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의 정치포커스] '탈진실 시대' 엘리트 정치인 이준석
[신지예의 정치포커스] '탈진실 시대' 엘리트 정치인 이준석
  •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 승인 2021.06.09 09:21
  • 수정 2021-06-09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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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을 철회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지난 3월 29일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왔다. 이 청원은 하루 만에 10만이 넘는 동의를 얻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불러 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청원 내용 가운데 사실은 거의 없었다. 차이나타운 건설이 아닌 한중문화타운이었고, 선사유적지를 훼손하는 것도 아니고, 세금 1조원을 최문순 도지사가 지원하는 사업도 아니었다. 청원글이 거짓으로 드러났지만 최문순 도지사는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었고, 춘천과 강원도는 해당 사업을 백지화했다. 이러한 논란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회복이 어렵지만, 책임지는 가해자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준석 전 최고는 그런 가해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SNS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SNS

이준석 전 최고는 “최문순 도지사가 춘천과 홍천에 차이나타운 만드는 것을 옹호한다고 한다. … 차이나타운은 그냥 중국인들이 모여사는 저급 주거지 및 상권 정도의 인식이 있다. … 치안도 별로 좋지 않고 소위 “네이버후드”가 좋다고 하지는 않는다. … 춘천은 계속 닭갈비와 막국수, 소양강댐의 고장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작성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준석 전 최고의 글은 중국 혐오와 지방차별로 가득하다. 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과 코로나 전염 사태까지 맞물려 온라인에서 중국혐오가 대세가 된 지는 오래됐다고 하지만, 일반 개인과 공인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공인이 공적인 공간을 통해서 내놓은 의견은 그 자체로 ‘공식화’ 되고, 잡담거리로 끝났어야 할 수준의 내용이 마치 사실과 같은 무게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인 이준석의 글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인터넷 밈처럼 떠도는 글의 새로운 근거가 된다. 논란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이 모호하게 변한다. 

지난 4월 한중문화타운 사업이 백지화되고 나자 이준석 전 최고는 “강원도 한중문화타운 문제, 이렇게 결말이 났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다시금 “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을 철회해주세요”라는 제목이 선명한 국민청원 화면을 캡쳐해 올렸다. 그는 스스로의 모습을 꽤나 재치있다고 여기는 듯 하다. 그가 그의 말처럼 책임감 있는 정치를 지향하고 있다면, 말장난을 하지 말고 자신이 기술한 내용의 오류에 대해 사과하고 이전 발언을 철회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번 사안이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잘못된 행정을 막은 것으로 퍼지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그 투쟁에 앞장섰다는 것을 인증받고 싶어한다. 지방도시를 향한 차별 의식도 문제이다. 춘천이 앞으로도 수도권 시민들에게 추억과 오락을 제공해주는 역할에 머물러 있어줘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이미 변해가고 있는 한국의 현재를 따라가기에도 낡고 부적절하다. 

이준석씨는 여러번 본인이 과학고 출신임을 강조하며 다른 정치인들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뉘앙스로 포장한다. 이런 그의 과학적 세계관을 본격적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글이 있었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SNS

세계보건기구의 공식 승인을 받은 백신들 사이에 우열을 매기는 것은 비과학적인 태도이고, 지구적 전염 확산을 막는 의학계의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위험한 일이다. 동시에 부조리하다. 많은 의학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는 상식 수준의 사실을 과학고를 나온 경력을 자랑하는 정치인이 '선동하지 말라'며 부정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는 “선동하지마”라는 말로 특정집단을 선동하는 대신 시민들에게 마스크 착용과 적극적인 백신 접종을 권장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는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정치인의 전제주의 행동 네 가지를 적고 있다.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언론 및 정치 경재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네 가지 기준 가운데 하나라도 속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사회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 가짜 민주주의를 통해 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많은 역사 속 인물들을 소환한다. 이준석 전 최고를 포함해 이 시대의 가짜뉴스를 기반한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을 기준표에 넣어보면 높은 확률로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일어나는 일이고, 세대의 차이도 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심지어 나라의 구별도 없다. 

미국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의사당에 난입했던 큐어넌들, 모든 것을 상대집단의 음모라며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모여 들었던 사람들, 공정한 세상을 수호하겠다며 다른 성별과 인종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사람들. 이 모든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현대 문명 사회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이준석 돌풍이라고 불리는 현상은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풀어야 할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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