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현옥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 ①

송현옥 세종대 교수 ⓒ홍수형 기자
송현옥 세종대 교수가 6월17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의 아내’라는 꼬리표는 길다. ‘연극인’ 송현옥(61)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의 이야기는 더 길고 흥미롭다. 그는 “나는 정치인의 아내지만 한 사람의 연극인이자 교수다”, “제가 남편의 일을 존중하고 응원하듯이 제 일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이다.

역대 서울시장 배우자 대부분은 남편 뒷바라지에 집중했다. 송 교수는 다르다. 고려대 영문학과를 나와 미국 드라마(석사)와 영국 드라마(박사)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서경대 전임강사를 거쳐 2005년부터 세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08년 자신의 극단 ‘물결’을 창단하고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다.

지난 6월17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 강연자로 참석한 송 교수를 만났다. 편안한 카디건에 긴 치마, 운동화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소탈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 교수님 같은 여성 연출가, 그것도 ‘60대 현역’은 드문데요.

“연극이 재미있으니까 버텨요. 하지만 여성은 물론이고 많은 연극인이 떠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죠. 저도 (코로나19로) 작년엔 우울증이 왔어요. 제자들에게 해답을 제시하기 어려워 자괴감을 느꼈죠.”

- 어떤 마음으로 버티셨나요.

“창작을 산고의 고통에 비유하잖아요. 다신 낳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막상 애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서 둘째를 낳는 거죠. 그런 ‘엄마의 마음’으로 연극을 해요. 모든 걸 쏟아붓고 나면 텅 빈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또 창작욕이 샘솟아요. 힘들 때면 저 자신에게 물어봐요. 연극을 정말 사랑하나? ‘연극 하는 나’를 더 사랑하는 게 아닌가? 연극을 사랑한다는 결론이 나오면 계속하는 거죠.”

극단 경영난에 허덕이고, 이젠 연극을 관둬야 하나 고민할 때마다 ‘열정’이 솟아났다. 2017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엑스포 국제연극제’에 초청돼 ‘오델로’를 선보일 때다. 러시아, 중국, 그루지야 등 각국의 내로라하는 극단들과 함께 초대받았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들아, 우리는 국가대표다!” 두 달간 밤새 연습했다. 출국 전 양쪽 발가락이 모두 부러졌다. 휠체어를 타고 카자흐스탄에 갔다. 의사가 혀를 내둘렀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이후로도 러시아, 체코 등 다양한 국제 연극제에 초청 받았다.

“제자들에게 ‘연극이 즐겁다면 20년만 버텨라. 그럼 성공한다’고 했어요. 20년은 생각보다 짧고, 여러분이 살아갈 ‘100세 시대’에는 재능을 늦게 꽃피워도 괜찮다고, 길게 보길 바란다고요.”

송현옥 극단 ‘물결’ 대표(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 ⓒ여성신문
송현옥 극단 ‘물결’ 대표(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 ⓒ여성신문

1989년 연극 비평으로 데뷔
2008년 극단 ‘물결’ 창단
60대에도 ‘현역’ 연출가
“제가 남편 일을 존중하고 응원하듯이
제 일도 존중받아야”

송 교수는 타고난 ‘문학소녀’였다. 연극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동네 꼬마들을 불러 모아 연극을 하며 놀았죠. 차비를 쪼개 모은 돈으로 혜화동 명륜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소감을 적었어요. 고등학생 땐 이해하기 어려워도 꼬박꼬박 연극을 봤고요. 대학에서 영어 연극반 배우를 맡았고, 성당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며 아이들과 연극을 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놀이’였는데, 영문학을 배우면서 드라마에 푹 빠졌어요. 박사과정까지 하게 됐죠.”

1989년 「한국연극」에 연극 ‘실비명’ 비평으로 데뷔했다. 박사과정, 대학 강사, 두 아이의 엄마와 며느리 역할을 모두 소화해야 했다. 저녁 공연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연극 대신 영화 비평에 집중했지만, 그럴수록 연극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1998년 미국 명문 공연예술학교 예일 드라마 스쿨(Yale School of Drama)에서 펠로우로 실기를 공부했다.

귀국 후 연극 비평가들의 모임인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공이모)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0년 평론지 ‘공연과 이론’이 탄생하자 편집주간을 맡아 연극계 동향을 소개하고 다양한 기획을 선보였다. 2005년 공이모 회장을 맡았다. 드라마투르기(극 구성) 작업을 하다 보니 “내 연극이 하고 싶어졌”다. 연출에 뛰어들었다.

2008년 극단 ‘물결’을 창단했다. 배우들의 대사뿐 아니라 구르고 뛰고 비틀거리는 신체 연기, 군무 등 ‘몸짓 언어’에 주목했다. 창단작 ‘폭풍의 언덕’부터 최신작 ‘의자 고치는 여인’까지 무용, 미술, 음악 등 다채로운 장르와 만나 '융합적으로 발전'하는 연극을 선보였다.  “움직임과 춤을 주된 극적 언어로 삼아 그 가능성과 방법을 모색해 온 집단으로서 한국 연극에서 주도적이고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김준삼 연출가, 「공연과 이론」 2018년 9월호)는 평도 받았다.

“연극은 교훈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 ‘연극은 예술’이라는 엄숙주의에 반대합니다. 관객들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죠. 그걸 작가나 연출가가 강요해서는 안 돼요.”

극단 ‘물결’ 대표인 송현옥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대표 서은경)에서 ‘여성적 세계관으로 다시 읽는 고전’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극단 ‘물결’ 대표인 송현옥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대표 서은경)에서 ‘여성적 세계관으로 다시 읽는 고전’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그동안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 안톤 체호프, 막심 고리키, 모파상 등 여러 고전을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왜 고전일까. “인간의 본질을 다루고, 그래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힘이 있어서”다. 원작의 메시지는 유지하면서 한 발짝 앞서나갔다. 남성적·이분법적 가치관을 깬 ‘여성주의적’ 해석을 시도했다. 수동적인 인물에 주체적인 서사를 부여하기도, 무용 요소를 활용해 상징적이고 강렬한 무대를 선사하기도 했다. “고전은 고리타분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제 연극 스타일은 오히려 현대적, 실험적”이라고 송 교수는 말했다.

예컨대 송 교수가 드라마투르기로 참여한 서울시극단의 2006년작 ‘오이디푸스 더 맨 2006’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각색한 연극이다. 원작의 오이디푸스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남성이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와 결혼하고 아버지를 죽이게 된다’는 자신의 운명에 괴로워하다가 끝내 두 눈을 찌른다. 연극은 다르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에 맞서는 인물로 재해석된다. 직관과 순리를 중시하는 엄마 이오카스테의 비중도 커진다.

극단 물결이 2014년 올린 ‘햄릿 : 여자의 아들’의 한 장면 ⓒ극단 물결
극단 물결이 2014년 올린 ‘햄릿 : 여자의 아들’의 한 장면 ⓒ극단 물결

2014년,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아 올린 ‘햄릿 : 여자의 아들’도 햄릿을 ‘여성주의적 세계관’으로 재해석했다. 어머니이자 왕비인 거트루드는 ‘헌신적이고 자애로운 존재’라는 모성 신화를 강요당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죽느냐 사느냐’는 남성적·이분법적 가치관에 갇혔던 햄릿이 거트루드의 영향을 받아 직관적이고 포용적으로, 수직과 수평이 아닌 ‘원’의 순리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2006년 ‘2인극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물동이전’은 바보 신랑과 결혼해 고된 시집살이를 하던 조선시대 여인이 솔직한 욕망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표현했다. 고전 ‘고금소총’(조선 후기 민간 전래된 문헌설화집. 노골적 음담패설이 많다 – 편집자주) 속 이야기를 재해석했다. 무용 요소로 여성의 강렬한 감정을 표현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송 교수가 2006년 ‘2인극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물동이전’ ⓒ극단 물결
송 교수가 2006년 ‘2인극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물동이전’ ⓒ극단 물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선정작인 극단 물결의 ‘의자 고치는 여인’의 한 장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선정작인 극단 물결의 ‘의자 고치는 여인’의 한 장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15년 연극 여정을 돌아보니 제 작품은 ‘여성주의적 세계관’이 두드러져요. 의도한 건 아닌데, 제가 여성이라서 여성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보게 돼요. 자연스레 가부장적·이분법적 틀을 깨는 시도로 이어졌죠.”

2020년작 ‘의자 고치는 여인’은 한 남자를 위해 일생을 바친 여인의 삶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행복은 무엇인지 묻는다. 기 드 모파상의 원작을 각색했다.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데 초점을 뒀다. 공연 때도 관객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나눌 수 있게 했다. 매 공연이 달랐고, 그래서 즐거웠다”고 송 교수는 말했다. 창작산실 선정작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CGV가 공연 활성화를 위해 지원한 ‘아르코 라이브(ARKO LIVE)’의 하나로 극장 개봉했다. 네이버 실시간 스트리밍 동시접속자 수로는 연극 부문 1위를 기록했다.

그의 딸, 현대무용을 전공한 배우 오주원씨가 여러 작품의 주연을 맡아 역동적이고 우아한 몸짓,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가족이지만 연출가로서 고마워요. 몸과 언어라는 표현 매체를 모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지성과 감성이 어우러진 배우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배우죠.”

그는 “제가 남편의 일을 존중하고 응원하듯이 제 일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남편이 더 그렇게 생각해요. 예전에는 남편 때문에 제가 연출가로서 더 명성을 떨치지 못해서 아쉽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아니에요. 제 성취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느껴요.”

이어지는 기사 ▶ 송현옥 교수 “내곡동 땅 가본 적 없어...억울한 일 당했다” www.womennews.co.kr/news/212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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