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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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뉴욕에 다녀왔다. 배우생활을 막 시작한 딸 지영이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에 가수가 아니라 배우로서 출연한다기에 축하해주기 위해 갔다. 언제 다시 그런 무대에 서겠냐 하는 생각에서다.

뉴욕은 내가 십년 가까이 살던 곳이라 제2의 고향처럼 여기고 있다. 원래 에너지가 풍만한 도시여서 그곳에 가면 내 에너지도 소진되어버릴 정도로 바쁘게 지내곤 했다. 그러나 이번 방문에서는 일년 동안 쌓인 피곤도 풀 겸 오페라 극장에 가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편히 쉬다 오겠다고 맘 먹은 나에게 지영이는 좋은 공연이 있으니 꼭 가보라는 말을 했다. 작년인가 서울에 와서 공연한 적이 있는 마부마인즈 극단의 <인형의 집>이 바로 그 공연이란다.

이 작품은 입센의 <인형의 집>을 윤색한 것이었다. <인형의 집>은 잘 알다시피 부인이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간다는 내용 때문에 여성해방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많이 인용되곤 한다. 21세기에 접어든 이 시점에 문물이 가장 발달했다는 도시, 뉴욕에서 이 작품을 올리는 이유가 무얼까 궁금하기도 해 지영이의 권고를 받아들여 눈보라치는 밤에 부르클린다리 근처 물가에 있는 창고형 극장엘 갔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흥미 있는 일들이 눈앞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무대장치가 흥미로웠다.

접었다 폈다할 수 있는 작은 인형의 집이 무대를 채웠다. 그 집안의 모든 물건들, 즉 침대, 의자, 소파, 찻잔, 피아노 등이 집 크기에 맞는 작은 사이즈였다.

특히 문들이 작아 일반사람들은 선 채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 문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무릎으로 기어 들어와야 하는데 그렇게 기어들어 오는 사람들은 6척 정도의 큰 키를 가진 노라를 포함한 여성 세 명뿐이었다. 노라의 남편을 포함한 남성 세 사람은 모두 난쟁이어서 그 집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세운 채 문을 드나들 수 있었다.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당연히 노라가 집을 뛰쳐나가는 장면이다. 이 대목에 이르자 무대는 갑자기 오페라 극장으로 바뀌어 무대 뒷면의 막이 오르면서 남녀 한 쌍씩의 인형들이 앉아 있는 12개의 박스석으로 바뀌었다. 무대 옆에 마련된 높은 대 위에 올라선 노라는 가지 말라고 간청하는 남편에게 자기 머리에 쓴 가발을 벗어 빡빡 깎은 머리를 보여주면서 사납게 몰아친다. 그럴 때마다 여자 인형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격려의 합창을 한다. 물론 노래들은 미리 녹음된 것이고 배우들과 인형들은 립싱크를 했다.

그 후 지영이와 이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지영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오히려 남편에게 동정이 갔다는 말을 했다. 연출자가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그럴싸했다. 어쨌건 끝 부분이 너무 강조된 이 작품은 균형이 깨져 있었다. 무얼 주장하든 “지나치면 아니한 만 못 하다”는 옛 현인들의 지혜가 확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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