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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해방연대가 주최한 '페미니스트를 고민하는 남성들의 프로그램 곁눈질'마지막날 참석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에 대한 좌담회를 열었다.<사진·이기태>

성차별·성매매 등 남녀 공통숙제

'무늬만 여성주의자' 아닐까 고민도

남성들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남성들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9일 서강대학교 한 강의실. 한 무리의 남성들이 자신의 페미니스트 정체성과 경험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달 20일부터 진행해온 여성해방연대 '페미니스트를 고민하는 남성들의 프로그램 곁눈질'의 마지막 날이었다.

4주에 걸쳐 퀴어아카이브 서동진, <남자의 탄생> 저자 전인권, 여성해방연대 바람, 평화인권연대 아침 등이 각각 '남성 정체성과 이성애주의' '내 안의 남성성 남성문화 돌아보기' '전쟁의 성별성과 평화의 재구성'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날은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며 남성 페미니스트 모임 MenIF와 여성해방연대의 남성 회원들,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대학생 등 10여 명이 참석해 삶 속에서 느끼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진솔한 경험과 고민을 나누었다.

“대학에서 성폭력, 성차별 문제가 이야기되곤 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러다 주위에서 아는 사람이 성폭력 피해를 입은 거예요. 경험을 전해 듣고 상황을 알게 됐어요. 가까운 사람이 아파하고 고통받는 것을 보며 그 시점부터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여성해방연대 회원 타랑이 밝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였다. 이외에도 참석자들은 다양한 계기를 들려주었다. MenIF의 변형석씨는 남성 페미니스트 모임을 진행해오며 남성들이 여러 수준에서 페미니즘에 관심 갖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언니네 사무실에서 남자들이 밤새 대화를 나눈 일이 많았는데 대화의 반 이상이 난 왜, 어쩌다 페미니스트가 되었나 하는 거였어요. 하나는 이론적, 학술적 관심으로 학회 등을 통해 사회과학적 관심 안에서 페미니즘을 알게 되는 거죠. 주변 여성들, 누나, 여동생, 친구 등의 경험같이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남성들도 많아요. 그리고 성적인 정체성이나 감수성의 차이로 남성이지만 남성적인 관계가 불편해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경우도 있어요.”

참석자들 중에는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명확히 하는 남성도 있었고 프로 페미니스트, 친 페미니스트, 페미니스트 함량미달 등 나름대로 자신과 페미니스트 사이에 관계를 짓고 거리를 두는 남성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듯 남성 사회에서 페미니스트, 아니 최소한 여성주의 관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커밍 아웃(?) 하는 것이 꽤나 불편한 일이라는 점이었다. 나아가 그들은 남성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여성운동 내에서 남성 페미니스트의 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MenIF의 차우진씨는 “회사에서 남자 선배로부터 사회생활 그렇게 하는 것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며 “그런 날은 페미니스트 모임에 가는 대신 그들과 당구장이나 룸살롱에 가고 폭탄주를 마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곁눈질'기획에 참여한 여성해방연대 손이레씨는 “한 번은 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들과 만났는데, 우연히 성매매 이야기를 하기에 결국 소리를 질러버리고 나왔다”며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고 또 페미니스트라 우기며(?)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간단한 문제가 아니더라”고 밝혔다.

변형석씨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경우 “나도 다른 남성들을 거부하지만 그 남성들도 나를 거부한다는 것을 경험한다”며 “이래저래 남성들로부터 벽이 있는데 페미니스트 집단에 들어와서도 문제는 끝나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여성 운동에서 남성들이 주체가 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사회를 보는 것도, 발제를 하는 것도 남성은 이상해 보여요. 스스로도 나는 그곳에 끼여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주변으로 빠지게 돼요. 내가 뭘 하고 있나 생각하면 뻘줌한 거죠.”

남성이라는 경험적 한계를 갖고 있는 그들이 스스로에 대해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돌아보는 모습은 진솔했다. 대학생 명규씨는 “반성매매 운동을 하고 있지만 내 안에도 성매매에 대한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포르노 등 우리 사회 성문화에 깊숙이 빠져 있는 자신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차우진씨도 “여성운동 판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회사 사람들에겐 일단 입이 막힌다”고 털어놨다. “친한 몇몇에게는 여성 행사 팸플릿을 주지만 남성들에겐 말하지 않아요.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에 답하는 게 귀찮고 정확히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이러한 고민 속에서 참석자들은 페미니스트 남성들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여성주의 운동이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MenIF의 콰이는 “피해만으로 문제가 구성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가해 측면에서 항상 긴장한다”며 “나도 성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 있으니까 여성주의 운동은 내 문제”라고 말했다.

또 참석자들은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의 욕망의 근원을 찾는 작업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변형석씨는 욕망의 구조를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욕망이 나에게서 어떻게 일어나고 다른 남성들에게 작용하는 근원적인 이유를 찾고 싶어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기 힘들어요. 욕망을 따르든 피하든 편하지 않을 거예요. 그 욕망의 지도를 그려내는 것이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김선희 기자sonag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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