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운전면허 제도가 특이한 것 중 하나는 5년 이상 무사고 운전을 한 24세 이상 가족에게 운전교사 자격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운전연습자와 보호자가 동시에 국가 지정 운전연습학원에서 제공하는 기초과정을 수료하면 운전연습자는 보호자와 함께 거리에 나가서 운전연습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여성신문·뉴시스
스웨덴 스톡홀름 감라스탄 거리. ⓒ여성신문·뉴시스

북유럽에서 30년 이상 살아보니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햇볕이다. 햇빛을 보기 힘든 겨울, 어쩌다 해가 나는 날이면 추위에 상관없이 그 날은 모두 해바라기가 된다. 추운 겨울에도 해가 나는 시내 중심가의 식당들은 실외에 탁자를 설치하고 담요를 손님들에게 제공해 준다. 식사나 음료를 마시며 잠시라도 햇볕을 더 쬐고 싶어 하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 차원이다. 햇빛은 한 나라의 운명까지도 바꿨다.

일조량이 짧고 여름 이상한파가 잦아 감자와 귀리 수확이 확 줄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자,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고 새로운 꿈을 찾아 나선 국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이민 행렬은 30년 이상 지속되었고, 이 때 미국으로 꿈을 찾아 떠난 국민은 100만명을 넘어섰다. 인구의 25%가 나라를 등진 결정적 이유는 바로 햇빛의 부재 때문이었다. 세계1차대전 기간까지 스웨덴의 이민행렬은 이어졌다.

1차대전 이후 햇빛보다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 중 하나는 실업문제였다. 대공황시절 전 국민의 30%가 일자리가 없어 국가가 제공한 하루 임시직이라도 얻기 위해 직업소개소마다 장사진을 이뤘다. 그나마 일자리가 있었던 사람들은 하루 13시간 고된 노동을 마치고 알코올로 피로를 풀기가 일수였다. 스웨덴이 1930년대 실업율과 음주로 인한 사망률은 세계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고난 중 하나는 바로 총파업과 직장폐쇄가 반복되던 고용시장 불안이었다. 또 다른 복병은 임금격차와 부의 편중이었다. 사무직과 생산직 종사자들의 임금격차, 남녀 노동자의 임금격차,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수 등은 스웨덴의 경제성장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이었다. 뭐 하나 내세울게 없었던 나라가 1970년대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최고 경제성장국가, 공정한 분배 그리고 높은 삶의 질 국가로 변신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국가 운명을 바꾼 출발, 노사화합

첫 단추는 노사화합에서 시작했다. 노조의 파업을 불법화했던 사측과 기업인을 특권세력으로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정부의 개입 없이 노조와 기업대표들이 무릎을 맞대고 1년 동안 끌어온 협상에 부와 대기업의 상징이었던 스톡홀름 동쪽 외곽지역인 쌀트쉐바덴 그랜드 호텔에서 양측대표가 대평화 선언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 타협은 불신과 갈등, 폭력과 구속의 악순환을 일순간에 끊어낸 혁명적 사건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 정신은 스웨덴의 국가브랜드인 스웨덴 모델(The Swedish Model)의 핵심가치로 8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간직되고 있다. 노사화합은 국가의 운명을 바꾼 출발점이었다.

이렇게 바뀌기 시작한 국가 운명은 197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국가 중 하나로 발돋움했고 어머니 뱃속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사회복지국가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스웨덴 모델은 193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 사회변화를 겪으며 발전되어 온 개념이다. 1928년의 국민의 집(People’s Home) 이념, 1950-60년대 강한 사회(Strong Society), 1970년대 평등사회(Equal Society), 성평등 (Equal Gender State) 국가, 1990년대 녹색 국민의 집(Green People’s Home), 중립외교정책을 통한 적극적 국제사회발전 기여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국가이미지를 담고 있다.

스웨덴 국가브랜드의 핵심적 가치는 바로 세계적 복지국가, 고른 삶의 질과 분배, 성평등, 장애인 및 소수자 보호, 친환경국가, 노동생산성, 노사평화, 시민의식, 높은 정책투명성과 민주주의의 질, 세계적 문제에 대한 적극적 참여와 책임 등을 담고 있다. 80년 만에 투쟁과 질시, 갈등과 폭력으로 얼룩진 나라가 대 변신에 성공한 셈이다.

국가 개입 없이 타협‧상생

혹자들은 스웨덴이 작은 나라였기에 가능했다고 애써 폄하하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스웨덴의 노조는 워낙 쉽게 타협하는 국민성을 닮아서 기업과 손잡고 상생을 택했다고 억지논리를 편다. 어떤 논객은 스웨덴은 노조와 사민당 중심의 좌파모델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억지논리다. 더 작은 국가도 실패할 수 있고, 더 큰 국가도 성공할 수 있다. 스웨덴 노조도 193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투쟁력이 높았던 강성노조였다. 사민당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2차세계대전 이후까지 당정책노선에 담고 있었다. 어떤 기업이 좌파정부에 끌려가면서 높은 임금의 일자리를 만들고 높은 세금을 부담하며 국내 시장에서 기업활동을 하려고 할까?

스웨덴 모델의 시작은 한번 손해를 보더라도 먼저 시작해 보자고 했던 노조와 기업대표의 타협과 양보정신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은 왜 높은 임금, 법인세, 피고용자 개인연금적립금 부담, 높은 노동환경기준과 안전, 병가급여와 고용복지세를 부담하면서도 스웨덴에서 기업을 굳이 하려고 할까를 고민해 보면 답이 나온다. 높은 상속세와 증여세는 이전까지 많은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았지만 2005년 폐지해 좋은 기업들을 다시 유턴하도록 유도했다. 창업주의 경영권 보장과 외국기업사냥 기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법제도가 존재한다.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좌파와 우파 정부 구분 없이 모두 대외적 국가브랜드로 삼고 그 핵심적 가치를 중심으로 국제무대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개입 없이 우리의 국가운명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나갈 수 있는 주체세력들은 진정 나올 수 없는 것인가?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박선이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박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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