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모범택시’

SBS 드라마 ‘모범택시’ ⓒSBS
SBS 드라마 ‘모범택시’ ⓒSBS

다시 바위가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하는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가 감내하는 영겁의 형벌은 얼마나 불합리한가? 벌을 받으며 시지프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향해 굴러 들어오는 사회의 부조리(바위)를 깨닫는 자이자, 바위를 밀어 올리면서 본인에게 닥친 부조리한 일상에 체념하거나 묵묵히 자신의 방법만으로 저항하는 신화 속 인물이다.

사회의 부조리는 미디어가 좋아하는 소재다. 실제의 세계를 다룬 뉴스부터 현실에 있음직한 혹은 허구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 같은 픽션 장르까지 우리는 사회의 부조리의 일면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곤 한다. 이처럼 미디어가 보여주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사건들은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시지프스처럼 일상의 부조리를 자각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사회의 부조리라는 소재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다뤄왔다. 주인공이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 고초를 겪고, 그 가족이 희생되어 복수를 감행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주인공이 악당에게 복수할 때 시청자들이 통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최근 종영한 ‘모범택시’(SBS)는 ‘전화 한 통이면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대행해주는 택시회사’라는 설정 속에 법의 테두리에서 온당한 처벌을 받지 않은 악당들을 납치하여 응징하고 복수하는 이야기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응징하는 소재가 만연된 상황에서 ‘모범택시’의 인기 요인과 논란들을 드라마의 이야기 전개 방식에 방점을 두고 되짚어 보고자 한다.

SBS 드라마 ‘모범택시’ 티저 영상 캡쳐 ⓒSBS
SBS 드라마 ‘모범택시’ 티저 영상 캡쳐 ⓒSBS

고구마-사이다 오가는 통쾌한 응징

‘모범택시’의 인기 이유는 드라마가 보여주는 사회의 부조리가 일상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어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학교 폭력, 장애인 강제 노동, 회사의 갑질,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는 나 혹은 친구, 가족 등 주변 지인들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일상적인 범죄들이다. 초반 시청자들이 법이 아닌 폭력적인 방법으로 악당들을 처리하는 이야기에 환호했던 것은 일상에서 만연되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피해자들이 기대하던 처벌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느꼈던 분노와 자괴감을 ‘무지개 운수’가 해소해주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일상의 부조리를 해결하는 주인공들에게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다. 금토 드라마로 금요일에 악당들의 악행과 이들의 처벌을 위해 잠행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토요일에 악당들을 응징하는 빠른 전개 역시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은 원인이었다. 소위 답답함을 선사하는 ‘고구마’ 과정이 길지 않고 바로 ‘사이다’를 터트려주는 이야기의 전개는 답답함보다는 통쾌함을 주었다. 잠입 과정에서 벌어지는 드라마 등장인물 간의 소위 ‘티카티카’도 재미의 요소로 빠질 수 없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중간 중간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농담과 코믹적인 요소들은 시청자들에게 적절한 긴장과 이완을 가져와 극에 대한 몰입과 재미를 유발 했다.

작가 교체되며 드라마 전개도 변화

순항 중이던 ‘모범택시’의 변화가 감지된 것은 종영이 가까워진 시점에 갑자기 작가 교체가 수면 위에 떠오르면서다. 후반부의 드라마 전개는 예전과 다른 결을 보여줬다. 단 2회에 사건이 벌어지고 해결되는 빠른 전개 대신에, 큰 사건과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지고 사건의 규모 역시 커졌다. 드라마의 분위기는 웃음기가 싹 빠지면서 무거워졌다. ‘사건 의뢰 접수–안티 히어로의 활약’이라는 단순한 전개 구도는 사법제도에 대한 성찰이라는 진중한 주제로 확장됐다. 이것은 일상의 부조리를 해결하던 히어로물이 사법 정의라는 거대 담론을 껴안으면서 이야기의 세계가 변화하고 확장한 것이다. 이러한 드라마 전개 방식의 변화는 사법정의에 대해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주지만, 드라마를 처음부터 시청했던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일으킨다. 어쩌면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이 바라던 것은 일상적인 부조리를 일으키던 악당들은 주인공의 활약으로 적절한 처벌을 받고, 피해자들은 일상으로 복귀하는 결말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전개 방식이 ‘어쨌든 아직 우리 사회는 안전하다’라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들은 종종 잘못된 정치·경제·사회 제도에 대한 통찰을 주면서 거시적인 차원에서 사회 부조리를 다루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매일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마주하는 불합리한 것들을 다루는 미시적이며 생활 밀착형의 통쾌한 드라마의 가치 역시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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