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공간분리 및 접근금지의 원칙
[기고]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공간분리 및 접근금지의 원칙
  • 박찬성 변호사
  • 승인 2021.07.13 15:44
  • 수정 2021-07-13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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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내 인권센터는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임시적 보호조치 규정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사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2차 피해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즉시 중단하도록 요구한다거나 피해자와 피신고인을 분리하고 연락‧접촉 등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보복 등 위해 우려가 확인되지는 않더라도 피해자의 정신적 안정과 조속한 회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공간분리와 접근금지를 우선 명한 이후에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나 그 밖의 관계법령에서 일반조항으로써 공간분리와 접근금지를 기본적 원칙사항으로 명시해 두고 있지는 않지만, 피해자와 가해혐의자의 분리는 우리 법질서가 승인한 일반적 원칙사항으로서 사실상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예컨대 성폭력방지법은 사법경찰관리가 현장에 출동하여 조사 또는 질문을 하는 경우에는 피해자‧신고자‧목격자 등이 자유롭게 진술할 수 있도록 성폭력행위자로부터 그 피해자‧신고자‧목격자 등을 분리해 주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형사재판에서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하여야 할 때 피고인을 법정으로부터 퇴정하게 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심리적 부담 없이 증인신문에 임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은 실무상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공간분리나 접근금지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양성평등기본법 시행령도 ‘가해자에 대한 인사조치 등을 통한 피해자 (…) 보호’라는 규정을 둠으로써 공간분리와 접근금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원칙사항으로서 확인하고 있다.

그렇기는 하나, 현행법을 꼼꼼히 살펴보면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그 보호가 미흡하다고 느낄 만한 부분도 없지만은 않다.

성폭력처벌법 제23조는 피해자나 신고인 등에 관해서 범죄신고자법의 여러 규정을 준용하도록 정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본인이나 그 친족 등이 보복 우려에 노출되어 있을 때 수사기관에 신변안전조치를 요청할 수 있고 수사기관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즉시 조치를 취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위 제23조의 제2문은 ‘보복을 당할 우려’를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그 우려가 분명치는 않지만 가해혐의자와 동선 등 공간이 분리되기를 원하는 피해자가 위 조문을 근거로 분리조치를 요청하기는 어렵다.

청소년성보호법 제41조는 검사로 하여금 피해 아동‧청소년의 주거 등으로부터 가해자를 분리‧퇴거하는 조치, 가해자 또는 가해자의 대리인이 100미터 이내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 전기통신이나 우편물을 이용한 접촉의 금지를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한다. 그런데 언제나 위와 같은 조치들을 청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지속적으로 위해의 배제와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이를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거니와, 검사가 그 조치를 청구하면 법원은 그에 관한 판결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사건의 판결과 동시에 선고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본래의 범죄에 대한 판결이 선고되기 이전에 위 조항에 따른 보호조치를 먼저 받기는 어렵다.

대법원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합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거나 압력을 가하는 등의 행위는 일반 양형인자의 가중요소로서 고려된다. 이를 통해서 가해혐의자의 2차 피해 유발행위를 어느 정도 억지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이 보복이나 그 밖의 위해 우려가 가시화되지는 않은 경우에조차도 가해혐의자와 인접한 공간에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는 등의 상황 자체만으로도 불안해 한다. 가해혐의자 측의 대리인인 변호사가 합의를 위해서 연락을 취하는 때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불쾌감을 호소하는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적극적 괴롭힘이나 부당한 압력에 이르는 경우는 아니더라도 피해자의 안정과 회복을 위하여 배려와 보호가 필요한 또 다른 영역은 분명 존재한다.

이제라도 관련 법률에 공간분리 및 접근금지를 기본 원칙으로 명확하게 설정하는 일반조항을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 합의를 위하여 피해자의 대리인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은 금지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면 가해혐의자의 방어권 행사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흠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보복과 위해 우려 예방만이 피해자 보호의 전부가 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 자문위원

* 외부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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