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여성도서관. ⓒ뉴시스·여성신문
제천여성도서관. ⓒ뉴시스·여성신문

1636년 미국의 케임브리지에 설립된 하버드 대학교에는 세계 5대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히는 와이드너 도서관이 있다. 남편과 아들을 모두 타이타닉호 침몰로 잃은 엘레노어 와이드너는 자신의 아들인 해리 엘킨슨 와이드너의 도서관을 아들의 모교에 지을 것을 건의했다. 2004년, 늘어나는 도서와 비좁은 공간으로 고민하던 하버드 대학교는 와이드너 도서관의 외관은 유지한 채, 지하로 공간을 넓혀갔다. 기부자의 의도는 지켜가며 시대와 상황에 맞게 변화한 것이다. 최근 제천여성도서관 이슈는 기부자의 의도를 지키며 시대에 맞는 변화를 병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제천여성도서관은 고 김학임 여사가 1994년 삯바느질로 모은 11억원 상당 부지와 8억원의 시예산을 들여 지어졌다. 도서관 건립 과정에서 김학임 여사는 “규모가 작으면 여성도서관 건립이라도 원한다”는 뜻을 밝히며 “여성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자신이 여성으로 살면서 느낀 교육 기회의 차별을 해소하고자 ‘여성 도서관’의 설립을 부탁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충북 제천시에 “여성도서관 시설 이용에서 남성 이용자가 완전히 배제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제천시는 이를 받아들여 이달부터 남성들에게 대출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실제로 하루에 1-2명의 남성만 이용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기부자의 뜻과 역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것은 기증자인 김학임 여사님께서 기증 당시의 취지와 의사가 무엇인지이다. 차별받던 여성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도서관을 ‘여성전용’으로 남기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김학임 여사의 본래 기부의 의도인지를 파악해야한다. 그녀의 가치와 철학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현 시대의 상황도 고려해야한다. 여성이 고등교육에서 배제되는 거의 사라진 시점에서, 김학임 여사는 어떤 것을 원했을까?

여성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은 아직도 존재한다. 만약 기부자의 본래의 뜻에 ‘여성 차별 해소’의 뜻이 있다면,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 제공’의 측면보다 여성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교육, 여성을 위한 특화된 프로그램의 확대가 필요하다. 특히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여성의 삶의 한 부분에 대한 정서적, 지식적 프로그램과 더불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구하기 어려운 여성관련 도서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여성’에 대한 양질의 연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와 고민에 남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닌 참여시키는 것이 더욱 ‘여성 차별 해소’의 측면에서 합리적일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김학임 여사의 정신을 진정을 계승한 도서관으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 하여 집, 학교, 종교 시설, 공공장소, 대중교통 등 많은 곳에서 남성과 여성을 철저히 분리되었다. 그러나 현시대의 차별은 그렇게 단순하고 직관적인 차별의 시대와는 거리가 있다.  진정으로 여성을 위하는 것이 김학임 여사의 기부 취지라면, 모두를 위해 도서관을 열어두되 여성들의 학습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살리고,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확대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도서관을 운영해야 할 것이다.

정은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은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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