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의 보통날] 어제 당신의 희생으로 오늘을 삽니다
[김지은의 보통날] 어제 당신의 희생으로 오늘을 삽니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1.05.28 09:20
  • 수정 2021-05-28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동체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재조정의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조직이 재생과 회복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 쇄신은 관념적 논쟁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pixabay
앞서서 싸운 이가 내게 건네준 연대의 역사를, 싸움의 서사를 기억하고, 언젠가 다른 이에게 연대의 손길만이 전해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그 길은 우리가 함께 모든 종류의 폭력을 고발하고, 멀리할 때 이루어지지 않을까? ⓒpixabay

‘미투’라는 단어가 있기 몇 년 전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발하고, 오랜 기간 싸워온 피해자가 있다. 지금보다 더 피해자의 말에 귀기울여주지 않던 시기에 거대한 회사 조직에 맞서 용기 있게 목소리를 냈다. 재판에서도 이겼지만, 그는 아직도 직장에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경력을 이어가던 그는 고발 이후 노동자의 삶을 빼앗겼다. 그를 포함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존엄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는 많다. 그들 중 대다수가 아직 일터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부 피해자의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 소식은 대부분의 피해자들에게는 여전히 먼 이야기다. 오래전부터 자신의 삶을 바쳐 투쟁해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사회의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최소한의 변화는 누군가의 희생에 영향 받고 있음을 기억한다. 이제라도 우리가 함께 그 무게를 나눈다면 더 많은 것들을 바꿔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명의 가해자 단죄 넘어
가해자 방조한 제도 바꿔내야

최근 방송에 공권력을 대신해 복수를 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정부가 외면한 학교폭력 피해자, 성폭력 피해자, 보이스피싱 피해자 등 평범한 일상의 약자들을 대신해 복수를 해준다. 제도의 미비를 핑계 대며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기관들을 대신해 통쾌하고, 강렬하게 죗값을 묻는다. 모든 문제가 단순하게 종결지어지는 그 모습이 한없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현실에서의 복수는 폭력으로 할 수 없다. 한 명의 가해자를 단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가해자를 방조하고, 용인해온 제도와 토양을 바꿔내야 한다. 가해 문화를 바꾸어야 악행을 멈출 수 있다. 극 중 불법 동영상을 유통하고, 범죄를 일삼은 데이터 기업의 회장이 “너 여기만 광산인 것 같지? 나한테 50원, 100원 내고 다운로드 받아가는 그 개XX들이 다 내 광산이야”라고 소리 지르는 모습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변화는 홀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앞서서 싸운 이가 내게 건네준
연대의 역사, 다른 이에게 전해지길

‘미디어 세상’에는 피해자의 개인 정보부터 피해자를 비난하는 거친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방치돼 있다. 꾸며지고 왜곡된 글들을 직접 마주하며 일일이 삭제 요청을 해도, 오염된 호수의 한 켠에서 컵 하나 들고 정화하는 것만 같다. 관련 부처와 기업은 심각성을 알면서도 미비한 제도를 탓한다. 정치인과 정부, IT 대기업들은 혐오와 싸우겠다는 선언을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허울 좋은 말뿐이다. 여러 번의 요청 끝에 2차 가해 글 하나를 지우면 어딘가에는 수십여 개의 복사 글들이 생겨나고, 그 시각 또 다른 사건의 피해자에 관한 신상이 반복되어 온라인에 돌기 시작한다. 선언뿐인 말들이 공중을 떠다닐 때 피해자의 발밑에는 더럽고 차가운 물들이 점점 더 차오른다.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싸움을 이어가지만, 삶을 되찾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다른 사건의 피해자를 만나 차를 나누고, 연대자와 일상을 이야기한다. 어려움을 나누고,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며 새로운 삶을 소망한다. 이 모든 과거로부터의 단절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지는 연대의 힘이 되고자 숨을 이어간다. 앞서서 싸운 이가 내게 건네준 연대의 역사를, 싸움의 서사를 기억하고, 언젠가 다른 이에게 연대의 손길만이 전해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그 길은 우리가 함께 모든 종류의 폭력을 고발하고, 멀리할 때 이루어지지 않을까? 인간의 존엄이 존중받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