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페스 등 성병 감추고 성관계 뒤
성병 확진되면 상해죄 처벌도 가능
상대의 '미필적 고의' 입증이 관건

성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성관계를 가졌다가 성병을 옮긴 상대방을 처벌하고 싶다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다. ⓒ이은정 디자이너
성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성관계를 가졌다가 성병을 옮긴 상대방을 처벌하고 싶다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다. ⓒ이은정 디자이너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는데 상대가 관계 전 성병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헤르페스 2형 확진을 받았습니다.
보균 사실을 숨긴 남자친구를 처벌하거나 병원비를 청구할 수 있을까요?

최근 성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사람과 성관계를 했다가 성병을 옮았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다. 

A씨는 최근 성병 확진을 받았다. 남자친구인 B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는데, B씨는 그제서야 자신이 성병 보균자라는 사실을 실토했다. 현재 A씨는 B씨와 헤어진 상태다. A씨는 성병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B씨에게 병원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C씨도 전 남자친구가 성병 보균 사실을 알리지 않아 헤르페스 2형에 걸렸다. C씨는 온라인에 “남자친구가 저와 사귀기 전에 헤르페스 증상이 나타났다고 말했으나, 지금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며 “전 남자친구의 병원 이력도 존재하는 상황인데 소송이 가능한지 궁금하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성병에 옮았다는 이들은 대부분 헤르페스에 걸렸다고 했다. ‘헤르페스 바이러스(Herpes Simplex Virus, HSV)’ 감염에 의한 급성 염증성 피부질환을 말한다. 여러 HSV 가운데 가려움과 수포 발생이 동반되는 HSV 2형, 즉 생식기 헤르페스가 성병으로 분류한다. HSV 2형은 보건소에 신고해야 하는 법정 감염병이다. 전염력이 아주 높아 헤르페스가 있거나 의심되면 성관계뿐 아니라 키스 등 성적 접촉을 피하고 가능하면 콘돔을 쓰라고 의사들은 권한다. 특히 여성들은 방광염과 질염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치료에 애를 먹는 경우도 많다.  

'미필적 고의'로 상해죄 선고 판례 존재

지난해 국내에서는 성병 보균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성관계를 반복해 성병을 감염시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은 판례도 있다.

2012년 미국 오리건주의 한 지방법원에서는 성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성관계를 가졌다가 성병을 옮긴 한 남성에게 90만 달러(약 10억 5300만원)의 배상금을 상대 여성에게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배심원들은 사전에 성병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남성에게 75%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 B가 A에게 9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많은 성병 종류로 고의 입증하기 쉽지 않아"

김영주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사실상 고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성병의 종류 따라 다르기 때문”이라며 “잠복기가 있는 성병이 있기 때문에 증상 발현이 늦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남성의 경우는 여성보다 증상이 뒤늦게 나타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여러 방면으로 논의가 더 진행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쉽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미필적 고의를 따져 봐야 하는 것”이라며 “성병으로 인해 여성 건강권이나 향후 미래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 등 여성의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에 형사적 처벌까지 갈 수 있는지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논의 부족·터부시하는 인식도 문제적"

성병을 옮기는 행위 자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현장의 의견도 있었다. 김신아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는 “상담소로 간혹 상담 전화가 온다”며 “아직까지는 사회적인 논의나 공론화가 없는 상황이라 이를 성폭력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가장 문제적인 지점은 관계를 맺는 상대를 속인 것”이라며 “자신의 상황을 사전에 공유하고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진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는 성병을 터부시하는 사회적 인식도 지적했다. 경진 활동가는 “성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라며 “성병에 걸렸다고 하면 잦은 성관계를 한다는 낙인과 함께 더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또한 “남녀가 똑같은 성병에 걸렸어도 여성에게 따라 붙는 인식이 다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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