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우리 아이가 한국계 미국인(Korean American)으로서 한국어를 말하고 한국을 잘 이해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IMF 중에 있었고, 한국어에 교육열이 높지 않았다. 한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한국어를 할 줄 알면 좋겠다는 희망사항 정도였다. 이에 반해 지금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K팝, K드라마, K푸드 등 한류의 영향으로 2세들의 한국어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과거에 모국어 교육을 소홀히했던 한인들의 후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은 재외동포 2세의 민족정체성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어 골든타임 

대체로 조부모나 부모가 한국어를 사용하는 가정의 아이들은 프리스쿨에 들어가기 전(3살)까지 한국어를 잘 한다. 그러나 학령기에 접어들어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어 사용이 급격히 줄어든다. 이때가 ‘골든타임'으로써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그동안 익혔던 유창한 실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심지어 한국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에 온 아이도 한국어 사용이 줄어들면 3-4년 뒤 외국인식 발음으로 변형되고 매우 어눌해진 경우도 있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어 습득 과정은 달랐지만,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첫째(아들) 사례

첫째 때는 ‘한국어할 줄 아는 사람'으로 양육하겠다는 목표만 있었을 뿐 구체적 실천방안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나의 이상적인 롤 모델을 찾기가 어려웠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니 영어부터 잘 해야 한다’는 피상적 생각에 영어 자극을 우선으로 주었다. 출생 후 약 1년간 영어로된 그림동화책, TV, 비디오에 노출시켰고, 엄마는 24시간 한국어, 아빠는 퇴근 후 몇시간 영어를 썼다. 1살 이후부터 한국어 동화책을 읽어주고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영어자극이 더 체계적으로 주어졌고, 그 결과 아이는 영어를 먼저 말했다. 아들의 1차적 언어(primary language)는 영어가 됐다. 대부분의 한인가정에서처럼 엄마는 한국어로 말하고 아이는 영어로 답하는 식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한글학교에 다녔으나 한국에서 문법위주로 영어 공부하듯 말하기는 여전히 어려워했다. 이때에 아이가 좋아하는 한국 역사드라마와 개그프로그램 등을 영어자막 도움을 받았으며 한국어에 대한 흥미를 높이는 데에 주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자막이 필요없게 됐고, 개그프로그램은 대굴대굴 구르며 볼 정도로 이해력이 상승됐다. TV 시청 후에는 반드시 토론시간을 가졌는데, 이때 가능한 한 한국어로 말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특히 7학년(중1) 여름방학 때 몇 주간 한국의 초등학교 6학년 체험으로 적극적인 태도로 변했다. ”학교에서 영어로 소통가능한 친구가 없어서 스스로 한국어를 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한국어로만 말할 수밖에 없는 5주만에 아들은 혀짧은 발음을 벗어나 학급에서 ‘영어 잘하는 아이'라는 별칭을 얻는 장족의 발전을 했다. 이후 집에서도 한국어 사용을 당연시 하게 됐고, 대학에 가서도 한국어를 제 2외국어로 선택하고 동포로 구성된 한인학생회 활동은 물론 방학중 한국어여름어학연수도 다녀오는 등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고 있다.

·둘째(딸) 사례

둘째는 첫째 아이때 장만한 한국 동화책, 비디오 테이프, EBS 온라인 시청 등을 통해 한국어 자극을 극대화시켰다.

동시에 미국 교육방송 PBS 프로그램도 병행했다. 결과 한국어를 첫마디로 시작했다.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엄마는  한국어 아빠는 영어로 아이들과 소통했다. 오빠와는 영어로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완벽히 구사하는 이중언어자가 됐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한글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4학년 여름방학에 한국의 초등학교 체험을 하면서 고급 한국어 공부에 대한 도전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오빠와 한국어와 영어를 반반 섞어 소통한다. 방과후 귀가하면 학교생활을 한국어로 내게 말하면서 한국어 실력을 길러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에서 전학온 학생들을 위해 학교 사무실과 교사들을 위해 한국어 통역을 담당했고, K팝 마니아 친구들에게 가사를 번역해주거나 한국어 튜터링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둘째 역시 한국계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으며 팬데믹이 풀리면 한국에 가서 한국문화를 만끽하겠다고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천자문 떼고 새로운 단어 만들어내기

아이들의 듣고, 말하기는 시청각 매체와 일상적 대화로 유지했고, 한영 일기쓰기로 철자법과 띄어쓰기 등 문법을 익혔다. 한국어 동화책 소리내어 읽기를 통해 ‘시각 단어(sight words)’를 촉진시켰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될수록 절대적 시간이 부족해지면서 집중적인 시간관리를 해야 했고, 한자를 배제하고 한국어 이해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첫째가 8학년(중2)이고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서 서당식으로 ‘하늘 천 땅 지~~~’하며 운을 띄워 천자문을 가르쳤다. 한자의 구성과 뜻을 이해하면서 매우 흥미로와 했다. 단어를 조합하며 마치 단어 제조기처럼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한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급상승하는 것 같았다. 어느날 ‘천장성(天張城=하늘로 연결되는 캐슬)’이라고 포스터 보드에 써서 자신의 침대 옆에 세워두기도 했다. 새로운 단어를 만나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자를 동원해 단어의 뜻을 풀어내며 재미있어 한다. 

긍정적 피드백과 동기부여 

먼저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일환으로  한국 관련 책이나 역사드라마, 한국문화축제에서 이뤄지는 한국전통 무용, 태권도 시범, 문화체험 등 외적 자극을 주었다. 처음엔 영어와 한국어를 병행하다가 서서히 한국어 비중이 커졌다. 미국 사회교과서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것을 수업에서 바로잡거나 사회적 이슈가 되는 위안부 문제를 논할 때 일본강점기를 함께 공부하고, 한국의 국력과 외교관계, 역사의식, 독도문제, 한일관계 등 한국 역사와 관련된 문제를 지속적으로 토론했다. 또 한국의 박물관, 고궁 등 고국체험 속에서 한민족 우수성을 찾아내어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되고 한국어에 대한 동기부여로 연결된 것 같다. 한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했듯이 우리 아이들의 한국어 향상을 위해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격려도 큰 몫을 했다고 본다. 성당에서 어른들께 인사하고, 미사 중 한국어로 성경독서를 마치고 나면 “독서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한국어 잘해서 예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긍정적 피드백이 부모의 칭찬 이상의 큰 동기부여가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두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집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은 지속됐다. 외국에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끈기가 매우 중요하다. 긴 기간을 요하기 때문에 더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    

 

황은자(베로니카) H&C 교육컨설팅 대표
황은자(베로니카) H&C 교육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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