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가 황금알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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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을 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마이 베이비 색'의 이명선씨. <사진·이기태 기자>▶

캐리어의 편리함과 포대기의 살내음이 만나

포대기로 아이를 업으면 아이가 등에 착 붙어있지 않고 허리까지 줄줄 내려와 고생한 경험이 있는지. 배낭처럼 가뿐하게 생긴 캐리어라고 해도 등에 업으면 아이의 등이 구부정해져 고심한 기억이 있는지.

작은 올케 이명선(33)씨와 손위 시누이 민현경(34)씨가 전통 포대기의 불편함과 현대 캐리어의 단점을 보완해 아이들을 편하게 업을 수 있도록 개선한'베이비 색'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이다.

“손위 시누이나 저나 아기가 어려서 자주 업고 다녔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해도 포대기로 아이를 잘 업는데 저희들은 이상하게 포대기가 불편하더라구요. 외출할 때야 베이비 캐리어나 아기띠를 한다고 해도 집에서는 포대기를 많이 이용하잖아요. 기능성 포대기를 개발하게 된 것은 우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씨가 말하는 '베이비 캐리어의 편리함과 아이와 살을 맞대는 포대기의 철학'을 하나에 담은 상품의 탄생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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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 포대기를 연구한 것은 시누이 민씨다. 홈패션을 잘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뭐든지 척척 만들거나 고쳐서 입던 그는 과감히 포대기에도 손을 댔다. 처음에는 포대기 끈을 한복 치마끈처럼 가슴 위쪽과 허리쪽에 달고 묶어 보기도 했지만 흘러내리기는 마찬가지.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포대기에 커다란 찍찍이를 붙여 허리를 고정하고 끈은 양쪽 어깨에서 내려 묶을 수 있도록 했다.

이씨는 “별도의 시장조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호응이 높았습니다”며 “그 포대기로 아이를 업고 나가면 두세 발자국 걷기가 어렵게 어디서 구했는지 살 수는 없는지 물어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친구들은 비용을 지불할 테니 만들어 달라고 요구까지 했습니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집에 있던 두 주부는 생각 외로 높은 반응에 힘입어 과감히 기능성 포대기 전문쇼핑몰을 열었다.

온라인 창업 최대 과제는'홍보'

이씨와 민씨가 사업을 시작한 곳은 당시 살고 있던 청주. 제작 하청은 서울 상계동에 위치한 모 사와 계약했고 특별히 물류창고나 오프라인 상 매장이 필요하지 않는 온라인 전문 쇼핑몰이라 사무실은 민씨의 아파트를 활용했다.

이씨는 “출원부터 등록까지 길게는 1년이 넘을 수 있어 일반적으로 출원신청하고 바로 사업을 시작합니다”며 “우리는 좀더 철저히 준비하고 시작하자는 생각에 99년 말부터 2000년까지 2년여에 걸쳐 실용신안 등록, 의장, 상표 등록을 마쳤고 2001년 4월에는 국내 특허도 받았습니다”고 밝힌다.

창업자금 마련을 위해 청주에 있는 소상공인 지원센터를 방문해 상담도 했다. 이씨는 “판로개척에 대한 다양한 통로를 알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충분한 자료는 얻지 못했지요”라며 “창업비용 지원도 사업자 등록과 사무실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우리처럼 온라인 매장은 뚜렷이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없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소상공인 센터에서 대출 2000만원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포기했습니다”며 결국 창업비용은 결혼 전부터 모아둔 적금을 해약했다.

창업자금 1200만원. 최소 수량 500개의 물건 만드는 비용, 홈페이지 만드는 비용 70만원, 도메인 값 20만원, 사업 전용 전화 신청 등으로 사용했다. 인터넷 쇼핑몰이라 생각보다 창업비용이 적게 든 것이다.

상표 분쟁 겪으며 창업시련 겪기도

온라인 쇼핑몰의 가장 큰 관건인 홍보는 어떤 식으로 접근했을까.

“처음에는 친구들과 우리 제품을 사용한 분들의 입소문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또한 우리의 경우 시누와 올케가 창업을 했다고 하니 지역 언론에서 연락이 와 언론 덕도 봤구요. 그러나 이런 홍보는 한계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초창기 몇 달 알리는 정도죠. 가장 좋은 방법은 메일링을 통해 무작위적으로 사이트를 알리는 것인데 스팸메일에 시달리는 요즘 누가 열어보겠어요.”

이런저런 고민 끝에 주로 유아잡지 새상품 광고를 많이 했고, 잡지 애독자 선물을 무료로 제공하는 방법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요즘은 다른 유아용품 인터넷 사이트 배너광고와 하이텔 주부 동호회, 다음카페 주부 시샵에게 무료로 사용하게 하는 등 개별접촉을 많이 한다.

2001년 가을 이씨는 또 다른 시도를 했다.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업이 잘 돼서 확장하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이왕 시작한 창업, 자리라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고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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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홈쇼핑 머천다이저와 만남, 오프라인 매장 진출 등 다양한 시도를 위해서는 아파트가 아닌 사무실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그는 “일을 하다보니 명함에 어디어디 아파트라는 주소가 불편했습니다”라며 “사적인 공간이 공개되는 것도 그렇고 사업 신뢰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서울에서 가깝고 물류창고 관리도 필요해 친정이 있는 안양으로 창고식 사무실을 얻었지요. 남편 직장도 서울로 발령을 받아 그해 겨울 집도 이사했습니다”고 밝혔다.

창업 과정을 차분히 설명하던 이씨가 요즘 큰 고민이 있음을 털어놨다. 생각지도 못한 상표 분쟁을 겪고 있는 것이다.

기능성 포대기로 특허 출원까지 받아 사업에 자신감이 생긴 그에게 어느날 친구의 전화가 왔다. “창업한다고 하더니 벌써 전국적인 홈쇼핑에 상품이 실렸네. 축하한다.” 지역에 많이 알려지고 서서히 쇼핑몰 홍보를 하던 그였지만 원단 순면으로 제작 단가가 좀 비싼 편이라 생각만큼 사업확장은 느렸다. 더구나 전국적인 홈쇼핑에 제품을 소개해 본 적이 없어 놀랐다고 한다. 확인해 본 결과 유통망이 확보가 된 모 업체에서 아무리 봐도 흡사한 하지만 포대기 안쪽에 한 가지 기능이 좀 다른 포대기를 특허 출원한 것이다.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하고 좀 화가 나서 이의신청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변리사를 통해서 하는데 생각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제가 직접 나섰지요. 인터넷을 찾아 신청했지만 상대방은 변리사를 통해 교묘하게 전혀 다른 상품인 것처럼 반박하더라구요.”

보통 특허청이 일일이 실물을 확인해 특허 출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통해 처리하는 부분이 많아 상대 업체에서 그 허점을 이용했다.

“제게 전화를 걸어 대놓고 얘기하더라구요. 좋게 표현해 벤치마킹 했다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이씨는 심각한 고민을 했다. 시누와 올케가 공동 창업은 했지만 사업 확장을 위해 남성을 대표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솔직히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좋은 점도 많았지만 실제 사업에서는 어려움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지요. 특히 이런 분쟁도 그렇고 오프라인 매장을 뚫어 보려고 하니 걸리는 게 많았습니다.”

창업을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창업 과정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에 응했다는 이씨는 “친구들 중에서도 온라인 창업을 하겠다고 문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며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사업은 사업입니다.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고 철저한 준비가 우선이지요”라며 창업도 중요하지만 창업 이후 사업 유지를 강조했다.

동김성혜 기자d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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