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스쿨닥터’ 강윤형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전국 최초 학생정신증진센터 맡아
1년간 155개 학교 찾아 발로 뛰어
학습‧감정조절‧사회성‧규범규율…
교육 4대축 길러주는 학교 돼야

강윤형 학생정신건강지원 센터장 ⓒ홍수형 기자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강윤형 박사는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교사의 마음을 돌보는 ‘스쿨닥터’다. ⓒ홍수형 기자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강윤형(57) 박사는 교육 현장에서 ‘스쿨닥터’로 통한다. 정치권에선 원희룡 제주지사의 동갑내기 배우자로 유명하지만, 그는 20여년간 임상과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난 학생정신건강 분야 권위자다. 강 박사는 2015년 전국 최초로 제주에 문을 연 학생건강증진센터의 센터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5년 넘게 학교 현장에서 학생과 교사들의 마음 건강을 돌보고 있다. 그는 현재 청소년의 정신건강이 위태롭다고 진단했다. 9년째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고, 중·고생 중 1년 내 우울감을 느낀 비율은 25.2%에 달한다(여성가족부 ‘2021 청소년통계’). 우울감 경험률은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높다. 특히 ‘코로나 우울’을 겪는 아이들이 늘면서 부모와 교사,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그는 학교는 지식 습득의 장소일 뿐 아니라 정신건강 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적극 도와주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안전망이 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고 회복력을 높이는 ‘정신건강 리터러시(mentalheath literacy)’ 교육과 사회정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학생정신건강대책’이 왜 중요한가. 

“학생정신건강정책은 한창 성장 중인 아동기‧청소년기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부(교육부‧교육청‧학교)의 노력을 의미한다.

학교에선 교육의 4가지 축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첫 번째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두 번째는 학교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배워야 한다. 불안과 분노,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인식하고 잘 표현하는 것이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중요하다. 감정 조절 능력은 학습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세 번째는 사회적 관계를 훈련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고 지지하며 도움이 되는 관계를 훈련하는 공간이 학교다. 네 번째,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사회의 규율과 규범을 습득해가야 한다. 정신건강이 획득되지 않으면 아이들의 학습능력, 사회적응능력, 관계형성능력, 감정조절능력, 문제해결능력 발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08년 학생정신건강대책 시행 이후 13년이 흘렀다.

“세계보건기구(WHO) 발표를 보면 아동‧청소년기 학생의 20%가 정신건강 상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들 중 절반은 정신과적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상태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질병관리청의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서 청소년 우울감경험율(28.2%), 자살생각율(13.1%), 자살시도율(3%)이 해를 거듭할수록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놀랍고 위험한 수치다. 아이들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교육부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했다. 처음엔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조기에 찾아내 적절한 도움을 주자는 취지였다. 초등 1· 4학년, 중학 1학년, 고교 1학년을 대상으로 매년 학기 초에 실시하는 ‘정서·행동특성검사’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고 있다. 관심군의 경우, 외부 기관과 연계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닥친 지난 1년간 학생정신건강센터장으로 일했다.

“2013년 공주사대부고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2017년 포항 지진, 2020년 코로나19 등 재난을 비롯해 학생자살사건이 발생하면 학교 전체가 흔들린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학생뿐 아니라 교사의 정신건강도 흔들린다. 재난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나 스트레스 반응을 겪는다. 코로나19 때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를 잘 해소해야 하는데 이 반응이 장기화되거나 강도가 세지면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학교를 안정시키고, 학교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주축이 돼 확진자 발생학교에 위기개입을 시행하고 있다.” 

강윤형 학생정신건강지원 센터장 ⓒ홍수형 기자
강윤형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홍수형 기자

-코로나 장기화로 아이들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했는데.

“재난 초기엔 드러나지 않다가 재난이 끝난 뒤 드러나는 ‘지연 효과’라는 것이다. 저도 코로나19를 겪은 아이들의 우울, 자살 문제를 우려해왔다.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올 들어 학생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재난 상황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을 하고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고 일상의 루틴이 깨지면서 짜증과 불안, 스트레스를 겪었다. 특히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거나 자살고위험군, 빈곤층, 학대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다. 코로나 확진된 아이들은 소위 ‘낙인’으로 인해 편견과 혐오에 시달리기도 한다. 검사와 자가격리 등 불편함을 겪는데 회복한 뒤 학교로 돌아오면 낙인감 때문에 또 다시 어려움을 겪는다. 교사들도 처음 겪는 상황이다 보니 소진 문제가 심각하다. 보호자와 교사들이 협력해 취약한 아이들을 더 예민하게 지켜봐주고, 편견이나 혐오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학교, 학생, 교사가 적극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진료실을 벗어나 학교 현장으로 찾아간 계기는.

“2015년 제주도교육청에서 학생정신건강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국 최초로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를 직접 채용했다. 획기적인 일이었다. 당시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지원하게 됐다. 고향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다. 1년 동안 155개의 학교를 찾아다녔다.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만나고 그 아이로 힘들어 하는 교사와 부모를 만났다. 학생정신건강 문제는 학생과 교사, 부모 그리고 지역사회가 협력해야 풀어나갈 수 있다. 한 아이를 돕기 위한 거버넌스가 구축돼야 한다. 제주도 모델을 토대로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지금은 제주교육청뿐만 아니라, 광주, 충북, 인천교육청 등에서도 정신과 전문의를 채용하고 있다. 제가 목표로 삼았던 것은 단 하나였다. 아이들이 몸이 아플 때처럼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인식을 바꾸고 도움체계를 갖추는 것이었다.”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지만 학교에서 스트레스 관리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정말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국‧영‧수를 잘하는 것이 핵심일까.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학교에서 ‘정신건강 리터러시(mentalheath literacy)’, 즉 정신건강 이해력을 향상시키는 교육을 해야 한다. 아이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교육이다.

‘사회정서 교육’도 필요하다.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자신을 잘 표현하고 감정을 잘 조절하며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는 능력,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 다른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누구나 인생에서 시련을 겪는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좌절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 회복력(resilience)이다. 정신건강 리터러시를 배우고 사회정서 교육을 받으면 회복력도 좋아질 수 있다.

여전히 우리는 아이가 공부만 잘하면 많은 것을 봐주고 면제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학업도 중요하지만 감정조절, 사회성, 규범규율 관련 교육과 균형을 맞추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인식이 중요할 것 같다.

“맞다. 학령기 이전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부모교육을 진행할 때 ‘나다움’에 대해 강조한다. 아이는 저마다 고유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 꽃씨 상태일 때는 누구도 어떤 꽃망울을 터트릴지 모른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교사는 꽃망울을 터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 햇빛, 영양분이다. 장미씨앗에서 해바라기 꽃이 피진 않는다.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거나 모범답안을 만들어놓고 그 틀 안에 가두면 아이는 꽃을 피우지 못하거나 시든 꽃이 될 수 있다. 아이들 저마다 가진 고유한 정답이 있다. 장미는 장미로, 국화는 국화로 꽃 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나다움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끌어안아야 아이들을 보듬을 수 있다.” 

-남편 원희룡 지사와는 서울대 82학번 동기로 올해로 결혼 27주년을 맞았다.

“남편과는 동향이지만 서울에 올라와 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스물한 살 때 연애를 시작해 서른 살에 결혼해 지금까지 곁에서 지켜본 남편은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정치인의 배우자로 살며 느낀 건 정치의 본질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약자의 편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의료와 정치의 본질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은 남편의 정치 일정으로 잠시 멈췄지만 아픈 환자를 치료하고 잠재적 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삶의 풍요로움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에 충실하고 싶다. 특히 정신과 문턱을 낮춰 아이들도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노력을 다하겠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