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 후 가해자와 단둘이 술 마셨다고 무죄
대법원서 뒤집혀...“‘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다고
피해자 진술 신빙성 함부로 배척할 수 없어”

ⓒ홍수형 기자
ⓒ홍수형 기자

성추행을 당한 후에도 피해자가 가해자와 단둘이 술을 마시는 등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같은 과 동기를 추행한 혐의(준강제추행)로 기소된 이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2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이씨는 2016년 12월27일 피해자 등 대학 친구들과 강원도로 1박 2일 여행을 갔고, 숙박 장소에서 피해자가 잠든 틈을 타 몸을 여러 차례 만진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사건 후 군대에 갔다 복학했다. 피해자는 이씨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이씨가 다른 친구들에게 당시 추행에 대해 말한 것을 알게 됐다. 피해자는 2019년 8월 이씨를 고소했다.

이씨는 피해자를 만진 것은 인정하면서도 “상호 스킨십이라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이씨의 강제추행 사실이 인정된다며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발생 후에도 이씨와 피해자가 단둘이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멀티방(룸카페)에 함께 있는 등 어색함이나 두려움이 없었다며 “피해자의 태도는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하기에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봤다. 또 피해자가 사건 발생 2년 7개월 만에 신고를 한 점을 두고 “사건 발생 후 2년 넘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점에서 진술을 믿기 어렵고, 이씨의 사과문도 피해자의 마음을 달래려는 차원에서 작성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다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고 봤다. 또 두 사람이 단둘이 시간을 보낸 것은 “이씨로부터 당시 사건의 사과를 받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3월 대법원은 성범죄 피해자가 범행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일부 진술을 바꿔도, 핵심적인 내용이 일관된다면 진술 신빙성을 의심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를 의심해선 안 된다는 판결이다. (관련기사▶ 대법 "성추행 피해자 진술 번복해도 신빙성 의심해선 안돼"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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