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탈시설’ 두고 엇갈리는 목소리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지만
‘현실적 대책 없는 탈시설은 인권침해’ 지적도
“중증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부터 시행해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7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7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장애인 탈시설’ 이행을 두고 엇갈리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장애·인권단체들은 그간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 집단감염 예방 등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해 탈시설을 강조해왔다. 서울특별시 등 여러 지자체가 장애인 주택지원 제공, 퇴소자 정착금 지원, 활동 지원 서비스 확대, 공공일자리 지원 등 탈시설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편에선 ‘현실적 대책 없는 탈시설 요구는 인권침해’라는 문제 제기가 거세다. 국가 차원의 구체적인 자립 지원 계획과 인프라 구축 방안 등이 선결돼야 하는데, 시설을 나온 장애인이 결국 가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단 독립부터 하라는 것은 오히려 장애인과 그 가족을 인권 사각지대로 밀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시설 퇴소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 김모씨는 “정부의 탈시설 정책은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탈시설만 하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캡처
7월14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시설퇴소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캡처

시설에서 나와 독립하려는 장애인들이 늘고 있지만, 지역 사회 내 장애 차별·낙인은 여전하다. 김씨는 “장애인 단기보호센터가 아파트에 설치되자 ‘집값이 떨어진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주민들이 장애인들에게 ‘단체로 다니지 말라’고 요구해 몇 명씩 눈치를 보며 다닌다고 한다”며 “느닷없이 소리 지르거나, 도로로 뛰어들거나, 감정 조절이 어려워 타인을 구타하거나 자해를 하기도 하는 중증발달장애인이 현실적으로 자립지원주택에 입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고, 입주하더라도 주위의 민원으로 계속 살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탈시설 정책으로 장애인 거주 시설 입소 정원이 축소되면서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시설마다 대기자가 100명 안팎에 이를 만큼 시설 거주 수요가 있는데 공급이 전무한 실정이니 중증발달장애인을 돌보는 보호자들은 몇 년째 과부하가 걸려 있다”며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치매 노인은 요양원에서 돌보는데 왜 ‘힘센 치매환자’라고 불리는 중증발달장애인은 부모와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씨는 “탈시설 이전에 중증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며 “발달장애인이 부모의 사후에도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20일 오후 5시30분 기준 이 청원에는 1만4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는 2008년 우리 정부가 비준한 UN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돼 있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년 우리 정부에 탈시설 정책 마련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9년 중앙정부 차원의 탈시설 로드맵 마련을 권고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장애인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발표했다. 같은해 9월 문 대통령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청와대에 초대해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지원 확대를 약속했다. 보건복지부도 그해 탈시설 민관협의체 등을 결성했으나, 관련 계획이나 예산이 국정에 반영되지 않았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 국회의원 68명이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약칭 탈시설지원법)’을 발의했으나 여전히 상임위에 머물러 있다.

오욱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 6월1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제1차 장애인리더스포럼’에서 “시설 폐쇄·감축보다 신규 거주 시설 설치 제한, 탈시설 서비스 신청 및 지원에 대한 거주 시설의 개입 금지가 필요하다”며 “지역사회 지원 서비스의 확충과 재구조화가 동반되지 않는 한 탈시설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속도를 맞추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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