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이야기] ②디자이너 이광희와 어머니 김수덕

"어떤 어려움이 있든지 그 어려움 가운데는 분명 교훈이 있다
그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게 하나님께서 주신 진짜 이유다"

"안 좋은 일은 안 본 듯이 하고, 괜찮은 것은 더 잘 본 것처럼 해라"

제 삶의 뿌리는 어머니입니다. 내 인생을 살아가는 이정표이고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생각할 때 대답의 기준이 되어주시는 분이셨고, 내 마음의 지주였고, 뿌리를 내려주신 분입니다.

이광희의 어머니 김수덕((1913.6.28- 2003.6.21.). 우리나라 최초의 간호사. 빈민 사역하는 목사의 사모로 ‘밤의 목회자’라 불렸다. ⓒ여성신문
이광희의 어머니 김수덕((1913.6.28- 2003.6.21.). 우리나라 최초의 간호사. 빈민 사역하는 목사의 사모로 ‘밤의 목회자’라 불렸다. ⓒ여성신문

최초의 간호사로 전후 가난한 이웃 보살펴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완고한 빈촌마을에서 여자가 공부한다는 걸 꿈도 꿀 수 없는 시절 태어났습니다. 외할머니는 선교사에게 보내면 여성도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어머니가 학업을 할 수 있게 기독교에 입문하였습니다. 그 덕에 어머니는 순천매산여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제중병원의 간호훈련소에서 간호사 자격을 취득, 우리나라 1호 간호사가 되셨습니다. 그 후 걸인과 길거리 청년들을 위한 선교사업과 빈민 사역을 준비하시던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셨습니다. 두 분은 땅끝마을 해남 6.25 전쟁 직후 고아들과 거지, 정신병환자들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참’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꾸준히 씨름하셨던 분, 영혼을 꽃처럼 아름답게 가꾸시던, 꽃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인간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분별하며 끝까지 투쟁하시면서 올바른 삶을 안내해주는 길잡이셨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어떻게 행동으로 실천하고 실현해 나가야 하는지 몸으로 보여주셨죠.

밤의 목회자 “기도는 호흡” 

가난한 시골 교회라 가족조차 먹고 입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계속 몰려왔습니다. 어머니가 당시 쓴 기도문을 보면 이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을 저한테 손님으로 보내 주셨으면, 저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건강과 물질도 저한테 허락해 주세요. 하나님의 심부름을 더 잘할 수 있게요.”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하려고 하실 때는 그 일을 할 사람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제 일을 하나님의 심부름이라고 생각하셨던 어머니는 그 심부름을 잘하게 해달라고 늘 기도를 하였습니다. 밤의 목회자라 불리우시던 어머니는 밤이면 동네를 거니시며, 산모나 병든 사람,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의 집 앞을 찾아 쌀이며 옷가지 등을 슬며시 놓고 돌아오셨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대문 앞에 봇짐을 두고 돌아서려는데 앓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온 가족이 앓아누워 있었습니다. 간호사 출신인 어머니는 이들을 응급조치하고 돌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순찰하던 경찰에게 통행금지 위반으로 걸려 하룻밤을 경찰서에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어머니를 ‘밤의 목회자’라 불렀습니다.

어머니의 삶 속에는 늘 기도가 있었습니다. 목사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기도를 나가셨던 아버지 옆에 늘 어머니가 함께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기도는 호흡과 같다. 마치 영이 숨 쉬는 밥과도 같다”라고 일기장에 적기도 했습니다.

자식들에겐 삶의 이정표를 세워주시는 말씀을 나누시곤 했습니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 삶의 지혜를 깨닫도록 유도하였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먹고 산다.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도 살지만, 먹을 사람이 없으면 죽는다. 너는 사람에게 먹혀 봤느냐?”

‘사람은 누군가의 사랑과 배려를 먹고 산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씀에 과연 나는 누구에게 얼마나 먹혀 봤을까? 끊이지 않는 물음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내가 어려운 일이 있어, 장거리 전화로 하소연을 했더니 “오늘도 참아 봤느냐?”라는 말씀만 답변으로 돌아온다. 더 여쭤봐도 “그냥…, 참아봐라….” 그게 전부였습니다. 나중에 나이를 먹고서야 그것이 엄마의 각고의 경험에서 나온 말씀임을 알았다. 그리고 인내하며 주신 대로 받고 감사하며 살라는 어머니의 말씀들은 제 삶의 기준이 되셨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사셨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패션 일을 하면서 항상 어머니의 교훈을 떠올리며 살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혼을 박아서 해라. 절대로 정성을 다해서 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온 우주보다 크다. 그래서 한 마음을 잃는 것은 온 우주를 잃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작은 일이 큰 가르침으로 온다.”

아마도 평생 힘든 삶 가운데서 체득하고 실천해오신 신념일 것입니다. 어머니의 이 세 말씀은 나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모든 것에 초연한 듯 보였습니다. 어느 날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절대자 앞에서 인간이 무력하듯이 시간 앞에서도 인간은 무력하다. 시간은 절대자와 함께 있다. 인간이 잘되려면 절대자에게 순종해야 하듯이 시간에 대해서도 순종해야 하는 거다. 시간이 보이지 않게 흘러가지만, 그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보내느냐로 확실한 결과물이 나온다. 시간이 주는 해답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인내하라. 인내는 성공의 근본이다.”
   
어려움 속에는 교훈이 있다

어머니가 사람을 위로하시던 말씀들도 생각납니다. 한 번은 너무 안 좋은 일이 있어 침울해하고 있으니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안 좋은 일은 안 본 듯이 하고, 괜찮은 것은 더 잘 본 것처럼 해라.” 지금도 마음이 상할 때 그 말들이 저를 위로해 줍니다. 참는다는 것은 단순히 화를 누르고, 보아도 못 본 척 싫어도 아닌 척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수용해 줄 수 있는 넉넉함이 아닐까. 나중에 나이를 먹고서야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남긴 마지막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참는 게 성공의 근본이다.”

이광희 희망고 대표 ⓒ홍수형 기자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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