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360°] 마라도, 끝이자 시작인 섬의 와플가게 고양이
[방방곡곡 360°] 마라도, 끝이자 시작인 섬의 와플가게 고양이
  • 박성희 전문위원 / W경제연구소 대표
  • 승인 2021.08.01 11:57
  • 수정 2021-08-01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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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박성희

사막은 생략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사막에서는 하루 2.5리터의 물, 간소한 음식, 몇 권의 책, 몇 마디 말이면 족하다. 구원이란 장인적인 것, 소박한 것, 자급자족, 예술, 침묵, 활기를 내포한 느림 속에 있는 게 아닐까.” <테오도르 모노(1902~2000) ‘사막의 순례자중에서>

테오도르 모노는 프랑스의 박물학자이자 사막 탐험가다. 그에 따르면 사막은 절제를, 절제는 만족을, 만족은 구원을 가져다준다. 섬은 사막과 닮았다. 변화무쌍한 날씨, 바깥세상과의 단절, 유난히 푸른 하늘, 사치와 잉여를 허락하지 않는 소박한 삶 등. 뱃길밖에 길이 없는, 망망대해에 솟은 작은 섬은 특히 그렇다.

마라도.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 서귀포 남쪽 모슬포나 송악산 선착장에서 배로 30분 정도 가면 나오는 작은 섬이다. 대한민국 최남단, 이 땅의 끝이자 시작점이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423)이다. 선착장은 자리덕과 살레덕 두 곳. 자리덕에 내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사방이 확 트인 평원이 나온다.

마라도엔 키 큰 나무가 없다. 19세기 말 제주도에서 건너간 이들이 개간하느라 불을 지른 뒤 나무가 자라지 않는단다. 하늘과 바다 어디를 찍어도 예술이지만 지표 밑이 죄다 현무암인 탓에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흙이 적으니 쓰레기를 묻을 곳도 없다. 자잘한 건 섬 한쪽 소각장에서 태우고 나머진 모아서 육지로 내보내야 한다.

눈길을 끄는 건 다양한 이름의 짜장면식당. 1997년 개그맨 이창명이 배를 타고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치던 SK텔레콤 광고 이후 짜장면은 마라도의 명물이 됐다. 전체 30가구 중 11가구가 짜장면 식당을 운영할 정도. 식당골목을 지나 남쪽으로 걷다 보면 교회, ,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빨간 색깔의 조그만 와플가게가 나온다.

서울에서 온 지 20년 됐다는 초로의 아저씨가 직접 지었다는 가게는 마라와플’. 이곳에서 듣고 본 길고양이 이야기는 감동과 애처로움의 범벅이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 다섯 마리를 먹이느라 하루 다섯 번씩 바닷가를 오간다고 했다. 어미는 새끼들을 모두 먹인 뒤에야 먹는 둥 마는 둥 한다는 것이다.

이 어미는 그러나 예전에 함께 지내던 다른 고양이들에겐 폭군으로 변했다. 몇몇은 어디론가 떠났는데 한 마리는 그러지 못하고 근처에서 맴돌다 그 어미 고양이에게 들키면 혼쭐이 난다는 것이었다. 하필 그런 순간이었다. 비쩍 마른 몸으로 와플가게 주인장이 준 먹이를 먹고 쉬려던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어미가 눈을 부라린다 싶더니 달려 들었다. 도망쳤지만 얼마 못가 잡혔는지 비명 소리가 났다.

새끼를 먹이느라 제몸 부서지는 줄  모르고 바위투성이 바닷가를 오가는 지극한 모성애를 지닌 한편으로 옛 동료의 한 끼 식사와 잠깐의 휴식을 용납하지 않는 어미 고양이의 모습은 수많은 인간사와 교차되면서 가슴을 헤집었다.

와플가게 다음엔 느린우체통이 나온다. 엽서나 편지를 넣으면 1년 뒤 모슬포우체국에서 마라도의 추억을 배달해준다고 돼 있다. 느린 우체통 몇 발자욱 남쪽엔 대한민국최남단이라고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인증샷 장소인 셈.

왼쪽 언덕길을 오르면 자그마한 마라도성당이 나온다. 인근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전복과 문어, 소라를 형상화했다는 성당은 겉모습도 독특하지만 아늑한 실내도 눈에 쏙 박힌다. 2000년에 건축했다는데 잘 관리하는 듯 여전히 깨끗하고 아름답다. 언덕 위 등대는 마라도 남쪽 태평양을 지나는 배들의 안전 지킴이다.

마라도엔 또 하나 눈에 띄는 장소가 있다. 선착장 바로 위쪽과 최남단비 왼쪽에 조형물처럼 지어진 화장실이다. 관광객을 위한 곳일 텐데 근사한 외관에 비해 관리는 소홀한 듯하다. 이용자의 의식 부족 탓도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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