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이후 젠더 논쟁이 폭발했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례적으로 20대 남성들, 이른바 이대남들이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72.5%) 보냈다. 그리고 그 표심은 20·30남성들이 집권여당의 근 10년간의 여성편향 정책과 2016년 이후 출몰한 넷페미니스트들의 폭력성에 대한 집적된 분노로 분석되기도 한다. 물론 이대남들의 표심을 안티페미니즘 한 마디로 요약하는 것은 위험하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영원히 올라오지 않을 것 같던 이대녀들의 표심 역시 대폭 올라왔다. 역시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은 박영선 후보를 44%, 오세훈 후보를 41% 지지했다. 91년생인 필자가 느끼기에는 건국이래 최초다.

이것은 이번 선거가 20대들의 젠더논쟁의 축약 장이 아닌 20대 청년들이 보편적으로 현 집권여당 ‘때문에’ 먹고살기가 힘들고, 그들의 ‘온갖 위선’에 분노했고 그래서 분노의 심판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선거 직후 점화된 안티 페미니즘 논쟁이 탈레반처럼 행동해온 극렬 넷 페미니스트들을 배제하고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하는 방향이 아닌 남성 vs 여성의 기계적 평등의 균형추를 맞추자는 논의로 번져간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역시나 정치권이 이 떡밥을 삼켰다. 정치권의 한 발짝 더디고, 민의를 엉뚱하게 해석해 예능을 다큐로 만드는 능력은 여야불문이다. 특히 이미 떠난 이대남 버스를 잡아보겠다는 민주당의 조급함이 ‘여성 징병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여성 100일 군사훈련 론’도 등장했다. 필자는 이 사람들이 대한민국 군대를 물로 보는 건가 싶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이대남 잡겠다며 여성 징병제 언급

여성 징병론은 ‘군 가산점 논쟁’, 일부 몰지각한 여성들의 ‘국군장병 비하 논란’ 등이 터질 때마다 들불처럼 일어났다 사그라지는 논쟁이다. 대한민국 법은 국방의 의무는 모든 국민에게, 병역의 의무를 남성에게 지우고 있다. 남성이 짧게는 2년, 길게는 3년을 여성보다 희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군 가산점을 목에 핏대 올리며 반대하는 여성주의자들, 징집 장병을 존중하기는커녕 ‘군바리’, ‘군무새’ 로 비하하며 조롱하는 무개념 여성들을 볼때마다 ‘여자도 군대보내자’ 라는 성토가 남성들 사이에서 나올수는 있다.

우리나라는 휴전 중인 국가다. 북한은 이따금 발작하듯 ICBM(핵을 탑재할 수 있는 대륙 간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가 하면, 불과 작년에도 우리 공무원을 해상에서 불태워 죽였다. 삼대 세습 지배체제, 적화통일이라는 북한의 주의·주장 무엇 하나 바뀐 것이 없다. 언제 국지적인 수준이나마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나라라는 거다. 이런 나라에서 병력이란 즉시 전력이어야 한다.

그런데 군대가 무슨 ‘정신개조 해병대 캠프’도 아니고, 여성 100일 군사훈련이 대한민국군 전력에 어떤 도움이 될까? 더 나아가 군의 효율성 증대 차원에서 모병제가 논의되고 있는 와중 ‘여성 징집’ 은 또 얼마나 큰 비효율을 초래할지 무척 회의적이다.

현존하는 주적 정권의 위협을 1순위로 고려하며 그동안 남성만 부담해왔던 병역의 의무를 여성에게도 기계적이 아닌 기술적으로 부담하게 하는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경제 활동을 시작한 만 19세 이상의 여성에게 국방세를 걷는 것, 혹은 청소년용과 성인용을 구분해 여성용품에 국방세를 목적세로 부과하는 것 둘째, 만 19세 이상 여성에게 민방위 훈련해 국방 및 안보 교육, 그리고 전시 여성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역할 등에 대한 훈련 등을 제안해 본다. 여성이 여성의 의무와 역할을 늘려가는 것이 진짜 여성주의 아닐까?

GS25의 이른바 ‘메갈 디자인’ 논란으로 넷 페미니스트들의 테러행위에 대한 논쟁으로 논의가 옮겨가긴 했지만 ‘19금 개그’를 하는 개그우먼 박나래에 대한 남성들의 잔인할 정도로 엄격한 시선은 그간 남성들이 ‘남자기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역차별에 대한 울분 폭발로 바라봐야 한다. 여성계가 적당히 해야 했다. 선을 한 발씩 넘다가 서로에 대한 자연스러운 배려와 이해의 선마저 없어져 버렸다.

신생아 출생 시 부모 중 성씨(姓氏)를 선택하게 한다는 시행령을 마침표로 여성에 대한 법적인 차별이 사라지다시피 하고 있고 공무원사회는 신규 채용 여성 비율이 남성을 넘어섰으며, 유리천장이라 불리는 엘리트사회 역시 여성이 어느 정도 장벽만 넘으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현실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여자라서" 한국사회에서 편견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남성 역시 "남성이라서" 받는 차별적 편견과 법적 의무들이 있다. "장남이라서", "탈북민이라서", "외국인 혼혈이어서" 와 같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인생은 각자에게 주어진 편견과 차별적 인식들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솔직해지자. 가정에서든(고부갈등) 사회생활에서든 우연히 부딪히는 공간에서건 여성이 같은 여성을 착취(혹은 혐오)하는 구조가 한국사회다. 그렇기에 '여성의 연대'도 이 나라에선 허구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필자의 경험적 사실로는 20·30대 여성이 중년 이상의 여성들에게 넷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혐' 당한 비율이 남성에 당한 것 못지않게 높다. 그녀들이야말로 젊은 여성을 젊은 남성보다 만만하게 보거든. 그렇다면 이것은 성 혐오인가, 세대혐오인가?

2018년 여름, 남자 사람 친구들과 시청역 2호선 만원 지하철에 올라탔을 때의 일이다. 자동으로 마블 시리즈의 <블랙펜서>에 나오는 ‘와칸다 포에버’ 자세(팔을 엑스자로 가슴 앞에서 취하는 것)를 취하더랬다. “왜들 그래?” 라는 나의 질문에 그들이 답했다. "만원 지하철서 함부로 팔 내리고 있다간 성희롱범으로 몰리기에 십상이다." 누구도 젊은 남성들이 겪어야 하는 이런 불편함과 잠재적 가해자 프레임을 '당연하다' 할 수 없으며,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실재(實在)하는 폭력이다.

여명 서울시의원
여명 서울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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