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4일 개선 의견표명
“아동용품 색깔로 성별 구분 관행,
성차별 편견 심어줄 수 있어 개선 필요”
지적받은 영유아용품 기업 8곳 모두 동의
“제품에 성별 표기·성차별 문구 삭제·개선하겠다”

‘분홍색은 여아, 파란색은 남아’ 영유아용품 구분은 성차별 편견을 심어줄 수 있으니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권위의 결정이 나왔다. (왼쪽 위부터) BYC 라미 유아동 내의 제품, 아모레퍼시픽 메디안 키즈 양치 제품.  ⓒBYC, 아모레퍼시픽
‘분홍색은 여아, 파란색은 남아’ 영유아용품 구분은 성차별 편견을 심어줄 수 있으니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권위의 결정이 나왔다. (왼쪽 위부터) BYC 라미 유아동 내의 제품, 아모레퍼시픽 메디안 키즈 양치 제품. ⓒBYC, 아모레퍼시픽

‘분홍색은 여아, 파란색은 남아’. 영유아용품의 색깔로 성별을 구분하는 관행은 성역할 고정관념을 심어 줄 수 있어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4일 나왔다. 시민단체가 진정을 제기한 지 약 1년 반 만이다. 개선 지적을 받은 8개 기업 모두 자사 제품에서 성별 표기나 성차별적 문구를 삭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2020년 1월 인권위에 “영유아용품의 성차별적인 성별 구분을 즉각 시정해달라”고 진정했다. 이들은 영유아용품 업체들이 기능과 무관하게 ‘분홍색은 여아용, 파란색은 남아용’으로 성별을 구분하고, 소꿉놀이를 여아놀이로 취급하는 등 아이들에게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시키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이들이 지적한 사례는 △더블하트(유한킴벌리) 젖꼭지 △오가닉맘(중동텍스타일) 영유아복 △BYC 유아동 속옷 △메디안(아모레퍼시픽) 치약/칫솔 △모나미 연필/크레파스 등 문구류 △모닝글로리 스케치북 △영아트(다다) 초등노트 △영실업 콩순이 팝콘 가게 등 완구류다.

이들 8개 기업은 “차별 의도는 없었고, 색깔로 성별을 구분하는 사회·문화적 관행에 익숙한 소비자의 선호를 반영해 판매·유통상 편의상 성별을 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자사 제품에서 성별 표기나 성차별적 문구를 삭제하거나 향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다는 정치하는엄마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자사 브랜드 ‘영아트’ 영유아제품에서 성별 표기를 모두 삭제했고, 향후 모든 상품에 성별 구분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모나미도 향후 출시하는 모든 상품에서 성별표기를 삭제하고 색깔 이름으로 표기하기로 했다.

모닝글로리도 2020년 3월30일부터 홈페이지의 상품 성별표기를 삭제했고, 향후 다른 문구용품도 검토해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BYC는 2021년 5∼6월부터 출고할 소아용 속옷의 포장지 품명에 성별을 표기하지 않을 계획이다.

아모레퍼시픽은 “당사는 성평등을 지향하며 모든 상품에 성별을 표기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특정 상품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과정에 유통 편의상 색깔에 따라 여아용·남아용으로 기재한 내용이 노출됐고, 비판을 받아들여 즉시 삭제했다고 밝혔다.

영실업은 2020년 4월부터 ‘콩순이 팝콘 가게’ 등 완구제품 포장지의 ‘엄마와 아이의 역할’ 문구를 ‘부모와 아이의 역할’로 수정하고, 홈페이지 상품 안내 항목도 수정했다.

유한킴벌리는 2020년 3월10일부터 성별과 무관하게 ‘핑크/블루’로만 제품을 분류하고, 향후 성중립적 디자인으로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동텍스타일은 자사 ‘오가닉맘’ 온라인 쇼핑몰 모든 상품의 성별표기를 지웠고, 2020년 6월부터 모든 아동용품에 성별표기를 하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한 대형마트의 여아 완구 코너. 분홍색 위주의 역할놀이 장난감, 코스메틱 제품들이 눈에 띈다. ⓒ여성신문
한 대형마트의 여아 완구 코너. 분홍색 위주의 역할놀이 장난감, 코스메틱 제품들이 눈에 띈다. ⓒ여성신문
‘분홍색은 여아, 파란색은 남아’. 차별이라는 지적이 계속돼도 시장의 변화는 더디다. 사진은 2005년부터 윤정미 작가가 작업해온 연작 ‘핑크 & 블루 프로젝트 (The Pink & Blue Project)’. (왼쪽부터) 핑크 프로젝트-지원이와 지원이의 핑크색 물건들, 서울, 한국, 라이트젯 프린트, 2014 / 블루 프로젝트-경진이와 경진이의 파란색 물건들, 서울, 한국, 라이트젯 프린트, 2017. ⓒ윤정미 작가
‘분홍색은 여아, 파란색은 남아’. 차별이라는 지적이 계속돼도 시장의 변화는 더디다. 사진은 2005년부터 윤정미 작가가 작업해온 연작 ‘핑크 & 블루 프로젝트 (The Pink & Blue Project)’. (왼쪽부터) 핑크 프로젝트-지원이와 지원이의 핑크색 물건들, 서울, 한국, 라이트젯 프린트, 2014 / 블루 프로젝트-경진이와 경진이의 파란색 물건들, 서울, 한국, 라이트젯 프린트, 2017. ⓒ윤정미 작가

인권위는 “국내 영유아 상품의 상당수가 성별에 따라 색깔을 구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소꿉놀이나, 인형 등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분홍색 계열로, 자동차나 공구세트와 같은 기계류 등은 파란색 계열로 제작되고 있다. 아이들은 여성은 연약하고 소극적이고, 남성은 강인하고 진취적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학습하게 되고,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인식을 무의식중에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파랑은 남자, 분홍은 여자’ 이분법은 성별에 따른 특성이 아닌 ‘기업 마케팅과 사회화의 산물’이다. ‘전통’과도 무관하다.  (관련기사▶ [단독] 언제까지 ‘분홍은 딸, 파랑은 아들’?...인권위 다음달 의견 표명www.womennews.co.kr/news/201001)

최근 해외에서는 소비자들의 비판과 지속적인 개선요구로 영유아 상품의 성별 구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은 2015년 5월부터 기존에 남아, 여아로 구분하던 아동용 완구를 ‘아동완구’로 통합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영국에선 성별 구분을 없애는 완구 매장이 늘고 있다.

인권위는 “이처럼 성별을 구분하는 것이 성역할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기업들도 성별 구분을 삭제하는 등 개선 움직임이 활발하다”며 “우리 사회가 성별에 따라 색깔을 구분하는 방식을 탈피,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사람 자체로 접근하는 ‘성중립적인(gender-neutral)’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인권위는 이번 진정 사건을 각하했다. “상품 색깔로 성별을 구분해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등 부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볼 수 있으나, 그 자체로는 상품 구매를 제한하는 등 차별행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어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각하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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