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은 학생이 입는데
규정은 교사·학부모·지역위원이 정해
학생참여 확대 법안 발의됐지만
1년째 국회 계류 중
학생들 "내 교복인데 왜 남이 결정하나"
권익위·교육청 “학생 참여 보장하라”
교사·학부모 “학생 참여 실익 부족하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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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은 교복바지를 입을 수 없다는 학생생활규정 탓에 추운 겨울에도 치마를 입어야 했던 고등학생 A씨, 영하의 날씨에도 교내에서 외투를 착용하면 벌점을 받아 덜덜 떨던 고등학생 B씨,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등교중지를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중학생 C씨, 비대면 수업에도 집에서 불편한 교복을 입고 수업을 들어야 하는 중학생 D씨....

10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교칙이 학생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학교 규정이나 예산을 심의하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는 학생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은 구호에 불과하다. 

학교들은 “아직 어린 학생들이 학운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를 배제한다면, 학생들의 권리는 보호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학부모·교원·지역위원 있지만, 학생은 없는 학운위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학운위는 △학부모 40~50% △교원 30~40% △지역위원(학교가 소재하는 지역을 생활근거지로 하는 자) 10~30% 비율로 구성된다. ⓒ국가법령정보센터<br>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학운위는 △학부모 40~50% △교원 30~40% △지역위원(학교가 소재하는 지역을 생활근거지로 하는 자) 10~30% 비율로 구성된다. ⓒ국가법령정보센터

학운위는 학교 규정이나 예산 등을 심의하는 기구다. 학교헌장과 학칙 제·개정부터 △예산·결산 △교육과정 운영방법 △교과용 도서와 교육 자료 선정 △교복·체육복·졸업앨범 등 학부모 경비 부담 사항 △정규학습시간 종료 후 또는 방학기간 중의 교육활동 및 수련 활동 △학교급식 △학교운동부 구성·운영 △학교운영에 대한 제안 및 건의 사항 등을 심의한다.

정작 학생은 학운위에서 빠졌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58조에 따르면 학부모, 교사, 지역위원이 학운위에 참여한다. 학운위는 △학부모 40~50% △교원 30~40% △지역위원(학교가 소재하는 지역을 생활근거지로 하는 자) 10~30% 비율로 구성된다.

실제 학생들의 학운위 참여 비율은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0월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학운위 주요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학운위를 개최한 전국 국·공립학교 1만1660곳 중 학생이 참여한 학교는 3485개교(29.9%)였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는 말만 떠돌 뿐, 실질적으로 학내 운영 사항을 논의하는 기구에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학생 참여 확대 법안 발의됐지만 1년째 국회 계류 중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구미 3세 아동 사망사건 관련 출생통보제 도입 및 영유아 전수조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학생의 학운위 참여를 확대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1년째 국회에 계류돼 있다. 강 의원이 2020년 6월 대표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학운위 구성에 학생 대표를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데, 2021년 5월6일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강득구 의원은 여성신문에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학내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데 현재는 학생만 학운위에 빠져 있다. 교육 자치를 실현하려면 학생의 학운위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며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내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될 수 있어 법안 통과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청소년 “계속되는 학생 인권침해...당사자인 학생 목소리 들어야 개선 가능”

경기 고양시 한 중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경기 고양시 한 중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청소년 인권단체는 학생들의 학운위 참여를 보장해야 학생들의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치이즈 활동가는 “학생들의 학내 정치 참여가 어렵다 보니 불합리한 학생생활규정 등이 개선되고 있지 않다”며 “학운위에 학생들이 들어가지조차 못하는 문제를 이른 시일 내에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난다 활동가는 “학생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학운위에서 심의되므로 당사자인 학생들이 위원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적어도 학운위의 50%는 학생으로 구성돼야 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교사·학부모 “학생 대표가 직접 심의해야 할 사항 많지 않아”

교사나 학부모 측은 학생들이 피교육자이기 때문에 심의할 사항이 많지 않다고 주장한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학운위 주요 논의사항은 학교 예·결산, 발전기금 운용, 교육과정 계획, 대학입학 특별전형 중 학교장 추천 등이다. 학생 대표가 직접 참여해 심의·자문해야 할 사항이 많지 않다. 실익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미성년자에 대한 권리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민법 규정의 취지를 고려할 때 학생들의 학운위 참여권 보장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조 대변인은 “이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59조4에 따라 학생 대표가 학교생활 관련 사항에 의견을 수렴한 뒤 학운위에 의견을 제안할 수 있게 돼 있는 등 학생들의 의견 수렴 창구가 마련돼있다”고 덧붙였다.

조진형 자율교육학부모연대 대표는 “(대학 진학 등) 학생들은 교사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니까 학운위에 학생들이 참여해도 제대로 된 의견을 표출하기 힘들 것이다. 학생 대표가 전체 학생의 의견을 대표할 것인지, 의견을 잘 수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면서 “학생들이 학운위에 참여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교육청·권익위 “학생들 피교육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자치능력 인정해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청사. ⓒ뉴시스·여성신문
서울시교육청 청사. ⓒ뉴시스·여성신문

서울시교육청과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학생들의 자치능력을 인정하고 학운위에 학생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운위에 학생 참여를 확대하라고 매년 학교 측에 공문을 보내는 등 권고 조치를 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운위 참여를 보장하는 그 자체가 교육이자 학생 자치 실현이다”고 말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2019년 1월3일 기자간담회에서 “학생들의 학내 의사결정 참여권이 확대되도록 하겠다”며 학운위에 1~2인의 학생 대표가 참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경원 권익위 교육분과협의회 위원은 “현행법이 학생 자치능력이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학운위의 모든 의사결정은 학생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 그런데도 학생을 배제하는 것은 구시대적이고 올바르지 않다. 학생들이 학운위에 학생위원으로 동등하게 참여해 학생 의견과 권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김영삼 권익위 교육분과협의회 위원도 “법을 개정해서 학생 대표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본다. 학교는 학생을 위한 공간이다. 당사자가 빠진 ‘자율성 보장’과 ‘자치’는 있을 수 없다. 학생이 교육 주체고 주인이고 이런 얘기를 하면서 권한을 행사할 기회를 학생들에게 주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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