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속옷 비치면 벌점” 찜통더위에도 고집하는 학교들
“여학생 속옷 비치면 벌점” 찜통더위에도 고집하는 학교들
  • 김규희 기자
  • 승인 2021.06.13 12:44
  • 수정 2021-06-13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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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들 아직도 “여학생 속옷 비치면 벌점”
찜통더위에도 “하복 안에 흰 티 입어라”
전문가들 “인권침해는 물론
소화불량·피부염 등 건강 위협
학습능력·집중도 떨어질 우려도”
서울시 관악구 A여고에 다니는 김모(17)씨는 교칙상 찜통더위에도 하복 상의 안에 러닝이나 흰 티를 껴입어야 한다. ⓒ여성신문

“여름에 속옷 위에 또 흰 티를 입어야 한다는 게 아주 답답하죠. 덥고. 소맷자락이 계속 삐져나와서 신경 쓰이고요.”

서울시 관악구 A여고에 다니는 김모(17)씨는 찜통더위에도 하복 상의 안에 러닝이나 흰 티를 입어야 한다. A여고 학생생활규정에는 ‘하복 착용 시 상의 블라우스 안에는 흰색 또는 살구색의 내의(러닝·면티)를 착용해 비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단, 블라우스 밖으로 (티셔츠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다. 

서울 시내 여중·여고 4~5곳 중 1곳은 아직도 이런 교칙을 유지하고 있다. 문장길 서울시의회 의원이 3월8일 서울시 관내 여자 중·고교 학생생활규정을 조사한 결과, 중학교 44개교 중 9개교(20.5%), 고등학교 85개교 중 22개교(25.9%)는 아직도 속옷의 착용 여부와 색상, 무늬, 비침 정도를 규정하고 있었다. 

문장길 서울시의회 의원은 8일 서울시 관내 여자 중·고교 학생생활규정을 살펴본 결과를 밝혔다. ⓒ서울시의회<br>
문장길 서울시의회 의원은 3월8일 서울시 관내 여자 중·고교 학생생활규정을 살펴본 결과를 밝혔다. ⓒ서울시의회

 

“여학생 속옷 비치면 벌점” 인권침해 교칙
순환장애 유발하거나 알러지·아토피 악화 우려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하복을 입은 학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하복을 입은 학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하지만 찜통더위에 흰 티를 껴입는 것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소화불량과 순환 장애를 유발하고 피부염을 심화시키는 등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학습능력과 집중도도 떨어뜨릴 수 있다.

문현주 여성전문 한의사는 “너무 꽉 끼게 입으면 순환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순환 장애란 혈액이나 림프액이 순환하지 못해 세포나 조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신기식 대구 신피부과 원장은 “아토피나 알러지가 있는 경우 피부 온도가 올라갈수록 가려움을 더 많이 느낀다”며 “통풍이 잘되는 옷, 면 소재 옷이 좋다”고 밝혔다.

김지선 경남 창원문성고 보건교사는 “면 소재 러닝 하나 정도 입는 것은 땀 배출에 효과적이나 여러 겹을 입으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학생들이 답답해서 마스크를 벗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도 있어 코로나19 감염에 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꽉 끼는 셔츠보다 생활복이 건강에 좋다고 설명했다. 김 보건교사가 재직 중인 창원문성고 학생들은 여름철 생활복을 입는다. 김 보건교사는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 신체가 성장하면서 교복은 점점 작아지는데, 생활복은 티셔츠 형태라 잘 늘어나고 구김이 없다. 또, 색깔도 남색이어서 속옷이 비치지도 않아서 편하게 입는다”고 말했다.

서울 강명중에서는 올해부터 편한 교복을 도입했다. ⓒ강명중<br>
서울 강명중에서는 올해부터 편한 교복을 도입했다. ⓒ강명중

“여학생 속옷 비치면 벌점” 교칙은 성차별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여학생들에게 ‘몸은 가려야 하는 것’, ‘몸은 수치스러운 것’, ‘몸은 성적 자극을 유발하는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줘 ‘몸이 짐이자 무거운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남학생들은 속옷을 입지 않아도 제재받지 않을 때, 여학생들은 브래지어와 러닝, 면티를 껴입어야 한다. 남학생들이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를 여학생들이 소비하면서 여학생들의 학습능률과 집중도가 남학생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문장길 서울시의원 “인권침해 학칙, 전면 수정 폐기 추진”

지난 5일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존 학생인권조례에는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생의 의사에 반해 복장,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해서는 아니 된다. 다만, 복장에 대해서는 학교 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어 문제가 됐다. 개정안에서 전면 삭제된 조항이다.

하지만 조례를 지키지 않아도 학교에서 받는 페널티가 없어 학생들은 여전히 속옷 규제를 받는다. 개정조례안을 발의한 문 서울시의원은 “학생생활규정 개정은 교장의 의지에 달려있다”며 “학교생활 규칙이 학생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제한할 소지가 있고, 비민주적인 조항들이 다수 존재하는 만큼 이를 전면적으로 수정 폐기하는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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