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윤여정이 수상 여부 예측 투표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후크엔터테인먼트
영화 ‘미나리’로 한국인으로는 처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 ⓒ후크엔터테인먼트

한국인으로는 처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74). 4월 25일(현지 시각) 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윤여정 효과(Youn Yuh-jung Effect)’가 번지고 있다. 윤여정이 보여준 수상 소감과 대처 모습은 ‘차기 오스카 시상식’과 ‘미국 유명 토크쇼’ 진행자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평과 함께 ‘글로벌 예능인’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시상식 이튿날 필자가 사는 캘리포니아주 산 마테오 지역 신문 ‘산 마테오 데일리 저널(SM Daily Journal)’에서도 대서특필됐을 정도다. ‘윤여정,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이라는 제목 하에, “‘미나리'에서 까칠한 할머니 윤여정은 영화 속 손자의 마음보다 더 많은 것을 사로잡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그가 많은 이들의 마음에 스며들었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윤며들다(윤여정에 스며들다)’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미국 산 마데오 지역 신문인 ‘산 마테오 데일리 저널’에도 배우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이 대서 특필됐다. ⓒSM Daily Journal
미국 산 마데오 지역 신문인 ‘산 마테오 데일리 저널’에도 배우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이 대서 특필됐다. ⓒSM Daily Journal

인간 윤여정 매력

세계인들이 그에게 빠져드는 것은 단순히 그의 연기력에 국한된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오스카 수상 직전까지 다수의 수상을 하며 공개된 각국 언론매체와의 인터뷰 영상이 전 세계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면서 그의 구체적인 인생철학이 위트 있는 영어실력으로 뿜어낸 종합적인 결과라고 본다. 배우 윤여정을 너머 ‘인간 윤여정’의 삶의 역사가 쌓아온 매력에 빠져든 것이리라. 그는 젊은 이들에게는 소신 있는 삶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경단녀들과 시니어들에게는 좌절과 체념에서 희망의 빛으로 새로운 삶을 개진하게 한다. 내리막길로 치부하며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용기내 도전할 수 있는 희망의 아이콘이다.

난생 처음 ‘오스카 시상식’을 시청하기 위해 혹시나 놓칠세라 미리부터 TV 앞에 앉았다. 미국 현지 시간 오후 5시부터 시작하여 시상식 후 LA 총영사관저의 온라인 기자회견까지 보고 나니 어느새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일찍부터 꽃단장하고 행사장에 나섰을 것을텐데, 레드카펫 위에서 포즈를 취했던 때와 달리 피곤이 역력한 그의 모습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게 걱정이 앞섰다. 마치 친언니의 일인 양 ‘우리 가족이 참석한 행사’를 애틋한 마음을 담아 윤여정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느꼈다.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 도착, 레드카펫에 올라 웃음 짓고 있다. ⓒAP/뉴시스·여성신문
배우 윤여정이 4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웃음 짓고 있다. ⓒAP/뉴시스·여성신문

구체적인 삶의 사용 설명서 제시

오늘을 살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국 문화와 사회 경제적 고난의 삶의 여정을 지나온 어머니로서, 여성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솔직하고 성실한 그의 모습이 희망의 불빛을 비춘다. 특히 자녀양육으로 인해 경력단절로 사회적 고립과 무력감으로 인생 자체가 우울한 여성들에게 구체적인 삶의 사용 설명서를 제시한다. 이혼녀라는 따가운 지탄 속에서도 생계형 배우로서 두 아들을 책임감을 다해 키워낸 꿋꿋하고 강한 정신력의 ‘어머니'의 모습과 동시에 13년의 배우로서의 경력 단절을 자존감 하나로 열심히 극복해낸 소신있는 삶을 살아온 ‘인간 승리’의 희망을 던져준다. 

'미나리'에서 한인 부부를 도우러 온 할머니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 ⓒ판씨네마
'미나리'에서 한인 부부를 도우러 온 할머니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 ⓒ판씨네마

시니어들에게 희망을

기존의 은퇴연령이 너무 이르게 느껴지고, 모두가 처음 사는 백세시대 속에서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의기소침하게 사는 시니어들을 본다. ‘이 늙은 나이에 뭘 할 수 있겠나?’라며 스스로 뒷방 늙은이를 자처하는 시니어들에게 자신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삶에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자극제가 아닐 수 없다. 

윤여정 스스로 ‘나같은 늙은이도~’라는 말을 즐기지만,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쇄신하며 성장을 거듭하는 삶은 후배들과 젊은이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을 뿐 아니라 시니어들에게도 ‘탈꼰대로 사는 법’을 제시한다. 고정관념에 연연하지 않고 성실히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한'이라는 준거를 가지고 소시민의 삶을 사는 당당함은 굳이 ‘최고'라는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어도 어느새 그는 ‘대배우 윤여정'이라는 자리에 와 있다.

팬데믹으로 굳게 닫혔던 동네 도서관이 오랜만에 공개돼 책을 빌리러 갔다. 1년 넘게 못봤던 사서들과 반갑게 팔꿈치 인사를 나누자마자 제일 먼저 ‘오스카 수상자 윤여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대만계 동갑내기 사서는, “은퇴를 앞당기려고 했는데 74세의 나이에 오스카상을 받은 (윤)여정을 보니 더 버텨야 겠다는 ‘에너지’를 받았다.” 또 70대 중반의 스토리텔링 백인 사서는, “나이 들어가며 체력과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위축됐던 마음을 윤(여정) 덕에 추스리게 됐다.” 라틴계 60대말 사서도 “윤(여정)은 희망의 아이콘이다.”며 엄지척으로 우리들의 대화에 함께 했다. 시니어 삶의 구체적인 모델로서 동서양 남녀노소 막론하고 ‘위안의 생기’로 스며드는 윤여정에게 고맙다. 오스카상이 주어지지 않았어도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을 서로 칭찬과 격려로 ‘일상의 오스카상'을 주고 받으며 유쾌하고 건강한 백세시대를 소망한다.

황은자(베로니카) H&C 교육컨설팅 대표
황은자(베로니카) H&C 교육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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