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많은데, 어린이들의 교육프로그램에 민속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뜻이지요. 젊은 세대들의 디지털적 마인드와 만나게 하는 전시환경과 전시내용을 만들어내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국제 문화교류통해 홍보 강화

한편 관람객들의 관람문화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활용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을 흥미롭게 알리고, '앞친구 뒤통수만 봤어요' 식의 관성적 관람에서 탈피하게 하려고 합니다. 방학기간을 이용해 현장의 일선교사들을 재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을 현재 가동하고 있고, 민속에 관한 다양한 내용이 공교육의 내용으로 튼실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적 문화교류를 통해 우리의 문화자산을 알려내는 일에도 무게를 실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 민속박물관이 우리 민족의 문화 자생력의 보고이자 원천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 민속박물관의 이전문제가 경복궁 복원문제와 함께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입장이십니까?

“이전문제는 기정사실입니다. 단지 시기와 장소의 문제이지요. 시기는 조율중이고, 장소와 관련해서는 전임 이종철 관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던 것처럼 중앙박물관과 함께 용산으로 이전되기를 바랍니다. 생활공간과 가까운 곳에 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민속박물관을 관람하는 연 인원이 외국인 70만 명을 포함해 평균 320만 명입니다. 이는 대영박물관의 수치와 맞먹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속박물관이 외진 곳으로 이전되는 것은 반대입니다.

생활 밀접한 용산이전 바람직

현재 사대문안에 민속박물관의 부지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은 중앙박물관 이전이 추진되고 있는 용산입니다. 중앙박물관이 주로 고고, 미술 중심이라면 민속박물관은 중앙박물관이 할 수 없는 생활사 중심의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두 박물관이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관람객에게도 큰 이득이 됩니다.

- 지난해 중앙박물관장직 공모때 지원을 하셨지만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여성계에서도 많은 지원과 기대를 보냈고 아쉬움도 크셨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당시에 내가 지원을 한 것은 중앙박물관의 운영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를 창조적으로 해석해내 중국의 고궁박물관이나 상해미술관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관운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여성계의 지원에 깊이 감사합니다.

여성계 연대·지지에 감사

여성이 진입할 좋은 기회가 있다면 저도 적극적으로 도울 예정입니다. 물론 중앙박물관의 지원과정과 여성들의 연대의 성과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민속박물관장은 현재 없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과정이 거름이 되어 현재의 이 자리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간 내가 해온 일들을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민속박물관장으로서 일을 하기 위해 지나온 것 같습니다. 북촌문화포럼, 마을과 마을의 공동체의 영속성 지켜내기, 마을풍습보존과 전통가옥의 보존,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등 문화유산지키기 등은 우리의 생활사인 '민속'과 직결된 일이었습니다. 시민운동차원에서 내가 줄기차게 하던 일을 본격적인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하게 된 것이지요.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 추진력 있는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평을 받으십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역할모델로 삼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성격이 급해 좋은 리더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돌격적인 데가 있지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사라지는 문화유산을 생각하면 제 경우는 '걸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순간 천천히 해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저를 돌이켜보면 늘 뛰거나 날고 있었습니다.

역사서 배운 안목 큰 도움

개인적으로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 휴레패커트의 여성 CEO 칼리 피오리나를 훌륭한 리더의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희 회장의 경우 기업계의 철학자입니다. 겸손하면서도 기업인으로서의 철학적 관점이 명백합니다. 몇 년을 앞선 비전을 제시하는 혜안 있는 분이시지요. 현재 삼성의 위치는 그의 리더십의 증거입니다. 피오리나의 경우 역사학자 출신입니다. 그녀는 성공한 CEO로서 비결에 대해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 넓게 보는 능력을 키웠다'라고 말합니다. 두 사람을 통해 제가 생각하고 있는 진정한 리더의 덕목은 연계성 속에서 나오는 창조성입니다. 피오리나와 이건희 두 리더의 창조적 리더십은 여러 분야에 대한 연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리더로서 갖춰야 하는 덕목은 인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없으면 리더는 될 수 있겠지만 성공한 리더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히틀러처럼 말이지요.

박광수 편집국장pks@

김홍남 민속박물관장은

71년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72년 동대학원을 수료, 77년 미국으로 유학, 85년 예일대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80년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동양미술연구원, 81∼82년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프리어동양미술관 연구원, 82∼88년 미국 Univ.of Maryl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