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비밀정원] 백래시와 성차별주의
[정치의 비밀정원] 백래시와 성차별주의
  •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 승인 2021.06.12 09:41
  • 수정 2021-06-1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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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카드와 성차별주의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상대로 사용한 캠페인 전략은 클린턴의 선거 메시지 중에서 성별(gender)과 관련된 내용을 반복적으로 비난하는 것이었다. 클린턴이 갖고 있는 유일한 카드는 여성카드(the only card she has is the woman’s card)”라고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녀(힐러리 클린턴)가 여성이 아니었으면 지금 경선과정에 있지도 않을 것”, “그녀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여성! 여성! 나는 여성이다! 나는 백악관에 들어가는 가장 젊은 여성이 될 것이다뿐이다”, “솔직히 힐러리 클린턴이 남성이었다면, 그녀는 5%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용한 여성카드 공격 전략이 유권자의 후보에 대한 평가와 투표 행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성별보다도 여성에 대한 믿음, 즉 적대적·온정적 성차별주의가 후보에 대한 평가와 투표 의향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Cassese and Holman 2019). 특히 여성카드에 대한 공격 전략은 적대적 성차별주의자들에게 상당한 효과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대적 성차별주의 경향이 강할수록 트럼프 후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다양한 선거활동에 참여할 가능성도 더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의 여성카드에 대한 공격 발언을 듣고 Zach Wahls와 Zebby Wahls는 선구자적인 미국 여성들을 기리는 카드 한 벌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힐러리 클린턴을 에이스 카드로 선택했다(Cockburn 2016)
도널드 트럼프의 여성카드에 대한 공격 발언을 듣고, Zach Wahls와 Zebby Wahls는 선구자적인 미국 여성들을 기리는 카드 한 벌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힐러리 클린턴을 에이스 카드로 선택했다(Cockburn 2016)

 

반페미 전략과 이준석의 부상

4·7 ·보궐선거 투표가 끝나고 방송3(KBS·MBC·SBS)가 발표한 서울시장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이남자)’72.5%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는 결과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을 통해 여성과 남성 간의 갈등으로 프레임됐고,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가 가열차게 진행되는 데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이준석은 이러한 백래시를 등에 업고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서 돌풍’(인지 모르겠지만)을 일으키는 주역이 되었다.

머니투데이와 미래한국연구소가 PNR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준석 후보는 당대표 적합도에서 41.3%의 지지를 얻었고(박종진·이창섭 2021), 한국갤럽이 실시한 대권여론조사에서도 3% 지지를 얻어 대권주자로 이름을 올렸다(문지영 2021).

논리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이준석이 주장하는 (정치영역에서의) 여성할당제 폐지는 성차별적이고 성불평등한 구조와 맥락을 삭제한다는 점에서 본질을 은폐·왜곡하는 주장일 뿐만 아니라 대다수 20대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현재 겪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본질을 벗어난 주장이다. 그럼에도 여성할당제가 불공정하며 능력주의에 반한다는 주장이 20대 남성뿐만 아니라 다수 남성들의 지지를 얻고 이준석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출처: 머니투데이
* 출처: 머니투데이

 

적대적 성차별주의를 통한 지지세력 동원

체제 정당화 이론(system justification theory)은 개인들이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심리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Cassese and Holman 2019). 즉 체제로부터 이득을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불이익을 겪는 사람 또한 불평등을 공정하다고 믿는 체제 정당화 경향을 갖고 있고, 이로 인해 불평등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구성하는 기제들은 다양한데 성별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핵심기제가 바로 성차별주의(sexism)이다.

성차별주의는 기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즉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으며, 그것이 정당하다는 관념이다. 물론,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을 남성의 권력을 빼앗는 존재로 보고, 남성의 것이었던 권력을 빼앗는 여성들에게 적대감을 갖고, 그러한 여성들에게 벌을 줘야 한다는 관념인 반면,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을 연약한 존재로 보며, 특히 전통적인 성역할을 수용하는 여성에 대해서는 보호와 보살핌을 제공하는 등의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관념이다. 두 개의 성차별주의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모두 가부장적인 질서와 종속적 성별관계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성평등과 민주주의에 반한다.

이러한 양가적 성차별주의는 성평등이나 할당제와 같은 여성정책에 대한 지지와 관련해 동일한 또는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적대적 성차별주의이든 온정적 성차별주의이든 성차별주의자들은 가치로서 성평등을 지지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Pereira and Porto 2020). 반면, 적대적 성차별주의자일수록 할당제를 반대하는 반면, 온정적 성차별주의자일수록 할당제에 찬성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Beauregard and Sheppard 2020; Fraser et al. 2015; Pereira and Porto 2020).

이러한 연구결과들 그리고 앞서 트럼프의 여성카드 공격 전략의 효과에 대한 연구결과를 고려할 때 이준석에 대한 지지의 기저에는 성차별주의, 특히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강한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여성을 남성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할당제를 비롯해 구조적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여성정책들을 남성들에 대한 ()차별, 공정과 능력주의를 훼손하는 것으로 프레이밍하는 이준석의 수많은 레토릭들이 적대적 성차별주의자들을 동원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적대에서 벗어날 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성불평등과 남성의 삶의 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온정적 성차별주의(benevolent sexism) 인식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모든 연령대에서 유사한 수준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마경희 외 2018). 이러한 경향은 2020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성평등한 정치 대표성 확보 방안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이진옥 외 2020, <그림 1> 참조).

여성을 보호나 보살핌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에는 남성 내 세대차이가 존재하지만 여성을 적대적 존재로 보는 인식에는 남성 내 세대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남성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금의 이준석 현상은 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사례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림 1> 적대적·온정적 성차별주의 점수 : 성별*연령별 

적대적 성차별주의(HS, 왼쪽)                      온정적 성차별주의(BS, 오른쪽)
적대적 성차별주의(HS)                                                           온정적 성차별주의(BS)

 

수천 년 동안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었다. 참정권을 획득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여성은 여전히 정치의 이상적인 점유자’(Puwar 2017)가 아니다. 정치의 기본값이 남성이고, 남성성이 정치의 기본규범이라는 사실이 문제라고 인식되지 않는 한 백래시는 계속 될 것이다. 백래시를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백래시가 크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남성 중심성이 그만큼 뿌리가 깊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인 동시에 페미니스트들이 그만큼 잘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여성은 온정이 대상도 적대의 대상도 아니다. 20대 여성은 이미 변화했고,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하는 과거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이제 변화해야 할 것은 남성이다. 온정적 성차별주의를 거부하는 20대 남성이 적대적 성차별주의 또한 거부하며 성평등한 세계로의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참고자료>

이진옥·권수현·서복경·장명선. 2020. 성평등한 정치 대표성 확보 방안 연구.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마경희·조영주·문희영·이은아·이순미. 2018. 성불평등과 남성의 삶의 질에 관한 연구. 서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문지영. 2021. “대선 못 나가는 이준석, 대권 여론조사 첫 등장 지지율 3% ‘4’.” <YTN> 2021.06.04. https://www.ytn.co.kr/_ln/0101_202106041410014915

박종진·이창섭. 2021. “이준석, 지지층서 49.9%끝까지 돌풍? 혹은 중진 대역전?” <머니투데이> 2021.06.06.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60617133691776

Beauregard, Katrine and Jill Sheppard. 2020. “Antiwomen But Proquota: Disaggregating Sexism and Support for Gender Quota Policies.” Political Psychology 42(2), 219-237. http://doi.org.ssl.access.yonsei.ac.kr:8080/10.1111/pops.12696

Cassese, Erin C. and Mirya R. Holman. 2019. “Playing the Woman card: Ambivalent Sexism in the 2016 U.S. Presidential Race.” Political Psychology 40(1), 55-74.

Cockburn, Paige. 2016. “Donald Trump’s ‘woman card’ comment sparks inspirational deck of cards by Iowa siblings.” https://www.abc.net.au/news/2016-05-03/donald-trumps-comments-inspire-deck-of-woman-cards/7379946

Fraser, Gloria, Danny Osborne, and Chris G. Sibley. 2015. ““We want you in the Workplace, but only in a Skirt” Social Dominance Orientation, Gender-Based Affirmative Action and the Moderating Role of Benevolent Sexism.” Sex Roles 73, 231-244.

Pereira, Frederico Batista and Nathalia F. F. Porto. 2020. “Gender Attitudes and Public Opinion Towards Electoral Gender Quota in Brazil.” Political Psychology 41(5), 887-899.

Puwar, Nirmal. 너멀 퓨워. 김미덕 옮김. 2017. 공간 침입자. 서울: 현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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