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연장” “정치적 이용” 설전

여성문제 정치적 해결 긍정론 많아

시민사회 '인재 빼가기' 비판 시각도

지난해 본지 이계경 전 사장, 올해 한국여성단체연합 이오경숙 대표 등 여성운동을 대표하는 인사들의 거듭된 정계진출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다. 여성정치세력화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면 여성운동 대표성이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 여성계의 날카로운 이슈인 여성운동 대표의 정계진출에 대해 공식적인 논의 자리가 처음 마련됐다.

지난 4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원장 조순경)은 '여성단체장의 정계진출, 여성운동의 위기인가, 기회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조현옥 공동대표, 서울시립대 김민정 교수,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이철순 대표, 일다 조이여울 편집장, 중앙일보 문경란 전문기자 등이 패널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에 앞서 조순경 교수는 “여성계 대표들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공식적 평가나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 됐다”며 “예민한 문제일수록 잘못된 역사가 있다면 반복되지 않도록 공론화해야 한다”고 토론회 개최 배경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여성단체장의 정계진출 절차의 문제, 정치현장에서 여성의제 실현 가능성, 여성운동의 공동화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조현옥 대표는 여성정치인 수가 많았다면 호주제가 지금까지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여성의제의 정치의제화'를 같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여성 대표들이 정치권에 수동적으로 영입되지 않고 여성계의 지원과 의지로 정치권에 진입해야 할 것이라며 절차와 과정의 오류는 과도기적인 것으로 진단했다.

이철순 대표는 의식된 사람들이 장을 옮겨 여성운동을 계속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훈련되고 여성의식을 가진 사람이 정당에 참여해 안과 밖을 연결하는 역할을 함께해 간다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여성운동의 의사가 전달될 수 있는 채널이 생기고, 대화의 장이 생겨 여성문제 실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김민정 교수는 4공화국 이후 부족한 정치권의 정당성을 보충하기 위해 영입된 여성교수, 단체장이 여성의제를 정치의제화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우리나라 여성, 시민단체들은 몇몇 엘리트를 중심으로 운동을 펼쳐왔다며 강한 국가가 약한 사회에서 다양한 자원과 인물을 끌어들이는 등 침투를 계속할 경우 시민사회가 고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이여울 편집장은 굳이 여성단체장이 정계에 진출해야 하는가를 묻고 여성계 대표들이 쉽게 정계로 몸을 옮기는 것은 여성운동의 대표성과 상징성에 대한 책임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이 편집장은 대표의 정계진출에 대한 조직의 침묵이 이 같은 상황을 방조해왔다며 여성계가 침묵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경란 기자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 상 단체장이 장관, 국회의원이 되면 비판하기 어렵다며 단체장의 정계진출로 운동의 순수성과 감시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한 예로 호주제 민법개정안에 유림이 주장해온 '가족' 개념이 들어 있는데도 여성단체연합 등 여성계가 환영 일색의 성명을 발표한 것을 지적하며 운동 본연의 임무를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활동가는 “단체장의 정계진출로 솔직히 운동의 순환구조에 숨통이 트인다”며 “오늘 제기된 여성운동의 공동화 등은 단체장의 정계진출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현재 여성운동이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김선희 기자sonag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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