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에 미국이민을 떠났던 여성을 만났다. 예순을 훌쩍 넘었는데도 에너지가 철철 넘쳤다. 요즘도 옷가게에서 판매 일을 계속하는 덕분인가 보다. 한국에서도 스무 살 이후 잠시도 놀아본 적 없이 아주 부지런하고 활기차게 살던 여성이었다.

어디 가서도 기죽어 본 적이 없을 것 같던 그는 오랜 만에 돌아온 한국의 느낌을 '사람들이 무서워졌다'는 말로 표현했다. 떠날 때에 비하면 모두들 대단한 부자들이 되어, 자기 사는 아파트가 8억이니 십억이니 자랑들 하는데 눈빛은 사납게 변해 살기등등해졌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미소는커녕 노골적으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쫙 훑어 내리면서 적개심을 드러내는 모습들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단다.

사실 그의 소감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첫인상을 물으면 으레 나오던 대답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그래도 외국인들은 '한국인은 알고 보면 정이 많은 사람들이에요'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기나 했다. 마흔이 넘도록 한국인으로 살았던 그는 우리가 예전보다 정도 훨씬 각박해지고 심성도 삭막해진 것 같다고, 도대체 뭘 갖고 잘 살게 됐다고들 하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강팍한 인상 정 없는 한국인

그의 말대로 우리는 어느 새 '인상은 무뚝뚝하지만 정은 많은 사람들'에서 '인상도 강팍하고 정도 없는 사람들'로 바뀐 것 같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내다 보면 사람들 얼굴이 하나같이 굳어 있다. 다들 몹시 화가 난 표정들이다. 물론 혼자 헤죽헤죽하면야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겠지만 평소에 잘 웃는 사람이라면 혼자 있어도 기본표정에 미소의 흔적이 남아 있을 텐데 그런 사람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어쩌다가 편안한 표정을 한 얼굴을 만나면 막 소리지르고 아는 척을 하고 싶어진다. 뭐 다른 사람들 말할 거 있나. 나부터 그렇다. 말보다 웃음이 앞서는 부모님을 닮아서 난 어렸을 때부터 웃음이 많았다. 열 살이 넘자마자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정도였으니 말해 뭐할까. (지금 내 눈가의 이 풍성한 주름이 그 때 주름이다.)

마흔이 넘어서까지 무지 잘 웃었다. 심지어 존경했던 한 선배로부터, 그렇게 잘 웃으면 어린 후배들이 우습게 보니까 제발 웃지 좀 말라는 충고를 듣기까지 했다. 어느 단체의 대표를 맡았을 적에는 어떤 가까운 분이 당신은 너무 웃음이 헤퍼 권위가 없어 보인다면서 단체의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자중하라고 점잖게 요청하기도 했다.

웃음도 훌륭한 사회봉사

무슨 개뿔 같은 소리냐 싶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혹시 내가 부족한 실력을 웃음으로 땜방하려는 속셈이 있는 게 아닐까 열심히 반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한들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웃음을 뭘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웃음 때문에 출세 못한대도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어느 새 그토록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던 웃음이 나한테서 다 날아가버렸다. 그러다 보니 내딴에는 그냥 넋없이 앉아 있는데도 아이들이 어머니, 무슨 걱정 있으세요, 무슨 일로 화나셨습니까, 하고 심기를 헤아려 온다. 황송하게도.

아, 어느 새 기본표정이 스마일에서 걱정과 화로 바뀐 것이다. 기운 하나 줄어든 것 이외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살기에 좋은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웃음은 자동이 아니라 상당한 근육운동 끝에 겨우 나오게끔 되어버렸다. 이 오리무중 같은 한국에서 살면서 제 정신이라면 어떻게 웃고 살 수 있냐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 남 없이 너무들 안 웃고 산다. 그저 개그 콘서트나 봐야 웃는다. 아니면 인터넷에서 떠도는 음담패설을 적어와 읽어 줘야 웃는다.

예전에는 남자들은 안 웃지만 여자들은 그래도 잘 웃는 줄 알았는데 요즘 보니 그것도 아니다.(양성평등이 됐다는 증거인가?) 또 나이 든 이들은 잘 안 웃지만 젊은이들은 잘 웃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이건 연령차별이 없어졌다는 얘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내 속이 다 환해진다. 그러니 웃는 것도 훌륭한 사회봉사다. 게다가 요즘은 건강이 최대의 화두인 시대이다. 걷는 것보다 더 쉬운 비법이 웃음이다. 그러니 우리 좀 웃자.

박혜란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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